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범죄일까. 아슬아슬한 TV 속 성의식을 들여다본다.
최근 방송가에서는 성을 그저 자극적 요소가 아닌 당연하고 일상적인 소재로 다루면서 동시에 건강한 성의식을 담으려는 노력들을 해왔다. 이 때문에 조금씩 개방적인 성 가치관을 담으면서 이를 자극적이지 않게 그려내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아슬아슬’한 장면들이 TV에 등장하면서 아직도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남성우월적인 성 가치관이 녹아들어간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강간 등의 범죄인지에 대한 애매한 기준으로 시청자에 그릇된 성 의식을 심어주기 충분한 장면들을 짚어보고 이들의 처벌은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알아봤다.
↑ 사진=전설의 마녀 방송 캡처 |
2011년 방영한 MBC 드라마 ‘계백’의 경우 의자 왕자와 후비 은고의 베드신이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로 비난을 받았다. 이가 문제가 된 것은 은고를 의자에 억지로 눕힌 뒤 이어지는 베드신 때문이었다. 같은 해 방영된 KBS2 ‘스파이 명월’도 술에 취해 여성 보디가드의 집에 찾아간 남자 주인공과의 베드신이 ‘데이트 강간’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2014년 방영된 KBS2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부부인 왕호박(이태란 분)과 남편 허세달(오만석 분) 사이에 이뤄진 베드신이 문제가 됐다. 늦둥이를 가지고 싶었던 허세달은 회식 때문에 인사불성이 된 왕호박의 허락 없이 성관계를 맺은 것. 다음 날 왕호박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태몽 아니냐고 넌지시 묻는 허세달에 “꿈도 꾸지 말라”고 일갈한다. 성관계를 할 의사가 없는 왕호박에게 이뤄진 허세달의 행동은 일명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성관계를 한 부부간의 강간죄를 암시했다.
지난 2월15일 방영됐던 MBC 드라마 ‘전설의 마녀’도 비슷한 실정이다. 극중 손풍금(오현경 분)과 탁월한(이종원 분)은 부부 행세를 하며 탁월한의 집에 방문했다. 어쩔 수 없이 합방을 해야 했던 이들은 애초 약속했던 것과 달리 탁월한이 손풍금을 억지로 이불 속에 끌어들이면서 성행위가 이뤄졌음을 나타냈다. 다음 날까지도 “10년간 수절한 꽃 봉우리를 얼렁뚱땅 꺾어버렸다”고 원망하는 손풍금에 심지어 뿌듯한 표정까지 지어보이는 탁월한의 모습에 많은 시청자가 분노했다.
이럴 경우 법적으로 봤을 때 강간에 해당한다. 이는 부부 사이에도 적용된다. 성행위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을 경우 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고(형법 제297조),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는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형법 제303조 제1항).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성추행을 연상시키는 장면으로 문제가 된 사례가 있다. 2013년 방영된 한 종합편성채널 ‘신화방송’에서는 신화 멤버 앤디를 향해 여성 게스트들이 몸을 묶고, 눈을 가리고, 몸을 더듬거리는 모습이 그대로 방영됐다. 정도가 심한 여성 게스트들의 행동은 곧바로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고, 해당자인 앤디와 여성 연예인들의 사과가 이어졌음에도 15세 관람가에 적절치 않으며, 명백한 성추행이라는 이유로 많은 민원신고가 제기됐다.
성행위, 성추행 연상 장면들이 문제로 제기된 것과 달리, 그릇된 성차별 인식을 가지고 올 수 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징계를 받은 프로그램이 있다. 2009년 방영된 KBS2 예능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에서는 한 여성 패널이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요지의 발언이 그대로 전파를 탔다.
↑ 사진=미녀들의 수다 방송 캡처 |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과 함께 이날 방송 분에는 성별 역할에 차별적인 발언들이 상당수 등장했다. 이를 두고 방통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1조(인권침해의 제한) 제3항, 제30조(양성평등) 제2항, 제3항 규정을 적용해 ‘'해당방송프로그램의 관계자에 대한 징계’를 내렸다. 이런 발언들이 ‘정신적, 신체적 차이를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방송은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성차별적인 표현을 하거나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조항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릇된 성관념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프로그램의 장면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통위의 심의나 민원신고 제기 등 다양한 장치로 이런 장면들이 시정되는 경우는 있지만, 방통위에 직접적으로 신고가 제기돼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는 이상 별다른 조치가 취해지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방통위의 심의가 더욱 능동적으로 이뤄져 시청자의 사각지대에서 버젓이 그릇된 성관념을 투영한 장면을 등장시키는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방송 제작 관계자들의 책임감과 성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 반드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성을 그저 자극적인 요소로 사용하는 행위에는 자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