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평일 안방극장에 다중인격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두 명의 다중인격 남자주인공들이 여심을 놓고 매력대결을 펼친 것이다.
흔하게 나타나는 정신과적 질병도 아닐뿐더러, 실제 의학 통계에 따르면 질환자의 90% 이상은 여성. 100여 년 전부터 의학계에 알려지고, 1980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돼온 ‘다중인격장애’는 무엇이기에 안방극장을 홀린 것일까.
◇ 7인의 인격이 많다고? 심하면 26명까지
드라마는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는 이중인격을 뛰어 넘어 무려 7개의 인격이 드러났는데, 이는 실제와 어떻게 다를까.
다중인격장애의 정식 명칭은 해리성정체감장애다. 가장 간단한 형태는 이중인격이고, 3개부터 수십 개까지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드라마와 달리 현실 속 해리성정체감장애는 성인 남성보다 성인 여성에서 3~9배까지 더 빈번하게 진단된다는 것이다. 인격의 수 역시 남성은 평균 여덟 까지 정체감을 소유하는 반면 여성은 평균 열다섯 가지 이상을 소유하기도 한다.
분신의 수는 평균 13~15명 정도이며, 중앙값은 8~10명이지만, 실제로 6명 이하의 분신이 나타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 평균이 높은 것은 과거 환자 중 많은 인격을 소유한 환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할 경우 26명까지 분신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는데, 세 명의 인격이 나타나는 경우가 가장 흔한 것으로 알려졌다.
흔히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실제로 한 사람 안에 여러 개의 인격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의 내부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정신 상태의 일부분들이 일시적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조종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픈 과거, 제 2의 인격을 만들다
‘킬미, 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가 이제 막 시작한 만큼 이들이 다중인격을 지니게 된 사연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킬미, 힐미’의 경우 차도현이 다중인격을 보이게 된 계기로 어린시절 자택 화재사건이라는 단서만 남긴채 모든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다만 지난 21일 방송에서 제2의 인격인 신세기가 본인격인 차도현을 대신해 힘든 상황을 대신했으며 자신이 아니었으면 차도현도 죽었다고 언급하면서 과거의 상처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이드와 지킬, 나’는 이제 첫 회가 시작된 만큼 구서진이 이중인격이 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과거의 벌어졌던 사건사고와 연관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다중인격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그 원인은 유년시절에 받은 육체적 또는 성적 학대나,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끔찍한 사고의 목격 등 정신적 외상이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환자의 95~100%가 어린시절에 근친상간이나 학대를 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이것을 심한 학대나 정신적 외상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질환자들의 숨겨진 성격은 특히 분노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킬미, 힐미’ 속 모범생인 차도현과 반대되는 신세기가 폭력적인 것처럼 말이다.
‘킬미, 힐미’ 속 차도현은 이미 여러차례 사건들을 통해 내면에 다양한 인격이 존재함을 눈치 챈 상황이다. 다만 여러 인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격이 교체됐을 때, 각 인격들이 했던 행동이나 사건 등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쉽게 말해 차도현은 신세기일 때 했던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며, 페리박은 신세기가 했던 일들을 인지하지 못한다.
해리성정체감장애 환자들 역시 특정한 인격이 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할 동안 경험한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그러한 인격의 존재도 알지 못한다. 여러 성격 중 한두 인격이 다른 성격들의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각각의 인격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서로 다른 취향과 나이, 특징을 보이며, 드물게는 환자 자신이 전혀 모르는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실례로 독일의 해리성정체감장애 환자의 경우 여러 인격 중 영국인 인격도 존재했는데, 이 인격의 경우 독일어가 아닌 유창한 영국식 영어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 하나의 인격으로 통합되기도 하나요?
해리성정체감장애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의 증세를 감추려고 하는 경향이 크다. ‘킬미, 힐미’ 속 차도현이나 ‘하이드 지킬, 나’ 속 구서진과 같이 말이다. 차도현의 경우 남몰래 응급처치기술까지 배우며 병원에 가지 않고 자잘한 상처들을 치유하면서까지 자신의 다중인격을 감추려고 하고, 구서진의 경우 철저하게 심박수를 체크하면서 자신의 원래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보통 대중매체에서는 해리성정체감장애 매우 극적이고 위험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비밀스럽게 증상을 감추려 하기 때문에 주변에 알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과거 다중인격으로 인한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건은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William Stanley Milligan, 1955년 2월14일~2014년 12월12일) 사건이다. 세칭 빌리 밀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미합중국에서 강간하고 무장 강도를 저질렀는데 재판에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있다고 판단돼 무죄를 선고받은 미국인이다.
빌리 밀리건은 여대생 3명을 강간한 후 3회의 납치 사건, 3회의 무장강도 사건, 4회의 강간 사건으로 기소되지만, 변호 과정에서 심리를 검사받으면서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는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스탠리 밀리건는 고등학교 중퇴의 학력이었지만 아서(Arthur)라는 인격이 지배하면 아랍어와 아프리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수학, 물리학, 의학을 전문가 수준으로 뽐내고, 레이건(Ragan)일 때는 크로아티아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토미(Tommy)로 변신하면 전자제품을 능숙하게 다루는 등 단순한 연기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재판 결과 무죄판결을 받은 윌리엄 스탠리 밀리건은 이후 정신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으며, 정신병원 생활 10여년 만인 1988년 법원에서 더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겪지 않는다고 판결 받아 석방됐다.
실제 해리성정체장애 확진을 내리기까지 평균 7년이 걸리며, 치료기간 까지 포함되면 더욱 시간은 늘어난다. 정신치료적 접근이 효과적인 것으로 되어 있고 항 우울제나 항불안제 등의 약물 요법이 보조적으로 사용된다. 여러 성격에 대해 파악하고 상대적으로 적절한 성격과 치료적 동맹을 형성한 후 보다 부정적이고 문제 있는 성격에 대한 심리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필요한 경우 입원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현재까지는 최면을 통한 진단이 가장 신뢰 있고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