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안녕하세요, 신인 배우 김이안입니다. MBC 드라마넷 ‘스웨덴 세탁소’에서 ‘훈남 의사’ 박기준 역을 맡았어요. 저는 로스엔젤레스에서 13년 정도 살다가 스무 살 무렵에 한국으로 왔어요. 한국말이요? ‘잘 몰롸요.’(웃음) 농담이고요, 꽤 능숙하답니다. 물론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벌써 한국 생활 8년 차인걸요. 좌충우돌 한국 정착기였지만, 참 즐거운 나날입니다.
◇ 캐스팅된 비결? 29살 때 알고 싶은 것
한국에 온 건 2007년이에요. 8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다시 돌아온 계기는 참 재밌어요. 제가 이제 막 십대를 벗어날 무렵, 만약 내게 평범한 인생과 다른 길이 있다면 보여 달라고 기도를 했어요. 그리고 나서 바로 어떤 콘테스트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게 알고 보니 SM엔터테인먼트의 글로벌 오디션이었어요. 사실 그 콘테스트는 순전히 상품인 최신형 휴대폰을 받기 위해서였는데.(웃음) 그 콘테스트를 끝내고 내려왔는데 이수만 선생님과 마주쳤고, 저를 직접 불러서 ‘우리 식구로 널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수만 선생님께서 왜 그러신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짐작을 하자면, 제가 사실 그 전까지는 연예계를 많이 알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수만 사장님도 잘 몰랐던 탓에 사장님의 제안을 듣고는 그저 ‘명함 한 장 주시면 나중에 연락 드리겠다’고 대답했지 뭐예요. 그 패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어, 얘 뭐지’ 싶지 않으셨을까요.(웃음) 제가 29살 때 꼭 알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제 캐스팅 이유랍니다.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
그렇게 한국 생활이 시작됐어요. 오자마자 한국어 공부부터 했죠. 미국에서도 가족들끼리는 한국어를 써서 단어나 문법은 무리 없이 익혔는데 단어의 개념이나 쓰임새는 다시 배워야 했어요. 문화 적응 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거의 2년 정도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한국인이기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게 있기도 했죠. 연습생 동기가 헨리인데, 헨리나 엠버는 아예 외국인이기 때문에 ‘모를 수 있다’는 게 있었는데, 저는 ‘한국인인데 왜 모르냐’는 물음을 받곤 했거든요.
한국 도착한 첫 날이 생각 많이 나요. 연습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밤 늦은 시간에 길을 잃어서 해 뜰 때 집에 도착했거든요.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제가 말도 어눌하니 다들 경계하실 수 밖에요. 파출소에 들어가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어요. 혹독한 신고식이었죠.(웃음) 그래도 지금은 말이 어눌한 걸 시청자 분들이 많이 모르실 정도로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에요.
◇ 하나뿐인 형, 나에게 영감을 주는 소중한 존재
제가 연습생이었을 때에는 아이돌 그룹이 한창 연령대가 내려가던 때였어요. 샤방샤방한 게 대세였죠.(웃음) 하지만 저는 춤에 자신이 없었고, 회사에서도 마침 ‘길게 보고 연기를 해보지 않겠냐’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사실 그 때쯤 저도 연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오기도 했기 때문에 반갑게 받아들였죠.
막상 연기를 시작할 때에는 연기를 잘 몰랐어요.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면 무엇을 하더라도 다 허락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던 때였어요. 예를 들면, 카메라가 없을 때 제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면 그건 미친 사람이 되는 거잖아요.(웃음) 하지만 카메라라는 것 때문에 저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참 매력적이었죠.
물론 제게도 힘든 시기가 찾아왔어요. 한 2년에 한 번 정도 왔던 것 같아요. 전투적인 분위기에서 꽉 찬 스케줄을 매일 소화해야 하는 게 참 힘들었죠. 그 때마다 가족들이 있는 미국 집에 다녀왔어요. 갈 때는 거의 ‘안 오겠다’는 마음으로 가고는 했지만, 그 때마다 저를 다시 여기로 데려다 놓는 힘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참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마침 가장 힘들 때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의 오디션 기회가 주어졌고, 합격을 하게 돼 뮤지컬에 발을 들이게 됐어요.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큰 기회를 잡은 거죠.
