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사람들은 그에 말한다. “나 PD니까.” 그 한 마디 안에 담긴 믿음을 나영석 PD는 져버리지 않는다. KBS2 ‘1박2일’부터 tvN ‘삼시세끼-어촌편’까지 그래왔다. ‘예능 신(神)’이 있다면 나영석 PD는 신의 비호를 받는 ‘신의 아들’쯤 되는 것 같다.
그런 나영석 PD는 최근에, 그리고 오랜만에 위기를 맞았다. ‘삼시세끼-어촌편’을 시작하기 며칠 전, 프로그램의 멤버인 배우 장근석의 탈세 논란이 불거졌기 때문. 결국 장근석이 하차한 채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하지만, 모두의 우려와 예상을 깨고 ‘삼시세끼-어촌편’은 첫 방송에서 9%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박’을 이뤄냈다. 소감을 물으니 나 PD는 약간 망설이다 “사실은 마음이 편치 않다”고 입을 열었다.
“솔직한 심정은 시청률이 잘 나온 건 정말 행복하다. 어쨌든 가능하면 ‘멀쩡히’ 보이려고 고생을 많이 했다. 저희가 생각했던 완성도와는 분명히 다른 방송이다. 출연자 중의 삼분의 일을 담당한 한 축이 사라진 채로 당분간 방송을 끌고 가야한다. 저희는 사실 마냥 기쁘지는 않다. 만들면서도 굉장히 아쉽다. 세상에 프로그램을 내놓을 때 ‘이제 후회는 없다’는 마음으로 내놔야 하는데, 늘 마음에 안 드는 아이를 내놓는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 사진제공=CJ E&M |
그는 하차한 장근석이 참 열심히 해줬기 때문에 양날의 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런 나 PD는 오히려 이번 ‘삼시세끼-어촌편’에 닥친 위기를 극복한 것을 통해 ‘위기관리에도 능한 PD’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에 대해 그는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큰 위기에도 의연할 것 같은 나 PD도 사실은 여러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늘 고민에 빠진단다. 하지만 늘 결론은 “시청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답으로 흐른다고 나 PD는 말했다.
“위기관리라는 건 참 희한한 게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경험치는 분명 생기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연출진으로는 마음도 아프고, 여러 감정이 든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만드는 예능 프로그램은 우리끼리 보려고 만드는 프로그램은 아니지 않냐. 공공재 같은 성격이 있기 때문에 저의 입장보다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게 옳은 경우가 대부분이더라. 그게 위기관리라면 위기관리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결론을 내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늘 만드는 프로그램마다 ‘대박’을 터뜨리며 예능계의 ‘마이더스의 손’이 된 나 PD도 사실 ‘삼시세끼’가 이렇게 잘 될줄은 몰랐단다. 나 PD 스스로 ‘삼시세끼’ 첫 촬영을 회상하며 “망했구나 싶었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우리가 너무 오버했다. 또 제멋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재미없을 것 같다고 얘기할 만 했다. 그나마 출연자 두 명도 웃긴 사람도 아니고,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며, 재밌는 게임을 하지도 않고 그저 밥만 짓는다(라는 게). 99프로의 업계 관계자 분들이 걱정을 하셨던 것 같다. 일부러 여백을 많이 둬서 그 여백을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게 하자는 게 콘셉트였다. 그게 통할 거라고 생각했고, 겁 없이 도전을 했는데 첫 촬영을 하고 나니 여백이 너무 많은 거다.(웃음) 두 세 시간 동안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예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 첫 촬영을 하고 나서 저희도 ‘이번엔 진짜 망하겠다’고 얘기했다. 어쨌든 찍었으니 방송은 해야겠으니 여백은 여백대로 살려서 냈다. 시청자 분들이 그런 부분을 새롭고 재밌게 느끼셨던 것 같다. 여백이 통할 것이라 예상은 했었지만 이 정도로 통할 줄은 몰랐다. 시청자 분들이 오히려 저희보다 더 빠르고, 멀리 가 계신 거였다.”
