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생 서른살. 18살 때인 2002년 데뷔해 6집 앨범까지 발표한 가수. 힙합과 알앤비(R&B)를 아우르는 베테랑. 음악이라는 예술의 상업적 발전을 위해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기획 중인 거물. 이 사람은 누구일까.
가요계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대스타지만 국내 가수는 아니다. 주인공은 미얀마의 ‘국민 가수’ 예 레이(30, Ye’ Lay)다. 그는 최근 미얀마와 한국의 교류 물꼬를 트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미얀마는 지난 4월 케이팝(K-POP) 콘서트가 처음 열렸을 정도로 국내 팬들에게는 익숙지 않은 곳. ‘제1회 한-미얀마 우정 케이팝 콘서트’가 열렸던 ‘양곤’은 마침 예 레이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는 “올해 콘서트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공연을 보면서 합동으로 기획하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미얀마 국민들이 케이팝에 대해 알기 시작한 건 아마 2012~2013년쯤일 거예요. 모두 반갑게 맞이했고 케이팝에 대한 반응도 좋아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에는 케이팝이 조금 더 일찍 들어갔는데, 우리나라에도 점점 더 많은 한국가수들이 진출하리라 생각해요. 교류가 더 활발해진다면 미얀마 가수와 한국 가수의 합동 공연을 추진해보고 싶어요. 콜라보레이션 무대라든지 공동 안무까지 기획하는 걸로요. 훨씬 흥미로울 것 같지 않나요?”
“미얀마 국민들의 케이팝에 대한 인식이 어떻냐”고 묻자 자신이 구상하던 기획 아이템까지 대답이 술술 나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앞서 소개했듯 예 레이는 경험이 풍부한 미얀마 국민 가수다. 정규앨범 다섯 개와 미니앨범 하나를 발표했다. 내년 3월 말을 목표로 7집 음반도 작업 중이다.
예 레이는 힙합과 알앤비 장르의 곡을 주로 부른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지만 특히 젊은층의 팬들이 많다. 그는 “미얀마 학생들은 3월 중순에 시험을 본다. 젊은 친구들이 내 음악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발표 시점을 3월 말로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소한 부분까지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굳이 나 자신을 평가하자면, 미얀마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가수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라이브쇼, 콘서트, 앨범 개수 등을 따져서 순위를 매기거든요. 그만큼 제가 각종 행사에 많이 참여했다는 뜻이죠. 이 정도면 제 입지가 설명이 될까요? 또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기 때문에 미얀마 힙합과 알앤비의 선구자인 셈이죠. 하하.”
미얀마는 한국처럼 음원 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다. 명성이나 인기는 행사 수요에 따라 판단한다. 또 영화 사업은 정부 주도의 시상식이 있지만 음악은 기업이 초청해서 상을 주는 정도다. 예 레이는 “미얀마 음악 사회를 크게 키우고 싶다. 나는 에이전시, 매니지먼트, 기획자로서 활동하는 만능 사업가를 꿈꾼다”고 말했다.
“미얀마에서는 아직 연예인이 상업적으로 돈을 벌어 성공하기 어려워요. 시장이 작기 때문에 그래요. 예를 들어,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전문적인 자신의 비즈니스를 해야만 하죠. 저는 예술만 해도 생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계획입니다. 미얀마에는 그룹 가수가 거의 없는데, 과거에 많이 등장하긴 했었어요. 시스템이 안 맞아서 다 망가졌지만요.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의 힘이 꼭 필요해요. 저는 내년부터 에이전시 역할을 제대로 할 계획입니다. 기초부터 잘 다져서 인재 양성에 힘쓸 거예요.”
그는 “한국 3대 기획사(SM, YG, JYP)가 성공하는 이유와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며 “내가 미얀마의 음악 사회를 더 발전시킨다면 우리 가수들이 한국으로 진출해 미얀마를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했다.
