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TV 속 다양한 연기와 입담으로 대중들을 웃고 울리는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인생 드라마는 존재합니다. TV에 등장하는 다양한 이들의 인생과 희로애락을 재조명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합니다. <편집자 주>
“(아내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혼신을 다해서 연기를 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끝까지 ‘김자옥’ 그러면 ‘그 사람의 연기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면 그럼 더 이상 바랄 건 없는 거죠.” (故 김자옥 남편 오승근)
2014년 11월16일 오전 연예계에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졌다. 배우 김자옥이 폐암으로 별세했다는 것이었다. 향년 63세. ‘마왕’ 신해철의 사망소식이 전해진지 정확히 20일 뒤 ‘공주님’ 김자옥의 사망소식이 전해졌고, 계속되는 가혹한 뉴스에 사람들은 그저 눈물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아내는 숨이 끊어질 때까지 혼신을 다해서 연기를 하기를 원했다”라는 오승근의 말처럼 김자옥은 마지막까지 연기를 사랑하는 배우였다.
◇ 청순가련 ‘눈물의 여왕’ 김자옥
김자옥이 공식적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건 1970년 MBC 공채 탤런트로 입문하면서부터였지만, 연기에 발을 들인 건 사실은 그보다 더 과거였다. 서울교대 부속국민학교 재학시절 CBS 기독교방송 어린이 전속 성우로 활동했던 김자옥은 자연스럽게 연기에 눈을 돌리게 됐고, TBC 동양방송 드라마 ‘우리집 5남매’를 통해 배우로서 정식 데뷔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눈을 떴던 김자옥의 평생직업이 타고난 배우였는지, 작품복도 함께 주어졌다.
MBC 공채 탤런트가 되자마자 1년 뒤인 1971년 서울중앙방송(지금의 KBS)로 스카우트된 김자옥은 드라마 ‘심청전’의 히로인으로 발탁되며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는 주인공이 된다. 어린 신인배우임에도 슬픈 연기에서 눈물을 곧잘 쏟아내며 심청이를 소화한 김자옥은 이후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수선화’와 만나면서 연기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수선화’에서 사연 많은 간호사 지선이 돼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린 김자옥은 ‘눈물의 여왕’이라는 애칭과 함께 당대 청순가련의 대명사가 된다. 김자옥의 대표작이 된 ‘수선화’는 그에게 단순히 인기만 가져다 준 것이 아니었다.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까지 수상한 김자옥은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인기’와 ‘실력’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은 여배우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데뷔 후) 3년 동안 여러 드라마에 출연했지만 ‘수선화’에서 운명이라는 걸 조금은 생각해 봤어요. 여인은 숙명 속에 산다지만 그것을 뚫고 나가는 건 사람 아녜요. 극중의 지선은 운명을 받아들여 소화하느라 무척 애를 썼던 그런 여자였던 것 같아요.” (1975년 1월1일 동아일보)
20대 김자옥은 미모와 실력을 두루 갖춘 그야말로 성공한 여배우였다. ‘보통 여자’(1976)와 ‘목마 위의 여자’(1979)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거머쥐기도 한 김자옥은 비단 자신이 활약하는 영역을 드라마에 한정짓지 않고 영화와 연극, 라디오 성우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며 끼를 발산해 왔었다.
70년대 톱탤런트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김자옥이었지만, 1980년 돌연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바로 가수 최철호와 결혼을 하면서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서 화면에서 모습을 감춘 김자옥이지만 1년 반 만에 드라마 ‘사랑의 조건’에 출연하게 된다. 한 남자의 여자로만 살기에는 배우로서 연기에 대한 갈망이 컸기 때문이다.
↑ 사진=무릎팍도사 캡처 |
“결혼을 계기로 평범함 가정주부가 되기로 결심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 솔직히 말해서 연기자 생활에 대한 미련이 청산됐던 것은 아니에요.” (1982년 1월21일 경향신문)
실제 김자옥은 당시 인터뷰를 통해 결혼 후에도 꺾이지 않았던 연기에 대한 갈망을 고백했었고, 결국 최백호의 허락 하에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다. 딱 한 편만 출연하려고 했던 김자옥이지만 그 한 번은 연기에 대한 갈증을 더욱 증폭시키게 됐고, 이후 같은 해 드라마 ‘아내’에 한 번 더 출연하게 된다. 연기 복귀 후 그 다음해 김자옥은 최백호와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의 남편 가수 오승근과 만나 재혼한 건 그로부터 1년 뒤의 일.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이라는 굴곡을 겪은 김자옥이었지만 그녀는 여배우였고, 연기에 대한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이후로도 ‘산유화’ ‘은빛 여울’ ‘유혹’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 연기의 전환점을 맞다…‘예쁜 나는 공주라 외로워’
“제 연기인생 자체도 어떻게 보면 참 코믹하지 않아요? 30년 가까이 슬픈 모습만 보이다가 이제는 완전히 반대로 웃기고 있잖아요. 저를 찾는 프로그램이면 될 수 있는 한 출연하려고 해요”(1996년 9월30일 경향신문)
1990년도는 김자옥의 배우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시기다. 바로 MBC 코미디 ‘오늘은 좋은날-세상의 모든 딸들’(이하 ‘세상에 모든 딸들’)에서 코믹연기에 도전하며 그간 굳어졌던 ‘비련의 여인’이라는 이미지를 단번에 날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공주병 신드롬’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건 일종의 덤이었다.
