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공진이랑 돌석 중에서 누가 더 불쌍해요?”
영화 ‘상의원’의 주연배우 고수(이공진 역)는 인터뷰 시작부터 취재진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돌석’(한석규 분)이라는 대답을 내놓자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였다.
“저는 당연히 아무 것도 갖지 않은 공진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이 다 다르더라고요. 의외로 돌석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그런데 그 열등감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촬영을 마친지 한참이다. 그럼에도 고수는 공진 캐릭터에 여전히 몰입해 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이 연기한 공진에 대한 안타까움을 진하게 내보였고, 보는 이들에게도 공진이 처한 상황과 그의 내면을 함께 이해하게끔 만드는데 힘을 쏟았다.
“예전에 했던 캐릭터들은 누군가가 화를 내면 ‘왜 화를 내느냐’라며 물어볼 수 있고,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고, 같이 성을 낼 수도 있었는데 공진은 달랐어요. 그럴 수도 없었고, 억울한 상황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그걸 안고 갔어요. 그런 면에서 ‘공진이 이렇게까지 참고 가는 게 맞나’라는 고민을 많이 했죠.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반응 대신 다른 쪽으로 공진의 다른 내면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수위 조절 하는 게 어려웠어요.”
‘상의원’은 아름다움 그리고 질투에 대한 영화로, 조선시대 시대 상의원을 배경으로 30년 베테랑 어침장 조돌석과 천민출신 디자이너 공진이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 아름다움을 갖지 못해 질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공진은 기방을 전전하면서 기생들의 한복을 만들고, 파격적으로 변신을 시키는 일을 한다. 천민 출신인 그는 신분상승의 욕망 따위는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예쁜 옷이 나오고, 편안한 옷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만 가득하다. 여전히 공진에 빠져 있는 고수의 모습에 잠시 혼을 빼앗겼지만, 사실 이 작품은 고수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사극이었다.
“원래 제가 옛 것 특유의 느낌을 좋아해요. 특히 궐 안의 이야기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도 사람이 살고, 현재에도 사람이 살지만 생활양식은 조금씩 다르잖아요. 공간은 그대로 있고 사람만 바뀌는 게 신기해요.”
평소 사극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지만 생각만큼 공진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돈과 명예 등에서 자유로운 천민 출신 패션디자이너 공진을 이질감 없이 표현하려면 다비드상과 고수의 이름을 합친 별명 ‘고비드’도 버려야 했고, 힘을 최대한 빼야 했다. 조각 같은 외모로 대중들의 마음을 빼앗았던 고수에게는 나름대로의 연기 변신이 필요했다.
“본능적으로 자꾸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이런 공진은 좀 아닌 거 같다’고 하셨어요. 배우가 공진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감독님이 기다려주셨죠. 완성된 걸 보니 ‘이게 맞았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에는 공진의 감정이 많이 느껴졌어요. 감정을 많이 싣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수 있고, 제 소리를 낼 수 있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그걸 알게 됐어요.”
천재 디자이너 연기를 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고수는 직접 바느질을 배우고 패션을 공부하면서 조금 더 공진에 가까워졌다. 얼마 전 태어난 아기에게 입힐 돌 옷을 만들어 줄 정도로 바느질 실력은 일취월장이었다.
“영감을 떠올리는 부분 등 공진이 풍부하게 보였으면 했는데 나오지 않는 부분이니까 그림 그리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사실 공진이 돌석보다 바느질하는 장면이 더 많거든요.(웃음) 어머니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바느질을 했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저도 바느질 한 두어 달 해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많이 했어요. ‘옷을 입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도 떠올렸고요.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지한 모습을 보였던 고수는 공진으로 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특히 능청스럽고 오지랖 넓은 공진의 성격이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다는 것이 취재진에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매 작품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금의 고수가 만들어졌다.
“현장에서 웃을 수 있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왜 지금까지 이렇게 안 웃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공진은 천재라기보다는 그냥 자유로운 인물인 것 같아요. 천재가 진짜 있을까요? 영화 후반부에 공진의 손가락이 나오는데 바늘로 입은 상처로 가득해요. 결국 노력하는 천재였죠. 저도 후천적인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고요.”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사진=곽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