20대 초반의 커플, 여자친구는 눈물을 훌쩍거리고 남자친구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스크린 속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89세 강계열 할머니 부부가 현실 속 이 젊은 커플과 오버랩됐다. 20대 커플을 비롯해 나이 지긋한 부부, 중년의 친구들 등 관객들의 눈시울은 하나같이 붉었다.
11일 오후 경기 오리 CGV,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 그 강을~)의 상영관 풍경이다.
2014년 한해 1000만 영화가 3편이나 나온 진기록을 세웠는데, ‘님아, 그 강을~’은 또 하나의 의미있는 기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지난 달 27일 개봉한 영화는 요즘 가요계에서 유행하는 ‘차트 역주행’을 하고 있다.
작은 관수로 개봉한 영화는 점점 상영관이 없어지는 추세였지만, 입소문을 통해 현재 상영관이 다시 늘고 있다. 누적 관객수는 42만 120명(이하 12일 영진위 기준). 일일 박스오피스 순위는 대작 ‘인터스텔라’,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한국 독립영화 최대 흥행작 ‘워낭소리’의 기록(292만 명)을 깰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님아, 그 강을~’은 강원도 횡성의 작은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소소한 삶과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러닝타임 86분이 전하는 울림은 크고 깊다. 할머니 나이 14세에 시집 와 76년을 함께한 두 사람은 여전히 부부금실이 좋다. 황혼이혼이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이 시대 사람들의 부부와 노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마당에 쌓인 낙엽을 서로에게 던지고 장난을 하는 노부부. 할아버지는 개울가에 앉아 나물을 씻는 할머니 옆에 돌을 던져 물을 튀기게 하고, 할머니는 바가지에 물을 떠 와 손가락으로 튕긴다. 외출 할 때 항상 입은 색깔을 맞춘 옷도 귀엽게 느껴진다. 얼굴에 주름살만 깊었지 여느 커플과 다름없다. 늦은 밤 화장실 앞에서 할머니가 무서울까 노래 한자락을 불러주고, 할머니가 차려준 밥에 대해 한 번도 불평하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손과 머리, 몸을 쓰다듬어주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한다고 고백한다.
노부부를 바라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면서도 눈물이 난다. 기력이 쇠해져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간 할아버지 탓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진모영 감독은 ‘인간극장-백발의 연인 편’을 보고 감동해 영화화를 계획했다. 솔직히 대단한 연출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몸짓, 행동의 순수함과 진심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10~20대까지도 이 영화를 찾게 됐다.
정지욱 평론가는 “실버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가족 영화가 돼 감동을 주고 있다”며 “젊은 친구들에게 행복한 노년에 대한 일종의 로망을 심겨줬다. 실버영화로만 머물지 않고 가족영화로 확대될 때 흥행도 가능하다는 걸 ‘워낭소리’에 이어서 보여준 것”이라고 짚었다.
‘님아, 그 강을~’은 입소문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또 한 번 제대로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물론 극장체인 CGV의 아트영화 전용관 CGV아트하우스가 기본 상영관을 보장해 입소문을 이끄는 원동력이긴 하다.
이 영화 홍보를 맡은 영화홍보사 하늘 최경미 실장은 “젊은 관객들에게 꺼려질 수도 있는 내용이었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가 관객들의 감성을 사로잡은 것 같다”며 “20~30대가 입소문을 내는 주요한 관객인데 그들이 좋은 의견을 내고 가족들이 생각나기 때문에 부모 세대에게 추천해주는 것 등이 흥행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 주까진 CGV 상영관이 훨씬 많았지만 관객들의 좋은 반응에 현재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상영관도 확대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