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 문제제기
아무렇지 않게 부녀자를 죽이는 연쇄살인범.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만으로도 살 떨리고, 엷은 썩은 미소는 섬뜩하다. ‘악마’ 조강천(박성웅)의 얼굴에 피가 튀길 때 번지는 희열에 찬 표정이 분노를 일게 한다. 연쇄살인범의 무자비함은 영화 전반에 오롯이 드러난다.
영화 ‘살인의뢰’(감독 손용호)는 강천(박성웅)에게 여동생 수경(윤승아)을 잃은 형사 태수(김상경)와 아내를 잃은 평범한 남자 승현(김성균)의 극한의 분노가 빚어내는 복수극이 중심이다.
초반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밝힌 뒤 극을 이어가는 영화는 지루할 수도 있다. 범인을 찾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또 어디서 본 듯한 장면들도 채워져 빤하다고 생각해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변한다. 수경이 없어진 뒤 3년부터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나타난 듯 새로운 승현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작위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감독은 영화 속에 설명 장치들을 여러 가지 넣었고, 배우들의 연기로 영화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나간다.
제목에서 후반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만, 알고 있더라도 반전을 기대할 만하다. 피해자들이 생각할 법한 일들이다.
한국의 유명무실한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도 하게 한다.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일종의 문제 제기는 많은 사람이 이 같은 상황일 때 고민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짚어낸다.
‘살인의뢰’의 결말은 통쾌한 복수도 아니다. 불쾌하다. 기분 나쁘고 찝찝한 분위기는 영화가 끝나고도 이어진다. 조강천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와 현실의 중간 어디
연기를 실감 나게 했으니 이 영화의 최대 수혜자는 박성웅이겠지만, 그리 칭찬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나쁜 놈 역할을 ‘잘’ 해냈기 때문이다.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세다. 그래서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 소재와 내용이라는 게 단점일 수도 있다. 102분. 청소년 관람불가. 1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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