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드라마 속 불륜이 자극적인 소재에서 여성들의 자아를 찾아가는 도구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 2월 종영한 tvN 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은 주인공인 30대 유부녀 김일리(이시영 분)와 20대 남성인 김준(이수혁 분)의 사랑, 그리고 남편 장희태(엄태웅 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성이 젊은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이 걸개는 낯설지 않다. 드라마 ‘밀회’도 인물 관계도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실 ‘불륜’이라는 소재는 한국 드라마에서 불치병만큼이나 자주 쓰였다. 배우 유동근, 황신혜 등이 출연한 1996년 드라마 ‘애인’은 ‘아름다운 불륜’이라는 말을 유행시켰을 정도로 불륜 신드롬을 일으켰다. 2007년 ‘조강지처 클럽’ 또한 불륜을 저지르는 남자들이 등장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외에도 ‘내 남자의 여자’ ‘아내의 유혹’ 등의 드라마에서 불륜을 다뤘다.
↑ 사진제공=SBS |
그동안의 불륜 드라마들은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를 답습한 결과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성들은 불륜을 저지른 남성에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다. 이 모습만 보면 ‘착한 여자’가 바람직한 여성상임을 시사하는 1990년대 초반 드라마들과는 달라 보인다. 하지만 여성들은 자신의 힘이 아닌, 다른 남자의 손을 빌려 복수를 한다. 결국 복수를 하는 주체는 또 다른 남성일 뿐, 여성은 주체가 되지 못했다.
이런 구조는 ‘조강지처 클럽’이나 ‘달콤한 인생’(2008) 등에서 그대로 재현됐다. 약 10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 ‘청춘의 덫’(1999)에서 서윤희(심은하 분)가 자신을 배신한 강동우(이종원 분)에 복수하기 위해 노영국(전광렬 분)을 이용하는 구조와 달라진 바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비슷한 인물 관계도가 이뤄졌던 것에서 조금씩 변화를 보인 작품들도 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2007)의 경우가 그렇다. 드라마에는 이화영(김희애 분)라는 욕망에 충실한 여성이 등장한다. 주변의 비난에도 이화영은 자신의 친구 남편인 홍준표(김상준 분)와 동거까지 감행한다. 결말 또한 이분법적인 결말에서 벗어난다. 이화영은 끝내 홀로서기에 나서는 것이다. 불륜의 피해자인 김지수(배종옥 분) 또한 독립적인 삶을 택한다.
이화영과 김지수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들을 뿌리치고 독립적인 행보를 보인다. 이는 조력자 남성에 기댔던 불륜 드라마 속 여성상에서 크게 벗어난 인물상이다. 여성이 욕망이 주체가 된 대표적인 드라마다. 30대 남녀가 가족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사랑에 더욱 초점을 맞췄던 드라마 ‘애인’이 국회 국정감사의 대상에 오르는 촌극을 빚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욕망에 더욱 관대해진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이어 최근 또 다시 불륜이라는 소재가 변모한 사례가 바로 ‘밀회’다 오혜원(김희애 분)과 이선재(유아인 분)의 사랑은 단순한 불륜이라고 칭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오혜원은 이선재와의 사랑을 통해 자신이 진짜 누구인지를 깨달아 간다. 드라마에서 불륜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밀회’같은 경우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수단으로서 불륜이 사용됐다. 선정성이나 자극을 담아내서 이슈화시키는 방편에서 불륜이 사용됐다면, ‘밀회’에서는 불륜 자체에 주목한 게 아니라 여성이 삶의 주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의 도구로 이용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진=조강지처클럽 스틸컷 |
윤 교수는 “여성이 욕망의 주체가 되어가는 움직임은 꾸준히 있어왔다”며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밀회’는 여성의 성적 정체성, 성적 결정권 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닌,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육체담론으로 풀어내기 위해 연하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졌다”고 드라마 속 불륜을 정의했다.
‘일리 있는 사랑’ 속의 불륜도 마찬가지다. 김일리는 장희태의 가족들을 부양하며 자신이 누군지 잊고 살아간다. “아줌마는 그 집안의 꼭두각시일 뿐”이라고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김준이다. 김일리는 김준이 일깨워주기 전에는 자신의 삶의 진짜 주인이 가족들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결국 김일리는 인생의 주인이 자신임을 깨닫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처럼 불륜이라는 소재는 수많은 답습을 거쳐 조금씩 다양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저 불륜이 드라마 주인공들의 목적이 되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드라마에서는 불륜이 여성들의 자아를 찾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순한 재현에서 같은 소재의 다른 사용으로 드라마 속 가치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김미라 <멜로드라마 ‘밀회’의 코드파괴(code-breaking)와 그 함의-‘불륜’에 대한 재현 관습을 중심으로>(2014)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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