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막장의 대모’ 임성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인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가 막을 내리면서, 파란만장했던 임성한 작가의 생활도 모두 마무리 됐다.
데뷔 초 겹사돈과 가신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이는 등 사회 통념에 반하는 파격적인 소재 선정과 자극적이기는 해도 흡입력 있는 필력으로 ‘스타 작가’로 군림했던 임 작가였지만, 가면 갈수록 심각해지는 자가 복제와 개연성 없는 스토리는 스스로의 작가인생을 멍들게 했으며, 이유 없는 자극적인 설정은 방송통신위원회의 철퇴를 부르며 결국 그 스스로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임 작가의 작가인생의 첫 시작은 1990년 KBS 드라마게임 ‘미로에 서서’였다. 훗날 ‘인어아가씨’의 원류가 되는 ‘미로의 서서’로 작가로서 인정받았던 임 작가였지만 바로 작가활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컴퓨터 학원 강사로 생활했던 임 작가가 본격적으로 드라마시방에 입문한 것은 MBC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전에서 ‘웬수’라는 작품이 당선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웬수’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며느리가 병든 시어머니를 봉양한다는 설정은 있었어도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보살핀다는 내용을 다루었던 ‘웬수’는 당대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후 임 작가의 행보는 MBC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1998년)였다. 첫 방송 시청률 15.7%(미디어서비스코리아)로 시작했던 ‘보고 또 보고’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졌고, 마지막회 시청률 57.3%로 마무리 하게 된다. 이 같은 ‘보고 또 보고’의 시청률은 현재까지 역대 일일 연속극 시청률 중 최고 수치이기도 했다.
신인에 불과 했던 임 작가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보고 또 보고’는 지금과 같이 유체이탈을 하거나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등의 막장설정은 없었으나 임 작가의 병폐 중 하나인 ‘끝없는 연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무려 6개월을 연장한 고무줄 편성을 보여주었지만, 이 모두를 홀로 감당하며 써낸 임 작가의 필력과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인정받을 만했다.
이어진 MBC 일일드라마 ‘온달 왕자들’(2000년)은 엄마가 다른 4명의 형제가 집안이 망한 뒤 좌충우돌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으며 눈길을 끌었다. 초반에는 눈길을 크게 끌지 못했지만, 이후 30%대까지 올려놓는 저력을 발휘하며 눈길을 끌었다.
앞선 작품을 연이어 흥행시켰던 임 작가는 그 인생의 최고 흥행작인 MBC 일일드라마 ‘인어 아가씨’(2002년)를 집필하게 된다. 무명에 가까웠던 여자주인공 장서희를 일약 스타로 만들어 주었을 뿐 아니라, 그해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 네티즌 인기상, 올해의 연기자상, 여자 최우수상, 대상 등 무려 5관왕의 명예를 선사해 주었다. ‘피고름으로 쓴 대본’이라는 대사로 유명한 ‘인어 아가씨’는 비록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복동생의 남자를 유혹한다는 자극적인 내용이지만 물이 휘몰아치는 듯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필력으로 안방극장을 꽉 잡았다.
임 작가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고무줄 연장은 ‘인어아가씨’에도 그대로 적용이 됐으며, 딸기는 칫솔로 씻어야 한다는 등 스토리와 상관없이 작품 속 인물을 통해 생활정보를 알려주려는 임 작가의 특징이 고스란히 등장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연장과 자사였던 MBC 드라마 ‘러브레터’ 비하 논란으로 온라인에서 종영 서명운동이 일기도 했다.
‘인어아가씨’를 통해 이른바 스타 작가 계열에 오른 임 작가는 이후 자극적인 설정과 대사로만 승부를 보려는 성격이 강해졌다는 평을 듣게 된다. 무엇보다 MBC 일일드라마 ‘아현도 마님’(2007년)이후 전반적인 스토리 라인이 약해졌다는 작가로서 치명적인 지적을 받기 이른다.
임 작가의 기괴함의 시작은 MBC 일일드라마 ‘왕꽃 선녀님’(2004년)이었다. 신인이었던 이다해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왕꽃 선녀님’은 무당과 입양아를 소재로 한 드라마였다. 신내림을 받는 장면은 지나치게 무섭다는 지적을 받았으며, 입양아를 개구멍받이로 묘사함으로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작품에 죽은 부용화(김혜선 분)가 다시 살아난다는 설정을 넣으려는 시도를 하기까지 한다. 다행히 임 작가의 도를 넘긴 설정은 MBC의 제재를 받았고, 이로 인해 ‘왕꽃 선녀님’은 임 작가에서 김나현 작가로 작가가 교체된다.
