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이하 ‘킹스맨’)이 외화에다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흥행 악조건에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킹스맨’은 2030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이하 영진위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킹스맨’은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주말 3일간 90만2958명을 동원, 누적관객수 234만2770명을 기록했다. 이는 ‘조선 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누적관객수 315만1389)과 견주어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치다. 이는 청소년 관람불가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인 결과다. 기껏해야 동네 불량배가 비밀 업무를 수행하는 스파이가 된다는 단조로운 이야기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 진부해서 즐거운 히어로물
히어로물이라고 한다면 ‘시궁창 같은 삶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한 소년이 조력자를 만나 영웅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라고 단번에 떠올리기 마련이다. 평범해 보였던 소년은 언제나 핏줄부터 다른 타고난 영웅인 경우가 태반이고, 조력자는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갚아야 될 빚이 있다.
↑ 사진=킹스맨 포스터 |
이런 서사 방식이 얼마나 진부한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던질 수 있는 질문은 “진부한 것이 나쁜가?”다. 매튜 본 감독은 이 질문에 “아니다”라고 담백하게 답한다. “1960년대와 70년대 유행했던 고전 스파이 영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주장했던 그는 전혀 새로운 스파이의 모습이 아니라, 클래식한 스파이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진부함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매튜 본 감독의 선택은 탁월했다. 에그시(태런 애거튼 분)가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탈출할 때, 해리 하트가 에그시에게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제공할 때. 그리고 해리 하트의 기대에 얼마든지 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에그시의 모습을 볼 때면 관객은 언제 이야기 전개가 급변할 지 긴장하지 않고 즐길 수 있다. 화려한 볼거리와 신나는 음악이 진부함을 진부하다고 느끼지 않게 만들고, 신 하나하나마다 그저 도취되게 만드는 셈이다.
◇ 잔혹한 듯 잔혹하지 않은 ‘19금 액션’
‘킹스맨’의 또 하나의 강점은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지나치게 잔인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스파이가 등장하면 기본적으로 유혈이 낭자하고, 지나친 폭력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매튜 본 감독은 ‘잔인하지 않으면서도 통쾌한 액션’의 정도를 적당히 조율한 듯하다.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킹스맨’ 속 액션은 합이 잘 짜진 안무처럼 정갈하다. 적이든 아군이든 상관없이 합을 맞춰가며 서로에게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 한다. 동시에 1990년대 활발하게 활동했던 영국의 전설적인 팝 그룹 테이크 댓이 참여한 OST가 액션신의 흥을 돋운다.
↑ 사진=킹스맨 스틸컷 |
특히 발에 칼을 단 가젤(소피아 부텔라)의 액션은 아름답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는 발레와 비보이가 연상되는 몸놀림으로 비밀 요원 단체인 킹스맨을 위협하는데, 그 움직임이 예술적이어서 넋을 놓고 보게 만든다.
뿐만 아니다. ‘킹스맨’에는 곳곳에 만화적인 장치가 숨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총을 맞거나 칼에 찔려도 실제처럼 피가 튀지 않는 다는 점이다. 상처가 생긴 흔적정도는 남지만 더 디테일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때문에 잔인한 것이 부담스러운 사람들 역시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 은근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향기
매튜 본 감독이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를 성공적으로 흥행시키면서, 차기작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상태일 때 ‘킹스맨’ 제작에 돌입했다. 그래서일까. ‘킹스맨’ 곳곳에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의 흔적이 엿보인다.
가령 에그시가 해리 하트를 따라 처음으로 찾은 비밀 요원 사관학교를 소개하는 장면에선, 찰스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 분)를 따라 비밀 기지로 향하는 엑스맨 멤버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또 킹스맨 요원이든, 엑스맨 멤버든 자신이 지닌 능력을 200% 발휘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과정을 거치는 장면 역시 흡사하다.
뿐만 아니다. 매튜 본 감독은 두 작품에서 모두 시대적인 배경을 악당과 결합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962년 실제로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는 세바스찬 쇼우(케빈 베이컨 분)가 군사와 결탁해 세계를 지배할 꿈을 꾼다는 이야기를 담았고, ‘킹스맨’에서는 허술한 듯 보이지만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 분)이 임의로 인구 수 조절에 나선다는 이야기를 그리면서 지나친 문명의 발달이 윤리성을 위협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앞에서 나열한 그 어떤 것 보다도 ‘킹스맨’이 국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통쾌함’ 때문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요즘 젊은이들이 버튼 하나로 악당을 제지하는 에그시를 보면서 속이 ‘뻥’ 뚫리는 대리만족을 경험한다. 물론 폭력이 모든 것을 승화시킬 수 있는 장치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때로는 단순하고 화끈한 액션이 마음의 짐을 더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는 법이다.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