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내게 ‘장수상회’ 출연은 정말 큰 경험이다. 앞으로의 연기에 있어 큰 방향성이 될 것 같다.”
더듬거리는 말투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모자란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착하고 순진한 모습까지 묘하게 정이 간다. 거기에 “근데요. 있잖아요. 그 뭐지, 뭐지…” 등의 짧은 대사만으로도 쟁쟁한 출연배우들 사이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어쩌면 오히려 더 빛나 보인다.
배우 배호근은 영화 ‘장수상회’에서 제갈청수 역을 맡았다. 그는 장수마트의 직원이자 성칠(박근형 분)의 절친, 진한 감동 속 웃음 담당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극중 이름은 분명 제갈청수인데 대부분 ‘자갈치’로 불리며 친근감까지 높인다.
↑ 사진제공=이음컨텐츠 |
“‘있잖아요’ ‘그 뭐지 뭐지’ 등의 대사를 기본으로 깔고 갔다.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제갈청수 역을 연기했다. 어수룩하기보다는 착하게 연기하려 애썼다. 사실 내가 톤도 높고 산만하게 행동하는 건 반전을 위한 장치적인 요소였다. 제갈청수는 알고 보면 아픔이 캐릭터다. 장수상회 창고에서 성칠과 나눈 대화나 회식 때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모습 등이 이를 표현한 것이다. 편집이 되긴 했지만 그는 연애와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다. 그럼에도 밝게 살아야 되는 그런 인물이다. 나까지 심각해지고 슬퍼지면 영화 속 감정이 너무 무거울 수 있을 것 같아 좀 더 밝게 표현된 것이다. 나 스스로도 내 캐릭터에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더라. (웃음)”
배호근과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더라면 제갈청수를 단순히 말 더듬고 어수룩하면서도 착한 인물로밖에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이 캐릭터에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냐. 참 다행이다. 더욱이 놀라운 건 시나리오 속 제갈청수를 표현한 설명은 단 한줄 뿐이었다. 그런데 캐릭터에 욕심이 났던 배호근이 연구한 끝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오디션을 통해 ‘장수상회’에 참여하게 됐다. 시나리오 속 제갈청수에 대한 설명은 ‘말을 두 번씩 하고 더듬으며 어딘가 모르게 산만하다’ 한줄 뿐이었다. 이를 읽고 깊이 고민했고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욕심도 났기에 무언가 찾아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A4용지 가득 캐릭터에 대한 설명 등을 적어 감독님에게 드렸고 ‘있잖아요’ ‘그 뭐지 뭐지’ 등의 대사도 생각해갔다. 다행히 감독님이 좋아해주셨다. (웃음) ‘함께 하자’고 한 감독님의 말조차 영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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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형 선생님의 연기 경험치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내 애드리브를 잘 받아 준다. 정말 대단한 경험을 한 것 같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웃음) 사실 박근형과 윤여정이라는 대한민국 대표 배우이자 선생님들을 모시고 연기하는 게 걱정도 됐다.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어느 순간에는 애드리브도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막 던지기도 죄송했고 자신도 없었다. 때문에 철저하게 계산된 캐릭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톤 조절을 매우 많이 했다. 물론 나 스스로도 괜찮아, 자연스러워 등 최면을 걸기도 했다. 초반에는 완성본의 제갈청수보다 우울한 캐릭터였는데 영화의 분위기와 톤 등을 맞추다보니 밝게 표현됐다.”
배호근은 대선배들과의 연기 호흡에 대해 언급하던 중 수줍은 고백(?)으로 ‘장수상회’ 출연이 얼마나 자신에게 의미가 깊었는지 강조했다.
“박근형 선생님과 함께 연기하는 장면이 많았다. 첫 만남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 어려웠는데 워낙 잘 챙겨주셔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해주신 윤여정 선생님께도 매우 감사하다. 강제규 감독님도 정말 좋았다. 매번 촬영할 때 좋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좋았다. 감독님이 배우들과 소통하려하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신다. 별도의 디렉팅 없이 배우들을 믿고 촬영한다. 이 부분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고마웠다. (웃음)”
2007년 ‘브라보 마이 라이프’로 스크린 신고식을 치른 후 현재까지도 배호근은 꾸준히 작품 활동 중이다. 주연이든 조연, 단역이든 매 작품마다 맡은 캐릭터 자체의 옷을 입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터질 듯 말 듯한 연기 포텐이 ‘장수상회’에서 빛을 발한 것 같아 앞으로가 진짜 배우 배호근을 만날 수 있는 시점이다.
“늘 테이크가 끝나면 후회하고 항상 내 연기가 부족하다 생각한다. 언제쯤 내 연기를 보고 만족 하겠냐 만은 스스로 만족하는 지점이 왔으면 좋겠다. 사실 20대 때는 나름대로 내 연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자란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놀라기도 하며 나빼고 다 연기를 잘하는 것 같다. 조금씩 연기 경험치가 쌓이니까 내게 부족한 부분이 보이더라. 그래서 늘 내가 작아지고 다른 배우들이 눈에 들어와 더욱 신중하게 연기해야겠다고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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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상회’는 뒷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목처럼 극장가에서 장수했으면 좋겠다. (웃음) 괜히 울고 싶은 날이나 가족 생각이 날 때 등 이런 날 관객들이 봤으면 딱 좋은 영화다. 감정을 안 건드려서 그렇지 누구나 울고 싶거나 감정이 터질 때가 있다. ‘장수상회’가 이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정말 착한 영화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