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킬미, 힐미’를 연출하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MBC 수목드라마 ‘킬미, 힐미’를 마친 후 김진만 PD는 연출을 했던 그 시간들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며, 모두에게 고마웠던 시간이라고 고백했다. 훌륭하게 연기를 해 준 지성과 황정음을 비롯한 젊은 배우들과 찍고서 안 나간 신이 대부분임에도 모든 것을 꾹꾹 눌러서 참아준 어른 배우들, 그리고 힘든 시간 동고동락했던 스태프들, 그리고 ‘킬미, 힐미’의 조각 중 하나라는 미미(‘킬미, 힐미’ 애청자를 일컫는 말)들까지. 김진만 PD에게 있어 ‘킬미, 힐미’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나간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킬미, 힐미’는 다중인격장애를 소재로, 일곱 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 3세 차도현(지성 분)과 그의 비밀주치의가 된 레지던트 1년 차 여의사 오리진(황정음 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였다. ‘킬미, 힐미’는 주인격인 차도현에서부터 옴므파탈 신세기, 여수사나이 페리박, 자살지원자 안요섭, 불량소녀 안요나, 7살 꼬마소녀 나나, 미지의 인격 미스터엑스까지 개성 가득한 인격들의 매력을 발산하며 안방극장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 인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7인의 인격마다 팬덤이 생길 정도였다. 모든 인격들이 다 소중하겠지만 그럼에도 김진만 PD에게 가장 소중한 인격은 누구일까.
↑ 사진=MBN스타 |
“모든 인격이 중요하지만 제게 있어 가장 소중한 인격은 도현입니다. 다중인격을 다루기는 했지만 결국 도현의 야기이고, 각각의 인격들 역시 도현의 조각들이기 때문이죠. 지성이라는 배우가 이러한 도현을 잘 표현해 주었어요. 지성과 함께 세기를 만들어 낼 때 쾌감이 있었고, 요나 역시 즐거웠죠. 만약에 저와 가장 비슷한 느낌의 인격을 꼽으라고 한다면 글쎄요…아무래도 요섭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인격으로 요섭을 꼽은 김진만 PD는 실제 지성이 연기한 요섭의 말투와 분위기 등 많은 부분이 비슷해 보였다. 지성이 김진만 PD를 모델로 요섭이라는 캐릭터의 연기방향을 잡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요섭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김진만 PD는 이내 ‘’킬미, 힐미‘를 연출할 때 당시가 떠올랐는지 배역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를 꺼내놓았다.
“‘킬미, 힐미’ 9회 장면입니다. 첫 인격쇼가 펼쳐졌을 때였죠. 그 때 화책을 요섭의 모습을 그렸죠. 어떤 장면을 볼까 고민을 하다가 요섭이 자살지원자인 만큼 고흐가 자살을 했던 밀맡을 보자 했죠. 화면에 직접적으로 담기지 않았던 장면이었죠. 후에 도현으로 돌아와서 CCTV를 통해 인격쇼를 지켜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나노 크기 만큼 미세하게 잡혔나봐요. 아주 멀리 있었는데 실제 화보집을 보고 이를 추리해서 요섭이 본 그림이 ‘밀밭’임을 알아 맞춘 미미가 등장한 거예요. 확인해 보니 그 책을 사서 페이지를 다 살펴보고, 그리고 ‘요섭이라면 이 장면을 봤을 것이다’라고 추리를 한 것이죠. 그때 이 시청자는 내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미미의 팬이 됐습니다. 내가 계속해서 ‘미미의 1호팬’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그들은 연출의 의도를 이해해주고 알아주고 따라와 주시거든요.”
‘킬미, 힐미’에서 미미는 빠질 수 없는 굉장히 큰 퍼즐조각이었으며, 그로 인해 팬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한 김진만 PD의 미미 자랑은 그 후로도 한동안 계속됐다.
