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연습생 계약서는 말 그대로 족쇄였다. 신 노예제도나 다름없었다. 데뷔일이 잡히지 않는 한 자유롭게 풀려날 수도 없었다. 이 족쇄를 깰라치면 ‘위약금’이라는 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MBN스타가 최근 확인한 연습생 계약서에는 “갑(소속사)은 을(연습생)을 제3자에게 양도할 수 있으나, 을은 갑의 귀책 사유가 없는 한 위의 권한이 없다”는 문장이 박혀있었다. 게다가 계약기간도 명시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소속사가 놔주지 않는 이상 평생 연습생으로만 남을 수도 있는 셈이다.
피해 사례도 속출했다. 계약 이후 보컬, 댄스, 연기 등 기본적인 레슨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기획사가 태반이었다. 아무런 공지 없이 레슨을 없애는 경우도 다반사였으며, 소속사가 부담해야 할 레슨비를 1/n로 연습생에게 부과하기도 했다. 버는 것 없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목으로 연습생을 ‘적자 인생’으로 만드는 셈이다.
↑ 디자인=이주영 |
이뿐만 아니다. 성추행도 심심찮게 자행된다. 한 소속사 연습생은 “소속사 대표가 어린 여자 연습생들의 무릎을 베고 눕거나, 마사지를 이유로 복부나 다리를 터치하기도 한다. 자신의 배도 주물러 달라며 연습생 손을 이끈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또한 한 배우지망생은 소속사 임원진이 “각선미를 봐야하니 치마를 올려봐라”는 요구에 기겁하며 회사를 뛰쳐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연습생 계약서 조항 때문에 ‘슈퍼 갑’인 소속사를 탓하거나 시정을 요구할 순 없었다.
계약을 파기하려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연습생 A는 소속사 대표에게 계약 해지 의사를 밝히자 “위약금과 손배배상 명목으로 1억 5000만원을 내놓으라”는 통보를 받았다. A는 위약금이 너무 과하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소속사 대표는 어린 연습생이 법적 이해도가 낮다는 점을 이용해 소송을 들먹였다. 막상 법원에 가면 소속사가 지는 상황이었지만 지레 겁먹은 A는 계약 해지 의사를 접었다고.
↑ 사진=MBN 방송 캡처 |
또한 과거 계약 분쟁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한 소속사도 연습생이 회사를 나가려고 하자 수천 만원의 위약금을 요구했고, 레슨비·트레이닝비를 부풀린 정산서를 보내기도 했다. 연습생 계약서를 이용한 ‘갑의 횡포’가 도를 넘어선 것이다.
법조계는 이런 고통을 당하는 연습생들에게 차라리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권한다. 법무법인 세종 임상혁 변호사는 “전속계약은 위임계약인데 계약 기간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건 계약서 파기가 그만큼 용이하다는 뜻이다. 또한 소속사가 무리한 위약금을 요구하는 것 역시 협박이나 업무방해죄로 처벌한 판례가 있었기 때문에 법정행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성실한 소속사와 계약 해지 문제로 고통을 호소한 한 연습생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젠 우리 아이가 연예인에 대한 꿈을 아예 접었어요. 쳐다도 보기 싫다네요. 꿈 하나 바라보고 지금껏 달려왔는데 청춘을 담보로 노예처럼 만든 그 소속사가 정말 원망스럽습니다. 꿈을 키워준 게 아니라 오히려 짓밟은 거니까요.”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