‘사랑은 비를 타고’는 여러 모로 애착이 가요. 형과 동생이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는 내용이에요. 제가 형을 만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처음으로 형이 저를 울렸어요. 저희도 무언의 화해를 한 거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뮤지컬 대본을 보니 ‘어라?’ 싶더라고요. 저희 형제의 모습이었거든요. 그 다음 작품인 ‘환상의 커플’ 때는 조카가 태어났는데, 때마침 작품에서도 제가 삼촌 역할이었어요. 형은 제게 많은 영감을 주는 존재에요. 형에게는 항상 고맙죠. 지금은 기러기 막내 신세지만 가족들이 항상 보고 싶어요.(웃음)
◇ 인생의 전환점, ‘사랑은 비를 타고’
‘사랑은 비를 타고’가 전환점이 된 것 같아요. 연기에 관심이 있었을 때에는 씨앗이 박힌 거라면, ‘사랑은 비를 타고’를 끝내고는 싹을 틔우게 됐거든요. 그 작품에 참여한 신인 배우는 딱 두 명 뿐이었어요. 아듀 작품이라 기본 10년 이상 이 작품을 한 분들이 모인 건데 제가 들어가게 된 거거든요.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그만큼 참 많이 배웠어요. 연기가 이런 건가 싶기도 했고요.
↑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
함께 했던 홍록기 선배님께서 연기 외적인 부분으로도 많이 조언을 해주셨어요. 제게 ‘한 번 느껴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나 자신을 보호하면서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시곤 했거든요. 제게는 ‘사형’(師兄)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혼나기도 많이 혼났죠. 하지만 그러면서 선후배의 끈끈함이나 정을 배울 수 있었어요. 만약 ’사랑을 비를 타고‘가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 미국에 있을지도 모를 거란 생각도 해요. 저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에요.
그 작품을 하면서 실력도 참 많이 발전했어요. 솔직히 선배님들만 있는 작품에 ‘쌩판 초짜’인 제가 얼마나 불안해보이셨겠어요. 감독님께서 저를 붙잡고 8시간 이상을 훈련시키셨어요. 아무도 없는 무대 한 가운데에 저 혼자 서서 무대를 몸에 익히고 느낄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고요. 저 또한 부족함을 많이 알았기 때문에 공연 없어도 매회 공연을 보러 찾아갔어요.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그렇게 붙잡고 해주셨던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요.
가장 보람을 느낀 건 다른 선배님들께서 ‘매회 편해지는 게 느껴진다’고 칭찬을 해주셨던 거에요. 또 제가 칭찬에 약해요.(웃음) 칭찬을 듣기 위해 더욱 열심히 했고, 그렇게 하면서 제가 조금씩 나아지는 걸 스스로도 느끼니 ‘이게 매력이구나’ 싶을 정도로 재밌었어요.
◇ 이제 싹틔운 제 나무, 곧게 자랄 거라 믿어요
사실 아직까지는 무대가 조금 더 편해요. ‘사랑은 비를 타고’로 싹을 틔웠는데, 사실 아직도 잎 하나 더 난 수준이고요. 전 이제 새싹이에요. 아직 드라마에서는 제가 몰입도가 약한 것 같기도 해요. 지금은 이 부분을 최대한 고치고 캐릭터에 더 빠져들 수 있는 노하우를 쌓아가려고 노력 중이고요.
많은 역할을 맡아보지 않아서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훈남’의 이미지가 있는 역할들을 주로 했던 터라.(웃음) 앞으로는 악역도 해보고 싶어요. 특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악역이요. 제가 정말 참는 성격인데 연기로 이런 걸 풀어보고 싶기도 하고.(웃음) 타당한 이유가 있는 악역을 맡으면 정말 자유롭고 신선한 저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후회했겠냐고요? 그건 모르죠. 저는 지금의 제게 충실할 뿐이에요. 항상 ‘과거의 10%, 미래의 10%, 현재의 80% 균형이 깨지면 마음의 병이 온다’는 심리학 법칙을 철저히 맞추고 살아가려고 해요.
아까 싹을 틔웠다고 했던 제 나무는 곧게 자랄 거예요. 저는 저를 믿어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걸요. 스타가 되고, 되지 못하고는 당연히 확신할 수 없죠. 하지만 연기는 다른 것 같아요. 예전에 제가 음악을 할 때, 한 지휘자 분께서 제게 ‘사람이 프로가 되는 시간은 10년, 1년에 천 시간 씩, 만 시간이다. 안 하는 것뿐이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이 말을 듣고 저는 ‘하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제 막 발을 내딛었고, 앞으로 꾸준히 노력해서 만 시간을 채운다면 충분히 제 자신도 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해요.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