90년대 40대가 된 김자옥은 당시 연기에 대한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40대가 된 만큼 과거 청순가련한 역할이나 젊은 여주인공 역할을 하기 힘든 반면, 굳혀진 이미지가 있다 보니 다른 이미지로 전환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 김자옥을 빛나게 해 주었던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은 후에 연기변신에 발목을 잡게 된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의 모든 딸들’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매니저 일을 봐 주었던 태진아 덕분이었다. 당시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힘든 시기를 겪었던 김자옥은 태진아의 권유에 따라 ‘세상의 모든 딸들’에 출연하며 교복을 입은 공주병 여고생으로 180도 변신하게 된다.
“김자옥 씨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슬럼프를 겪을 때였어요. 그녀를 위해 코미디 연기를 제안했죠. 무조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2012년 4월12일 KBS2 ‘스타인생극장-태진아편’)
이른바 ‘자기 풍자’로도 불릴 정도로 파격적인 시도를 했던 김자옥은 “예쁜 애 예쁜 애 하지 말고 자옥이 너라고 꼭 집어서 얘기해”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단번에 그녀를 잘 모르는 어린 세대에게도 다가가며 친숙한 이미지의 배우로 부상하게 된다.
‘공주병’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각종 CF를 휩쓴 것은 물론, 김자옥이 부른 ‘공주는 외로워’ 음반이 무려 60만 장 이상이 팔리는 기염을 토하게 했다.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고 ‘공주는 외로워’를 부르는 김자옥의 모습은 우연히 미용실에서 만난 선배 여배우로부터 ‘여배우의 이미지를 망치지 말라’는 지적을 들을 정도로 유쾌하고 즐거웠다.
◇ 공주님, 엄마가 되다
↑ 사진=MBN스타 DB |
공주병 캐릭터로 연기의 폭을 넓힌 김자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기를 펼쳐나간다. 공주병으로 애교 있으면서도 푼수 아줌마와 이미지를 얻게 된 김자옥은 이후 영역을 시트콤으로 대중과의 거리를 한층 좁힌다.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 ‘슈퍼선데이-금촌댁네 사람들’ 등에서 활동하면서 능청스러운 코믹연기를 선보인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자옥은 안방극장에 엄마로 다가간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 KBS2 ‘오작교 형제들’ 등을 통해 연달아 주인공 엄마 역을 맡은 김자옥은 비록 ‘대한민국 대표 어머니상’으로 꼽히는 김혜자와 고두심, 김해숙과는 달랐지만 우리시대 또 다른 ‘중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공주병’의 이미지가 남아있는 김자옥은 비록 전형적인 엄마는 아니지만 다른 엄마들에 비해 예쁘게 꾸밀 줄 아는 엄마, 딸의 손을 잡고 쇼핑을 즐길 줄 아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소녀적인 엄마상을 그려내며 그렇게 안방극장에 자리를 잡아나갔다. 그렇다고 억척스러움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자식들을 위해 자신의 편의를 포기하는 엄마의 모습, 힘든 가운데서도 고군분트하는 엄마의 모정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나이들어도 사랑스러움과 애교를 겸비한 김자옥은 2009년 ‘지붕뚫고 하이킥’으로 다시 한 번 시트콤에 도전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데뷔 초 부녀지간으로 열연을 맞췄던 배우 이순재와 이번에는 연인으로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단아하고 차분한 말투, 급변하는 감정기복에 소녀 감성을 지닌 60대 처녀 고등학교 교감 역을 맡은 김자옥은 자신의 장기를 백분 활용하며 웃음을 선사했다.
김자옥은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던 중견 배우 중 한 명이다.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짐꾼 이승기와 여배우 군단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던 그녀의 얼굴 속에는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여행 중 피곤한 기색을 보이기는 했지만 작은 일에도 꺄르륵 웃고, 멋진 풍경을 보고 행복해 하는 김자옥의 모습은 극에서 보여준 엄마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김자옥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김자옥은 2008년 건강검진에서 대장암이 발견되면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연기를 하면서도 꾸준한 방사선 치료를 받아왔던 김자옥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고, 그렇게 완치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년 후인 2011년 암이 임폐선과 폐로 전이됐다는 사실이 발견됐고, 추가저긴 항암 치료를 이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도 방송에 출연해 연기를 펼쳤으며, 폐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에도 SBS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와 연극 ‘봄날은 간다’까지 소화하게 된다. ‘꽃보다 누나’ 출연당시 암투병 사실을 밝힌 김자옥은 “여행 전 두려움이 컸지만,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여행 계속 다닐 자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여행을 떠나기도 전 김자옥은 11월16일 44년의 연기 인생을 갈무리 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연기를 놓지 않은 김자옥의 인생은 나비처럼 날아와 꽃처럼 살다간 여배우의 삶이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