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정예인 기자]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화장’은 김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거장 임권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대를 모은 작품이다. 이는 제71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당시 기립박수를 받았고,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평단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됐다. 이외에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작품성을 입증했다.
‘화장’은 4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투병한 아내(김호정 분)와 아름다운 부하직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남자, 오상무(안성기 분)는 죽음으로 향해가는 아내를 돌보고 사회적 지휘를 유지하면서 지친 일상을 보낸다. 그런 그에게 한 줄기 빛과 같은 여인이 나타나면서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상무의 부하직원 추은주(김규리 분)는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으로 그의 시선을 빼앗고, 이내 마음까지 빼앗아갔다. 젊은 여인의 몸, 생기 그 자체와 죽어가는 아내의 비극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상무의 고뇌를 담은 작품이다.
‘화장’에는 유독 추은주의 미모가 도드라지게 표현된다. 그의 반짝반짝 빛나는 생명력으로 인해 오상무의 일상이 통째로 흔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 김규리는 ‘화장’ 속에 담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예쁘게 표현해주신 스태프께 감사드린다. 나를 아름답게 표현해주시려 정말 많이 애써주셨다”고 전했다. 추은주의 환상적인 미모를 스크린에 담아낸 선봉장에는 정영민 조명감독이 있다. 그는 빛을 이용해 오상무 눈에 비친 추은주의 모습을 담아냈다.
Q. 거장 임권택 감독님과 함께 작업했다. 소감은?
A. 임권택 감독님 작품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영광스럽다. 영화하는 스태프들 중에 임 감독님과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 없다. 모두 영광으로 생각할 거다. 나 같은 경우는 ‘태백산맥’ 등에서 짧게 임 감독님과 함께하긴 했지만, 제대로 참여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삼 임 감독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임 감독님은 헤드 스태프가 말 한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시고 좋은 걸 항상 찾아가려 하신다. 열린 분이다. 그러다보니 트러블이 생길 일이 없었다. 그런 점은 다른 감독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싶었다.
Q. ‘화장’의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A. 촬영 현장에서는 내가 막내였다. 거기 모인 스태프들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 연차가 많았다.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경험했다. 정말 좋더라. 지금 내가 어디 가서 막내 취급을 받아보겠나. 막내라서 임 감독님께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감독님께선 막내가 다가가니 좋아하셨다.
Q. 이번 작업에서 가장 신경 쓴 일은 무엇이었나?
A. 최대한 조명을 자연스럽게 연출하려 노력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조명을 설치했지만 조명을 썼다는 느낌을 주지 않고 싶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깨지 않는 선상에서 표현해야 됐다. 괜히 내 욕심으로 많은 걸 시도하려다가 작품에 피해를 주면 안 되지 않나. 물론, 조명을 많이 사용한 부분도 있지만 가능하면 티가 나지 않게 만들려 노력했다.
또 극중 김규리를 돋보이게 하려 애썼다. 임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화장’에서는 추은주가 가장 돋보여야 했다. 오상무의 눈에 비친 추은주의 모습이 아름다워야 했고, 때문에 다른 인물에 조명을 비출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설정했다. 전체적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만들어서 예쁘게 담아내려 했다. 그 점에 대해서 임 감독님께서 칭찬을 많이 하셨다. 직접적인 칭찬이 쑥스러우면서도 좋더라.
Q. 조명스태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특별히 있나?
A. 어릴 때부터 워낙 영화를 좋아했다. 부모님께서도 영화를 좋아하셨고,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영화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영화와 관련해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적은 없다. 관심은 많았지만 영화 쪽으로 다가갈 수 있는 통로를 몰랐다. 그 때 좋은 사람을 만났다. 어릴 적부터 학교 앞에 잘 다니는 단골 분식집이 있었다. 그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의 남편분이 조명감독이었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조명 스태프로 참여하게 됐다.
Q. 영화의 기술 분야 중 조명만의 매력이 있나?
A. 정보 없이 영화계에 발을 딛었는데 들어와서 보니 다양한 부서들이 있어 놀랐다. 그 중에서도 조명은 정해진 규칙이 없어서 매력적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만들어가는 거다. 어디선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일정한 규칙 없이 화면을 채워간다. 그 매력에 25년 넘게 조명일을 하게 됐다.
Q. 여태까지 참여했던 작품 소개 부탁드린다
A. 여태까지 한 작품은 20편 가까이 되는 것 같다. ‘태양은 없다’로 데뷔해서 ‘반칙왕’ ‘화산고’ ‘결혼은 미친짓이다’ ‘맹부삼천지교’ ‘역도산’ ‘괴물’ ‘행복’ ‘부러진 화살’ ‘극비수사’ 등 다양한 작품에 참여했다. 개인적으로는 장르가 다양한 필모그래피라 마음에 든다. 다양한 장르에 참여한 덕분에 어떤 장르에 도전하게 되도 걱정되지 않는다.
Q. 그 중에서 가장 힘든 작품은 무엇이었나?
정신적,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은 ‘화산고’다. 11개월하고도 보름을 촬영했다. 유독 밤에만 촬영을 해야 하는 신이 많아 고생했다. 거기다 시도해보지 않았던 장치들을 사용했기에 들어가는 장비양이 엄청났다. 오죽 힘들었으면 촬영하던 스태프 중 20명 정도가 도망치기도 했다. 당시 몸무게도 52kg까지 빠졌다. 이만큼 고생은 했어도 내게는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원래는 영화 ‘친구’에 참여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기술적으로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화산고’를 선택하게 됐다. 언제 이런 작품을 해보겠나 싶었다.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은?
A. 한국에서 제작한 SF영화를 만들고 싶다. 현장에 있는 기술 스태프들은 뭔가를 만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시도하지 않았던 SF 장르가 욕심난다. 은퇴하기 전에는 해보고 싶다. 과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Q. 영화라는 장르의 매력은 무엇일까?
A. 남들이 하지 않는 걸 한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름을 남길 수 있지 않나.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내가 지나온 발자취가 남는 것이다. 또 한 작품을 촬영 하는 동안에는 스태프, 출연진들이 한 식구처럼 지낸다. 공동체 작업만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것 역시 즐겁고. 자꾸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데서 오는 성취감은 다른 데서 얻을 수가 없더라.
Q. 조명감독으로서 최종 목표는?
A. 늦게까지 현장에 남아있고 싶다. 후배들이 그런 나의 모습을 희망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영화계에서 퇴출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남자 나이 50살이면 한창 뛸 나이지 않나. 현장에서 나이어린 친구들에게는 먼저 다가가려 노력하고, 여태까지 해왔던 대로 하다보면 늦게까지 현장에 남을 수 있지 않을까. 후배들에게 좋은 영화 제작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한국 영화의 미래,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아파서 현장에 가지 못한다고 되기 전까지는 필드에 남고 싶다.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여수정 기자, 정예인 기자 yein6120@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