“우리는 그저 TV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이를 하나의 문화로 소비하는 것은 바로 대중의 몫이죠. 미미들이 ‘킬미, 힐미’라는 TV 드라마를 다른 차원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이슈화 시키지도 하고, 아동학대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기부를 하면서 긍정적인 문화를 이끌기도 했었죠.”
“저희 어머니가 굉장히 냉정하세요. 아무리 아들의 드라마라고 해도 방송이 재밌는 날만 전화를 하시거든요. 어떤 드라마는 전화가 안 온 적도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 ‘킬미, 힐미’는 매일 같이 하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제계 ‘자신도 기부를 할 테니 계좌번호를 알려다오’ 하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킬미, 힐미’ 갤러리에서 아동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기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때 알았어요. 우리 미미들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미미의 자랑이 끝난 후 김진만 PD는 가장 기억에 남는 신으로 14회 엔딩을 꼽았다. 김진만 PD의 표현에 따르면 연출과 대본에는 묘한 공집합이 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연출과 대본에 둘 중 하나만 잘 해서는 안되고 이 부분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14회가 이 같은 공집합들이 맞아 떨어지면서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약 ‘킬미, 힐미’ 대본집을 출간한다고 하면 우리 갓수완(진수완) 작가가 반대할지도 모르겠어요. 대본에서 연출로 넘어오면서 상당부분이 달려졌거든요. 그런 저에게 가장 인상 깊은 신을 하나만 떠올리라고 하면 차도현과 신세기가 14회 엔딩입니다. 실제 14회 대본을 보면 이렇게 돼 있어요. ‘도현이가 꿈속에 들어가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지하실의 아이가 리진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도현이 말한다. 지하실의 아이가 오리진이었어’ 하지만 실제 엔딩은 다소 달랐죠. 세기의 기억속으로 들어간 도현이 지하실의 아이들과 만나고, 그 순간 리진이 세기에게 ‘차군에게는 없는데 너에게만 있는 그 기억 속에 내가 있어?’라고 말을 하죠. 그리고 도현은 어린 도현과 세기가 했던 ‘기억해 밤 열시, 우리가 약속한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마침내 기억이 하나로 맞춰지기 시작합니다. 이 엔딩은 기존의 15회 구성을 다시 하는 계기가 됐을 정도로 ‘킬미, 힐미’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14회가 방송되기 전 진수완 작가에게 신신당부 했어요. 다음대본 집필 때문에 바쁘더라도 14회 엔딩은 꼭 봐야한다, 한 주 정도 이야기를 당겨버렸는데 안 그러면 궤가 틀릴 것 같다고. 14회가 방송되고 진수완 작가에게 문자가 왔어요. 왜 보라는지 알았다며.”
김진만 PD가 14회 엔딩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지성의 연기였다. 학대당하는 아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었다.
“몸이 힘든 것이 아니라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연기를 목도하는 것을 힘들어 하더라고요. 그 상태에서 연기에 들어갔는데 정말로 절규를 하더라고요. 같이 우느라 컷 소리도 못했습니다.”
김진만 PD가 말하는 드라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어린시절 아동 학대에 대한 아픔과 그로인해 조각난 인격을 다룬 ‘킬미, 힐미’는 그 무게만큼 잔혹동화에 가까웠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치유과정은 보는 이들에게 더욱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킬미, 힐미’는 학대라고 하는 주제를 전면적으로 내세운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이 같은 메시지는 드라마를 보면서 알게 모르게 섭취되는 것이지 전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반대하거든요. 사실 MSG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감칠맛을 위해 나트륨과 결합시키는 것처럼 드라마 속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때로는 감동와 웃음과 같이 뭔가를 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미미들이 기부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메시지의 성격이 강해졌죠. 저는 드라마가 같이 울어주거나 옆에 있어 주거나, 때로는 소리를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킬미, 힐미’ 연출의 가장 큰 주안점은 힐링이었다. 김진만 PD는 “드라마는 무엇이냐,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자, 그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에게 논리의 메시지가 아닌 치유가 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이었다.
