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시작부터 심상치 않은 드라마가 탄생했다. 연기파 배우들이 선보이는 숨 막히는 몰입도와 탄탄한 극본, 지루할 틈이 없는 연출이 만들어낸 MBC 월화드라마 ‘화정’이 ‘대박드라마’의 기운을 솔솔 풍기며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13일 첫 방송된 ‘화정’은 세자의 자리를 적통인 영창대군에게 넘겨주려는 선조(박영규 분)와 발톱을 숨긴 채 웅크린 광해(차승원 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정치대립을 그리며 포문을 열었다.
임진왜란 이후 10년이 지난 17세기 초 조선, 세자 광해의 입지는 굉장히 약했다. 밖으로는 명나라가 정치적 사정으로 광해의 세자책봉을 결사반대했으며, 안으로는 자신을 향한 선조의 질투와 날로 커지는 적자 영창대군의 존재감, 그리고 후궁마저 자신을 업신여기는 정치상황 속 전쟁영웅이었던 광해는 울분과 두려움을 삼키며 몸을 낮춰야만 했다.
광해군의 낮은 입지는 왕손들이 하례를 하는 자리에서 잘 드러났다. 대부분의 왕손들은 인목대비(신은정 분)와 영창대군, 정명공주(허정은 분)에게 깍듯하게 예를 갖춘 반면 정작 세자인 광해군에게는 형식상의 인사만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이 같은 모욕 속 광해군의 친형 임해군(최종환 분)은 화를 내지만, 광해군은 “16년 동안 당한 일이다. 버텨온 자리고 전하께서도 그리 쉽게 날 흔들지 못 할 거다. 어제처럼 다시 오늘을 견뎌내면 언젠가 다른 날이 올 것”이라며 차분하게 때를 기다린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선조는 세자를 향한 노골적인 적대심을 표했고, 심지어 연회의 자리 폐가입진(廢假立眞), 가짜를 버리고 진짜를 세운다는 시제로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조정은 영창대군을 중심의 소북파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의 정치적 대립이 극심했는데, 소북파의 수장인 영의정 유영경은 선조의 뜻에 따라 폐가입진에 대한 시를 읊으며 그와 뜻을 함께 한다는 의사를 밝힌다.
영의정이 자신에게 힘을 실어주자 선조는 그 즉시 동궁 전에 군사를 배치하면서 광해군을 압박한다. “어차피 벼랑 끝이니 군사를 일으키자”는 주위의 권유에도 광해군은 “왜 내가 내 것을 도둑질해야 하느냐”며 기회를 엿보기로 한다. 폐위의 위기에서 선조를 찾아간 광해군은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며 선조 앞에서 무릎을 꿇지만, 한 번 마음이 돌아선 선조는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계속되는 선조의 무시에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광해군은 그의 침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땀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하던 선조를 발견한다. 광해군 편에 선 기미상궁인 김개시(김여진 분)가 몰래 타 놓은 독에 중독된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물을 달라는 선조에게 광해군은 “이미 사기가 폐부를 범했다. 지난세월 전하의 옥체를 소인의 몸보다 살폈기에 잘 안다. 마지막을 받아들이셔야 할 것 같다”고 그의 죽음을 알린다.
그동안 살아남기 위해 감정표현을 아꼈던 광해군은 선조 앞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설움과 분노, 왕의 자리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며 “아버지가 날 싫어하는 이유를 안다. 나는 아버지처럼 무능하지 않다. 앞으로 난 아버지와 다른 왕이 될 것”이라고 선포한다.
이미 ‘이산’ ‘동의’ 등 유명 사극을 집필하며 흥행성과 필력을 인정받았던 김이영 작가의 필력은 ‘화정’에서도 빛이 났다. ‘마의’이후 약 3년 만에 신작을 발표한 김이영 작가는 전작보다 한층 무게감 있는 극본으로 향후 전개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환상의 커플’ ‘내 마음이 들리니’ ‘아랑사또전’ 등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던 김상호 PD의 연출 역시 극을 더욱 집중하게 했다.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열세에 몰린 광해군과 선조와의 대립을 극적으로 몰고 가면서 긴장감을 한층 강화했으며, 빠른 전개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전개에 재미를 더했다.
여기에 광해군을 연기한 차승원을 비롯해 왕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선조 박영규와 이성민, 정웅인 등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는 안방극장으로 하여금 몰입하게 만들었다.
연출과 작가, 배우들의 명연기라는 흥행의 3박자를 고루 갖춘 ‘화정’은 순조로운 시작을 알리면서 향후 펼쳐질 이야기를 기대케 했다.
한편 17세기 혼돈의 조선시대, 정치판의 여러 군상들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질투를 조명하는 드라마 ‘화정’은 매주 월, 화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