↑ 사진제공=CJ E&M |
예상과 달리(?) 성공을 거둔 ‘삼시세끼’처럼 나 PD의 예능은 늘 어디론가 떠난다. tvN ‘꽃보다 할배’ 등의 ‘꽃보다’ 시리즈도 그랬고, ‘1박2일’도, ‘삼시세끼’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왜 항상 떠나는 예능 만드냐는 질문에 나 PD는 “그걸 제가 좋아한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프로그램에는 연출자의 취향이 묻어나기 마련이라고 웃는 그는 ‘삼시세끼’를 예로 들어 ‘늘 떠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그 순간만이라도 일상을 잊고, 신선함을 얻고, 한 번 흐뭇하게 미소라도 지으려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가능하면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 진행을 하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도 일상에 치어 힘들 때에는 휴가가고 싶고, 쉬러 가고 싶지 않냐. 실제로는 마음만 그렇고 못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대리 만족을 예능프로그램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그런 대리만족을 얻는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 분들도 프로그램을 보면서 힐링을 받는 거다. ‘삼시세끼’도 지금 당장 내가 귀농을 할 건 아니지만, 프로그램을 보면서 잠시나마 느리게 사는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 같다. 예능에서는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영석 PD는 항상 ‘느리게 살기’에 초점을 맞춰왔다. ‘삼시세끼’도 그랬고, ‘꽃보다’ 시리즈도 출연자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천천히 여행지를 둘러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았다.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말한 단어가 “여유”와 “한 템포 느리게”였을 정도로, 나영석 PD는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뭔고 하니 “제가 좀 그렇다. 시골 사람이라 그런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물론, 저도 급하게 살긴 하지만, 저라는 인간 자체가 21세기답지 않은 부분이 있다. 첨단기기도 잘 사용하지 못하고, 아날로그 지향적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이 조금은 (아날로그 지향적인)그런 부분이 있다고 말이다. 실제론 굉장히 바쁘게 살지만, 느리게 사는 여유를 추구하고 원하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 (빠르게 살다 보니)못 보고 그냥 지나치는 것들도 굉장히 많다. 한 칸만 뒤로 가서 생각해보면 굉장히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있고,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계절의 변화 같은 작은 것들도 느끼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도시에서 살면서 잊고 있는 부분들이 많아졌다. 그런 잊혀져 가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도시에서 사는 시청자들 중 이런 걸 원하는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사진제공=CJ E&M |
그렇게 ‘여유’를 외치는 나영석 PD지만, 그는 눈 코뜰 새 없이 바쁘다. 나 PD 말을 빌리자면, 섬에 들어가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면 일요일에 짐을 싸서 방송국에 출근해 금요일 밤 ‘삼시세끼’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퇴근해 밀린 빨래를 돌리러 집에 들르는 일상이 반복될 정도다. 그는 그렇게 바쁜 일상을 tvN에 입사한 후 계속해왔다. 어느 새 tvN 예능의 중심이 돼 버린 나영석 PD는 후배들이 대중들과 호흡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메인 PD만 참석하는 게 일반적인 제작발표회에 후배 PD들과 항상 동석하는 것만 봐도 그런 나 PD의 노력을 알 수 있다.
“물론 저도 부담감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후배들이 안 되면 제가 힘들어질 거다. 저는 (후배 양성과 같은)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후배들과 일하면서 후배들이 성장하고 자기 살림을 차려서 나가고 어엿한 자신의 몫을 하는 과정에 함께 하는 게 재밌다. 저한테도 필요한 일이다. 제가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몸은 한 명이니까. 일하는 방식이나 수준이 어느 정도 갖춰진 친구들이 여러 명 있으면 당연히 ‘이런 재밌는 게 있는데 너와 함께 얘기 맞춰서 해보자’ 이런 게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제가 꿈꾸는 건, 여러 후배들과 역량도 같이 키우고, 저도 도움을 받고 해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각자 잘하는 것들이 생겨서 재밌는 아이템을 나눠서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굉장히 중요한 단계다. 작년 중순부터 제가 단독 프로그램은 한 적이 없다. 계속 후배들과 공동 연출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그렇게 할 거다.”
그런 나영석 PD에게 문득 ‘좋은 예능’의 정의가 궁금해졌다. 그는 꽤나 난해한 질문에 “사실 100명의 PD에 물어본다면 100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고, 제게도 정확한 답은 없다”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나 PD는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를 보는 첫 번째 이유는 재밌으려고 보는 것이지만”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예능’에 대한 답을 대신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는 모두 힘들고 바쁘게 살지 않냐.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시청자들이 잊고 있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싶었다. ‘꽃할배’는 우리네가 잠시 잊고 있었던 ‘어르신’이라는 존재를 되새기게 해주고 싶었고, ‘삼시세끼’로는 ‘아, 맞다. 우리가 저렇게 아무 것도 없이 살아도 살 수 있는데 내가 왜 이렇게 버둥거리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으면 싶은 마음이 있다. ‘저렇게 할 수도 있었는데, 나 혼자 너무 힘들게 살았구나’ 싶은 마음을 잠시나마 시청자 분들이 하신다면 저는 정말 그게 보람 있는 거다. 시청자 분들이 ‘나 정말 지쳐있었는데 당신 프로그램을 보고 저렇게 한 템포 쉬면서 살 수도 있었는데 내가 왜 아등바등 살고 있었지 싶었다’고 말해주는 게 PD로서 가장 기분이 좋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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