“이 드라마가 기획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너무나 큰 비극 앞에 많은 사람들이 매일 울고 힘들어 하면서 ‘이 사회는 왜 이렇게 한심하고 못났을까’라며 기성세대를 향해 분노하고, 서로를 향해 비난하기 바빴죠. 당시 진수완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이런 사람들에게 정말 위안이 되는 드라마를 하자고. 정서적으로 상처가 있는 사람들, 이런 부분을 대놓고 이야기 하지 않아도, 같이 울어주고 손잡아 주는 드라마가 될 수 있다면 힐링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죠.”
‘킬미, 힐미’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매회 대본리딩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김진만 PD는 “모든 연출자들이 시간이 쫓기는 것이 있지만 이번에는 매회 연습이라는 것을 원 없이 했다”며 굉장히 뿌듯해 했다.
“아마 기록일 겁니다. 계속 대본 리딩을 했고, 대본 리딩을 하지 않으면 촬영을 하지 않았죠. 찍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뭘 찍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 작업을 통해 대본리딩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쪽대본으로도 절대 안 찍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책을 뽑아서 찍었죠. 무슨 이야기를 모르는데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를 하고 어떻게 해설을 하겠습니까. 정말 시간이 안 될 경우는 반 리딩하고 거기서 찍을 수 있는 거 찍었죠. 이런 작업 과정을 많은 후배들이 경험을 할 수 있는 제작 환경과 드라마와 MBC의 구조가 됐으면 합니다.”
안방극장에 소위 말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들을 전개시켜 나가는 막장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드라마가 소위 말하는 막장들이 늘어가고 있어요. 갈등을 위한 갈등이 존재하는 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이를 보면서 시청자들이 점점 지쳐가는 거예요. 만드는 사람들도 이 같은 내용들을 만들기 싫지만 그래야지 시청률이 나오는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는 거죠.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을 위한 드라마가 퇴색돼 가는 것이, 드라마 연출을 보람으로 시작한 저에게 안타까운 현실이었어요.”
여러모로 잘 만든 드라마 ‘킬미, 힐미’였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차도현과 오리진의 이야기에 집중되면서 상대적으로 분량이 죽어버린 역할 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기준(오민석 분)과 채연(김유리 분)이었다. 초반 극의 중심축에 속했던 이들은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그 비중이 사라졌고, 마지막 회에서는 이들의 결말이 등장하지 않아 일부 팬들 사이 궁금증을 야기하기도 했다.
“DVD를 만들면서 삭제된 신들을 부가영상으로 넣겠지만 먼저 전개로 인해 상당 부분의 연기들이 삭제된 배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저는 드라마가 시청률 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출생의 비밀부터 막장요소를 첨부하면 훨씬 쉽고 흥미진진하게 그릴 수 있겠죠. 대신 지금의 차도현 오리진의 느낌은 잃게 되겠죠. 참 미안한 것이 기준과 채연을 찍어서 붙여놓으면 드라마의 장르가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의 ‘킬미, 힐미’가 아니었고, 어쩔 수 없이 뺏어야 했어요. ‘킬미, 힐미’라는 제목 그대로 킬 된 배우가 있고 힐 배우들이 있죠. 킬 된 배우들에게 정말 고맙고 미안해요. 지금의 ‘킬미, 힐미’가 성과가 있다면 묵묵히 음지 역할을 해준 분들에게 마땅히 공을 돌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 김진만 PD에게 차기작에 대해 구상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머릿속에서 구상중이라고 말한 김진만 PD에게 다음 작품에 대한 키워드 하나만 알려 달라 부탁했다.
“한 단어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퍼스트 라이트(First Light) 최초의 빛”
<관련 기사> [M+인터뷰①] 김진만 PD “‘킬미, 힐미’ 한번 죽었더니 비로소 살았습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