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한국 영화계에서 배우 전도연이라는 이름이 갖는 힘은 엄청나다. 2007년 세계 최고 권위의 칸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을 시작으로 배우, 심사위원 등의 자격으로 칸을 네 번이나 밟았다. 그리고 청룡영화상, 대종상, 백상,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국내의 주요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은 거의 품에 안았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그런 전도연이 영화 ‘무뢰한’을 통해 또 한 번 관객들을 홀렸다. ‘무뢰한’은 진심을 숨긴 형사(김남길 분)와 거짓이라도 믿고 싶은 살인자의 여자(전도연 분), 두 남녀의 피할 수 없는 감정을 그려냈다. 전도연은 형사 정재곤이 추적하는 살인범 박준길(박성웅 분)의 연인이자 술집 여자 김혜경 역을 맡았다.
↑ 사진=이현지 기자 |
혜경을 둘러싼 세계는 소통을 못하는 무뢰한 남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정재곤은 김혜경을 통해 박준길을 잡아야하고, 박준길 역시 나름대로 김혜경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전도연 역시 그저 ‘여자를 모르는 남자’라는 설정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무뢰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감독님이 여자에 대해서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재곤 캐릭터에 묻어나서 ‘재곤은 여자를 모른다’는 단편적인 생각을 했죠. 그런데 거기에 모여 있는 무뢰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같았어요. 행동적으로 보여지긴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뢰하게 다가오는 거죠. 또 소통에 대해서 그 방식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소통을 못한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잖아요.”
무뢰한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여자 혜경 역시 그들과 같은 무뢰한이었을까. 전도연은 혜경이라는 인물 역시 누군가에게는 무뢰한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에 임했다.
“이용당하는 것처럼 나오긴 하지만 혜경은 이용당한 거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사랑을 찾고 싶었고, 믿고 싶었던 인물이었어요. 혜경이라는 인물이 능동적으로 뭔가를 선택하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수동적으로 선택 당해진 삶을 살았던 것 같다고 할까요? 최선이라고 믿고 사랑이라고 믿고 행동한 거죠. 누군가를 먼저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정재곤이었을 거예요.”
↑ 사진=무뢰한 스틸컷 |
전도연이 그린 혜경은 그랬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을 믿고 싶어 했다. ‘무뢰한’ 속에서 두 사람이 그리는 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사랑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두 사람의 표현 방식에서 오는 괴리감도 있을 수 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라면 ‘그들이 사랑을 했다’ ‘하지 않았다’라는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명확하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잖아요.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분명 그건 사랑이었어요.”
그녀는 혜경과 재곤의 사랑을 그들만의 표현방법으로 그려내길 원했다. 극의 후반부 재곤을 칼로 찌르는 신도 그렇게 완성됐다. 보는 관객들은 물론이고, 현장에 있던 그 누구도 그들의 감정을 명확하게 정의하긴 힘들었다. 그게 바로 전도연이 생각한 사랑법이었다.
“정말 한 마디로 표현 못할 감정이었죠.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복잡한 애증이지 않을까요? 혜경이라는 인물을 가장 힘들게 한 건 사실상 재곤이잖아요. 밑바닥에 있는 그녀의 현실마저 빼앗는 거니까요. 모든 것을 앗아간 재곤에 대한 미움은 아니에요. 애증일 수도 있고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있었던 것 같아요. 재곤을 찌르는 그 장면이 포옹하고 있는 것처럼 그려지길 원했어요.”
이처럼 전도연은 대본에 안주하지 않고, 직접 자신이 혜경이 되어 캐릭터를 구축해 나갔고, 이 인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감독에게 제시하는 등 프로다운 면모를 여실히 보여줬다. 시나리오상에서 보여지지 않았던 혜경의 약한 모습을 일부러 꺼낸 것도 그녀의 선택이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꼭 약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혜경이 대상화 된 여자처럼 보여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때문에 혜경이라는 인물에 사람을 담아내고 싶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죠. 그만큼 감독님이 절 믿어주신 거죠. 특별히 어떤 주문을 하지도 않으셨어요. 오히려 감독님이 제 연기를 보고 ‘혜경이 참 불쌍해 보이네요’라면서 몰랐던 혜경의 감정을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연기함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가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심을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면서 극중 인물에 다가가는 것이다.
“연기할 때 제가 잘 하고 있는지 항상 궁금하고 계속해서 의심이 들어요. 촬영을 끝내는 순간까지 그 마음은 계속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구세주 같아요. 하하. 그렇게 사인을 받고 나면 미심쩍은 부분이 없는 한 모니터 근처에도 안 가요.(웃음) 연기에는 항상 정답이 없으니까 의심하고 나를 괴롭히면서 인물에 가까워지는 거죠.”
이러한 고민과 노력이 바로 지금의 전도연을 만든 것이 아닐까. 화려한 옷을 입든, 그렇지 않든 전도연이 스크린에서 빛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무뢰한’에서도 전도연은 과연 전도연이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