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대세’ 나영석 PD를 만든 것은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은 우여곡절이 만들어낸 그의 독특한 예능관이었다.
나영석 PD가 처음 CJ E&M 계열의 tvN으로 이적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혹자는 안정적인 지상파 방송사인 KBS를 떠나 황무지에 가까운 케이블 방송사를 선택한 것에 무모하다고 일렀고, 혹자는 자신의 이름을 키워준 KBS를 버리고 떠날 만큼 tvN이 어떤 메리트가 있는 것이냐고 날선 눈길을 보냈다.
복잡 미묘한 시선들이 나영석 PD를 향해 쏟아졌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13년 1월 그렇게 tvN으로 소속을 바꾼 나영석 PD는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 때 구슬 서 말 끼우듯 천천히 만들어 낸 프로그램들이 바로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이다. ‘꽃보다’ 시리즈로 일컬어지는 시리즈물이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러자 그를 향한 의문의 시선들은 자연스럽게 증발했다.
↑ 사진=MBN스타 DB |
이렇듯 나영석 PD는 그의 일거수일투족 하나가 화제가 될 만큼 명실상부한 ‘스타 PD’가 됐다. 지금은 tvN의 간판 프로그램들을 모두 맡고 있는 tvN의 ‘예능 기둥’이 됐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빛이 난 것은 아니었다. 그 스스로 늘상 “시골 사람”이라고 말하던 나영석 PD는 남들은 한 달 안에 배우는 편집기를 1년이나 붙잡고 씨름하는 ‘기계치’였다. 이런 ‘아날로그’적 성향이 입봉 당시 얼마나 그를 힘들게 했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나영석 PD는 하지만 이런 ‘아날로그’ 감성을 자신의 예능 세계를 만드는 중심축으로 삼았다. KBS ‘출발 드림팀’의 조연출을 거쳐 ‘스타골든벨’ ‘하이파이브’를 지났다. 그 후 ‘1박2일’을 만들었고 ‘인간의 조건’의 기틀을 다졌다. 2013년 1월부터 출근한 tvN에서는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을 연달아 만들었고, 2014년에는 ‘삼시세끼’ 시리즈도 론칭했다. 이를 죽 돌아보면 최소한의 장비로 여행을 떠나는 포맷이 많다는 것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나영석 PD는 일전 MBN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유난히 여행 카테고리가 많은 것은 제가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대답밖에는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는 그 순간만이라도 일상을 잊고, 신선함을 얻고, 한 번 흐뭇하게 미소라도 지으려고 보시는 건데, 가능한데 일상적인 공간이 아닌 곳에서 진행을 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일상을 잊게 만드는, 즉 ‘힐링’을 주는 게 예능프로그램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이라는 키워드와 항상 같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느리게 살기’다. 그의 아날로그적인 성향은 바로 이 두 키워드의 조합에서 제대로 묻어난다. 나영석 PD는 최근 열린 ‘삼시세끼 정선편’ 제작발표회에서 ‘삼시세끼’ 시리즈를 향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모은 결정체라서 가끔은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걸 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싶어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삼시세끼’야말로 출연진이 농사를 짓고 뜨는 해를 보고 밥 지어먹는 ‘초간단’ ‘無설정’ 예능이다.
↑ 사진제공=CJ E&M |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느리게 살기’에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나영석 PD를 스타 PD로 만든 ‘1박2일’을 뜯어보면 출연진이 ‘느리게 산다’기 보다는 복불복 게임을 하며 ‘생존’을 외치는 프로그램이다. 낯선 곳에서 색다르게 사는 출연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초점이었던 ‘1박2일’에서 손을 떼면서 본격적으로 나영석 PD는 여유로운 삶의 가치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는 ‘1박2일’을 그만두고 tvN으로 이적하는 과정을 회상하는 그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4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나 PD는 KBS에서 tvN으로의 이적 당시를 “너무나 지치고 힘들어 그 무게에 뒤로 쓰러질 것 같았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회사에 ‘1박2일’을 시즌제로 하자는 제안도 했었다”며 “하지만 어쨌든 방송은 경제논리였다. 지상파에서는 시즌제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인간의 조건’의 기틀을 다지며 ‘문명의 이기’와 결별하는 진정한 아날로그로 예능의 방향을 잡기 시작했다.
tvN으로 옮긴 후에도 그의 예능관은 조금씩 바뀌었다. 특히 ‘꽃보다 할배’가 지금의 나영석 표 프로그램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9월 ‘토크콘서트 세대공감 동행’의 강연 무대에 오른 나영석 PD는 “‘꽃할배’를 찍으며 서로 챙겨주고, 힘들어도 한 번 더 해보자고 말하는 걸 상상하며 촬영을 진행했는데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이순재 선생님은 저만치 가버리시고, 백일섭 선생님은 소품을 걷어차 버리고. ‘틀렸구나’ 싶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 사진제공=CJ E&M |
이어 나영석 PD는 “방황과 고민 끝에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정해진 프레임으로 ‘꽃할배’를 촬영하는 게 아닌, 그들의 세상 속으로 내가 따라 가보자는 것. 할배들은 여행을 통해 진짜 어떤 것을 느끼고 생각하는지 내가 그걸 따라 가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정해진 프레임을 걷어낸 후 진짜 그들의 시선으로 녹아들 때 만들어지는 공감이 진짜배기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 경험이 아니었다면 결코 지금의 ‘꽃보다’ 시리즈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조금씩 변해온 그의 예능 세계들은 전보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깊어진 맛을 지니게 됐다. ‘삼시세끼’가 론칭됐을 때에 ‘그저 밥 세끼 지어먹는 게 전부’라는 포맷을 들었을 때 방송가 관계자들의 대부분이 프로그램이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삼시세끼’를 히트시킨 것을 보면 ‘깊어졌다’는 의미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이런 나 PD의 작품을 가리켜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의 저자 정덕현 평론가는 “‘완성되지 않음, 미완’을 통해 소비자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겨 쌍방향 소통을 이뤄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정작 나영석 PD는 “진짜 좋은 예능? 그저 그 한 장면 봤을 때 웃음이 나면 그 뿐”이라고 머리를 긁적인다. tvN의 예능 기둥이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기도 한다. 그렇게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금은 쉴 법도 하지만 아직도 그는 ‘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를 번갈아 론칭하며 한 시도 쉬지 않는다. tvN의 예능을 책임지는 나영석 PD의 질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