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배우로서 달려온 지 벌써 9년째다. 배우 박재정은 데뷔 초기 KBS1 일일드라마 ‘너는 내 운명’ 남자 주인공을 단박에 꿰차고 예능 프로그램 곳곳에 얼굴을 비치며 초대형 루키 탄생을 알렸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신인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기회였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궜던 드라마 영상 하나로 얻은 ‘발호세’란 수식어는 꽤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이젠 그마저도 당당히 입에 올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발호세’요? 물론 당시엔 힘들었지만 그 단어가 이젠 원동력이 됐어요. 좋지 않은 에너지를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어쨌든 제게 남은 몫이니까요.”
박재정은 최근 MBN스타와 만난 자리에서 MBC 일일드라마 ‘소원을 말해봐’를 마친 소감과 그동안 배우로서 걸어왔던 길에 대해 담담히 털어놨다. 또한 ‘발호세’란 꼬리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대답하며 한층 성숙해진 면모를 보였다.
◇ “일일드라마 힘들지 않았냐고요? 지금은 채찍질할 때죠”
‘소원을 말해봐’ 현우 역은 애초 특별출연으로 제안 받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극 중 비중이 높아졌다. 40회까지만 나오기로 한 분량도 86회까지 늘어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으나 점점 더 캐릭터에 애정이 실렸단다. 매일매일 방송분량을 채워나가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는 그다.
“몸과 마음이 힘든 작업이 내 재산이 된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은 채찍질할 때고요. 앞으로도 몸을 더 굴려서 힘들게 하고 싶고요. 늘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어서 그런지 영화 끝나자마자 ‘소원을 말해봐’로 바로 투입됐지만 보람 있는 작업이었어요.”
그가 맡은 현우는 극 중 회사 음모에 휘말려 오랫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가까스로 깨어난 캐릭터. 그러나 피앙세 한소원(오지은 분)의 마음이 떠난 것을 알고 아파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 비운의 인물이다. 박재정은 촬영 내내 실제 머리도 감지 않고 체중 관리도 하며 연기에 매진했다.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떤 팬이 내 손을 꽉 잡고 이 역만큼은 열심히 해달라고 했어요. 자기 딸이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어서 나로 인해 기적을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식물인간으로 지내다가 5년 만에 깨어난 현우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섬세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어요. 환자가 헤어스타일링에 풀 메이크업이 돼 있으면 이해가 안 될테니까요.”
실제로 임자 있는 사람과 사랑이 가능하냐는 질문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요. 한소원처럼 약혼자가 있다면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들면 모험할 수도 있겠지만, 흔들리는 얕은 마음이라면 억눌러야죠. 사랑도 책임감이 필요하니까요.”
◇ “‘발호세’란 단어, 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왔다. 지난해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연극, 영화, 드라마 등에 매진했단다. 그 중심에는 ‘발호세’란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는 재미로 만든 영상이었겠지만 전 몇 년 간 힘들었어요. 단어가 굉장히 자극적이었잖아요. 하지만 피하는 건 싫었어요. 그 영상을 직접 찾아보기도 했죠. 당시 신인인데 주연을 맡으니 연기에 부담이 컸고 너무 힘을 줬던 것 같아요. ‘너는 내 운명’ 끝날 때쯤엔 이대로 잊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 각오로 OCN ‘신의 퀴즈’ ‘조선추리화라극 정약용’에 임했더니 고맙게도 좋은 평가가 나왔어요. 혼자 엄청 울었죠. 그렇게 연기에 힘이 빠지니까 촬영 현장도 그제야 편해지더라고요.”
당시 박재정을 만나 호흡을 맞춘다면 그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상대가 주는 액션을 받아서 맞춰야 하는데 준비를 많이 해서 그걸 느낄 틈이 없었거든요. 또 NG가 나도 ‘죄송하다, 다시 하겠다’는 말을 못했어요. 아쉬웠던 장면들도 그냥 나갔죠. 착하게 행동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말도 해주고 싶네요. 하하.”
35살, 남자 배우로서 책임감을 주는 나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던지 시작하면 10년은 해야하지 않나요? 배우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연기를 시작한지 이제 10년이 됐어요. 그동안 화려한 시절도 있었고 욕도 많이 먹었죠. 그리고 지금 느끼는 게 이제야 제대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발호세’ 땐 35살이 되기만을 기대하고 견뎠다면 이젠 배우로서 책임지고 가야할 때 아닐까요?”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