“우리 부부의 러브스토리는 한국 드라마처럼 장황하니까 생략할게요. 하하. 아내는 회사를 운영하고 나는 가수로 활동하는, 다른 사회에 살던 두 사람이 만난 거예요. 이런 경우 가족 사업처럼 범위가 좁아질 수 있지만 우리는 적극적으로 해외 진출로 눈을 돌렸어요. 최근에는 IT 부문의 홍보에도 힘쓰고 있고요. 사실 우리 부부는 결혼해서도 이야기가 잘 안 통해요. 서로 전문 분야가 달라서 말이죠. 하하하.”
유튜브에 ‘Ye Lay’를 검색하면 그의 노래들이 줄지어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예 툰 민(Ye Tun Min)이다. 여기에 귀여운 느낌을 더하고 싶었다. 고심 끝에 ‘툰 민’ 대신 ‘레이’를 붙였다. ‘레이’는 미얀마어로 ‘작다’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그는 ‘아주 작을 때’부터 음악에 재능을 드러냈다.
“3살 때부터 음악이 좋았어요. 14살 때 작곡을 시작했고요. 학교 선생님들은 별로 안 좋아했어요. 애가 공부를 안하니까요. 하하. 백스트리트보이즈(Backstreet Boys), 보이존(Boyzone)의 노래를 듣고, 카피도 해보면서 혼자 음악 공부를 했죠. 그냥 맨땅에 헤딩이랄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미얀마에도 있나 보다. 그는 ‘독학 음악’으로 고등학교 노래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선생님들도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칼리지(3년제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정식 음악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한 가수를 만나며 본격 음악 공부를 시작한 것. 이 때가 2002년이었다.
“첫 시작은 힙합이었어요. 학교 선배들이 대부분 힙합을 했거든요. 저는 특히 에미넴을 좋아했어요. 3년 동안 선배들 밑에서 배우니까 기회가 오더라고요. 첫 앨범을 2005년에 발표했는데, 그 해에 첫 합동콘서트에 참여했어요. 프로 가수로 향하는 첫 발이었던 셈이죠. 그때 제가 직접 작사·작곡한 ‘어머니’라는 곡으로 랩을 선보였는데 성공적이었어요. 나중에도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더라고요. 도시에서 인정받는 가수가 된 거죠.”
시작은 힙합이었지만 두 번째 앨범부터는 알앤비도 접목했다. 음악에 균형이 잡히니 팬층이 더 넓어졌다. 가벼운 댄스도 섞으니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 한국의 지드래곤이나 태양이 비슷한 경우다.
예 레이는 “어린 시절 지드래곤의 모습을 알고 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음악을 했기 때문에 그에게 애착이 간다”며 “태양도 훌륭한 가수다. 그는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합동 공연을 한다면 그의 곡 ‘눈 코 입’을 잘 부를 수 있다”고 웃었다.
“리메이크 곡을 만들어 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유명한 노래들을 불러 유튜브에 올리는 경우는 많아요. 하지만 리메이크 곡을 만드는 건 미얀마 정서에 안 맞아요. 미얀마 팬들은 리메이크 곡을 앨범에 담는 걸 저작권 침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합동 공연에 대한 기대가 더 큰 겁니다. 공동 공연을 통해 함께 노래를 부른다면 양국의 음악 팬들에게 굉장한 선물이 될 거예요!”
음식 문화를 배우고, 언어 습득을 끝내면 그 나라의 대부분을 알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과 미얀마는 닮은 점이 한 가지 있다. 군부 정권 시절을 거쳤다는 것. 예술에 대한 검열이 존재했던 시기다. 다만 권력 보다 예술이 더 길 뿐이다. 진흙에서도 꽃은
“모든 예술이 정부가 만드는 위원회를 통해 편집을 거쳐야 하는 시기가 있었죠. 지금은 자유로워요. 특히 ‘국민 가수’로 칭송받는 저는 검열에 항상 걸렸어요. 그러면서도 검열을 통과하는 수준에서 팬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는 음악을 만들었어요. 저의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을 때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