‘왕꽃 선녀님’ 이후 임 작가는 정든 MBC가 아닌 SBS로 무대를 옮긴다. SBS 주말드라마 ‘하늘이시여’(2005년)는 여러모로 임 작가 인생에 전환점이 되는 드라마다. 다름 아닌 ‘웃다가 죽는’ 장면을 활용한 것이다. 딸을 버린 엄마가 친딸을 그리워하다가 급기야 며느리로 맞이한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자극적이었고, 여기에 분장사, 치위생사 등 특정 직업에 대한 비하 대사, 국정 홍보 논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아현동 마님’과 MBC 일일드라마 ‘보석 비빔밤’(2009년)의 경우 전작에 비해 막장의 요소는 덜하다는 평은 있었지만,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현동 마님’의 경우 14분 동안 아무 의미 없는 사극쇼와 같은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을 비난하는 대사 등으로 큰 논란을 일으켰으며, 극중 혜나(금단비 분)가 갑작스럽게 위암에 걸려 죽는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없었다. ‘보석 비빔밥’(2009년)의 경우는 자식들을 힘들게 키워왔던 친부모를 자식 넷이 합세해서 집에서 쫓아낸다는 것은 예의와 도덕상 납득할 수 없다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임 작가를 ‘괴작작가’의 계열로 올려놓은 작품은 SBS 주말드라마 ‘신기생뎐’(2011년)과 MBC 일일드라마 ‘오로라 공주’였다. 근육질 몸매의 남자를 화장실에 눕혀놓고 빨래를 한다는 복근빨래로 논란의 시작을 열었던 ‘신기생뎐’은 지나치게 꼬고 꼰 출생의비밀과, 멍석말이로 빈축을 샀다. 절정을 이룬 것은 아수라(임혁 분)이 빙의쇼였다. 신내림과 관련이 없는 드라마였음에도 각종 귀신들이 쏟아졌으며, 급기야 눈에서 레이저빔이 나오고 알아듣기 어려운 주문들이 쏟아지는 등 상식을 벗어난 장면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결국 ‘신기생뎐’이후 SBS는 더 이상 임 작가와 계약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무려 4명의 인물과 1마리의 개를 죽이고 3명의 배우를 급작스럽게 하차시킨 ‘오로라공주’(2013년)는 개연성 없는 전개와 유체이탈로 죽음, 자가다 죽음 등 황당한 설정으로 ‘막장드라마’의 절정을 찍었다. 무엇보다 논란이 됐던 것은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대사를 남겼다는 것이다. 여기에 조카인 백옥담이 연기한 노다지의 분량을 필요 이상으로 늘리면서 특혜 의혹을 부르기도 했다.
이래저래 기괴함 투성이었던 ‘오로라 공주’는 죽음을 단순히 시청률 상승의 요인으로 활용하는 ‘임성한 월드’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폐지서명운동이 이어지기도 했다. ‘데스노트’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부터였다.
‘오로라 공주’ 이후 한동안 집필활동을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과는 달리 임 작가는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작품인 MBC 일일드라마 ‘압구정 백야’(2014년)로 돌아왔다. 전작이 워낙 강력하다보니 전작에 비해 극성은 덜하다는 평을 듣기는 했지만, 앞선 드라마의 집약체로 불릴 정도로 심각했던 자기복제와 개연성 없는 스토리는 여전했다.
자극적인 죽음도 있었다. 영준(심형탁 분)의 교통사고로 데스노트의 문을 연 ‘압구정 백야’는 백야(박하나 분)의 남편 나단(김민수 분)을 폭력배와의 시비로 다투다가 그만 벽에 머리를 받고 급사한다는 황당한 설정이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나단의 경우 눈을 뜨고 죽으면서 안방극장에 섬뜩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비윤리적인 내용의 반복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칼을 빼들었고, 이에 MBC 드라마는 임 작가와 더 이상 계약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다. 때마침 임 작가는 측근을 통해 은퇴 선언을 하며 ‘압구정백야’는 임 작가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게 됐다.
논란으로 시작해 논란으로 끝나는 임 작가의 별명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였다. 말도 안되는 자극적인 설정과 개연성 없는 전개로 욕을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를 챙겨 보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다른 드라마에서 쉽게 시도하지 않는 기괴함은 드라마 외적인 재미를 더한 것도 사실이다. 임 작가의 은퇴선언은 언제까지 지켜질지는 미지수이지만, 확실한 것은 더 이상 ‘임성한’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란 것이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