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배우 김희선의 엄마 연기는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작품 이야기를 나누다 시작된 딸 연아 이야기에 김희선은 그만 수다삼매경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작품 이야기보다, 그리고 배우로서의 이야기보다도 딸 연아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즐거워하는 김희선은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딸 아란(김유정 분)을 위해 교복을 입고 학교로 다시 돌아간 엄마 강자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나중에 연아가 극중 아란과 같은 학교폭력에 당한다면 전 강자보다 더 하면 더했지, 절대 덜하지는 않을 거예요.”
김희선은 MBC 드라마 ‘앵그리맘’에서 학교폭력에 신음하는 딸 아란을 구하기 위해 교복을 입고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는 일진 출신 엄마 강자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엄마가 다시 학생이 돼 딸이 다니는 교실 속 풍경으로 녹아들어간다는 설정은 현실 속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종의 판타지와 같다. 이는 다시 말하자면 김희선이 연기하는 강자가 학교에 들어 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주지 못한다면, 시작부터 몰입이 힘든 드라마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 사진=곽혜미 기자 |
김희선의 연기에 따라 극의 분위기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만큼,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 또한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희선은 ‘앵그리맘’을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모성연기에 도전해야 했으며, 코믹에 액션, 심지어 교복패션까지, 신경 써야 할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의 걱정과는 달리 김희선의 모성 연기는 ‘김희선의 재발견’이라고 불릴 정도로 어색함이 없었다.
“아무래도 제가 진짜 연아 엄마이기 때문에 연기하기가 한결 수월했던 것 같아요. 극중 강자는 조금만 균형을 잃어도 억척스럽고 보기 부담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었는데 작가님이 코믹적인 것과 진정성을 잘 오가면서 수위조절을 잘 해주신 것 같아요. 만약 구구절절한 엄마만 다뤘으면 출연에 대해 고민했었을 텐데 ‘앵그리맘’의 강자는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내가 해도 될까 했지만, 결국 작품을 하게 됐죠.”
김희선은 작품을 통해 가장 크게 얻게 된 것으로 바로 ‘인연’을 꼽았다.
“제가 작품으로 좋은 이야기를 들은 것도 있는데 일단 제일 감사한 것은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거예요. 저랑 ‘앵그리맘’의 연출을 맡은 최병길 PD, 그리고 한공주 역을 연기한 수희까지, 셋이서 나이가 동갑이다보니 금방 친해졌어요. 나이 들어 좋은 친구들을 만난다는 것 쉽지 않은데, 작품의 승패를 떠나서 좋은 인연을 만났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앵그리맘’을 선택하기 잘했다 싶어요.(웃음)”
최병길 PD와 친구라고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김희선의 옆에는 최병길 PD도 함께 있었다. 깜짝 게스트처럼 등장한 최병길 PD에 “어떻게 여기 있냐”고 물었더니 주위를 배회하다 우연히 연락이 닿아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한다. “김희선씨와 나는 잘 풀린 ADHD들이다.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조용히 있는데, PD와 주연배우가 제일 정신없다”는 최병길 PD의 말처럼 인터뷰가 진행되던 카페는 수다와 웃음, 그리고 간간히 튀어나오는 티격태격까지, 단 한시도 조용할 틈이 없었다.
“아니 기자님 들어보세요. 강자가 친구인 공주와 담임선생님인 노아(지현우 분)와 함께 공사 중인 학교 건물을 몰래 순찰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어요. 그때 방송분을 보면 심약한 노아가 쥐를 보고 깜짝 놀라자 강자가 ‘쥐에요 쥐. 저건 쥐며느리고. 가족회의 나왔나보내’라고 대사를 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게 감독님 아이디어거든요. 그런데 그게 웃기나요? 사실 처음 제가 했던 애드리브는 ‘쥐에요 쥐. 저건 쥐며느리고. 바람났네 바람났어’였거든요. 이게 더 웃기지 않아요? 현장에서 한창 실랑이를 하다가 나중에 편집할 때 감독님이 마음대로 내 애드리브가 아니라 감독님 애드리브인 ‘가족회의’를 선택했다니까요. 진짜 권력남용 아닌가요?”
↑ 사진=곽혜미 기자 |
솔직히 말해 ‘가족회의’나 ‘바람났네’나 제3자의 눈에서 봤을 때는 ‘오십 보 백 보’이지만, 이에 대해 열띤 토론을 늘어놓는 김희선과 최병길 PD의 표정은 자못 진지해 보였다. 그러다가도 이내 장난으로 넘어가는 김희선과 최병길 PD의 모습을 보자니, 이들이 왜 친해졌으며 친구가 됐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최병길 PD와 작품을 통해 무척 친해졌어요. 그래서 원래는 다섯 가지를 이야기 할 걸 대화가 이어지면서 열 가지 스무 가지가 되기도 하고, 배우끼리도 불편해서 못할 얘기도 편안하게 털어놓고 부탁도 하기도 해요. 친하니까 작품 피드백도 서슴없이 하고, 이런 좋은 분위기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괜히 띄워주는 것이 아니라 최병길 PD는 천재적인 감독인 것 같아요.”
촬영이 끝나고 나니 매일 보는 연인과 헤어진 듯 허전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김희선은 그 무엇보다도 작품을 통해 이어진 인연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해 했다.
“배우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종영 이후에도 누군가 한 명씩 문자를 보내고 대화를 이어나가요.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런 거 볼 때마다 우리 ‘앵그리맘’ 팀의 분위기가 참 좋았구나 싶어요. 촬영할 때는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몰랐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매일 붙어다니던 연인가 떨어진 느낌임이 들면서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얼마 전에 수희가 전화를 했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그런데 신기한 것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해졌다는 거예요.”
무엇이 그렇게 잘 맞았냐고 물어봤더니 배우에서부터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모난 구석 없는 순한 사람들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리허설 때부터 다 잘 맞았어요. 모두 모난 성격의 친구들도 없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원래 촬영이 힘들수록 정말 친해져요. 아무리 힘들어도 장시간 쪼개가면서 수다를 떨고 대본도 맞춰보고, 농담도 하고 그러니까.”
↑ 사진=곽혜미 기자 |
‘앵그리맘’에서 김희선의 엄마 연기만큼 화제가 됐던 것은 바로 16살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은 연하남 지수와의 케미였다. 지수가 연기했던 고복동은 겉으로는 퉁명스럽지만 그 속을 알고 보면 여린 18살 소년이었다. 강자를 통해 엄마의 모습을 봤던 복동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후 강자가 같은 반 친구 아란의 엄마라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던 슬픈 짝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비록 러브라인이 닿지는 않았지만, 실제 시청자들로 하여금 러브라인 요청이 올 정도로 김희선과 지수의 합은 나이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드라마 끝나고 복동이 이야기 많이 하더라고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이득을 많이 본 편이에요. 연하인데 심지어 나이차이도 크게 나는데 러브라인이라뇨. 감사할 뿐이죠. 지수가 연하이지만 보면 일단 겉 모습에서 선 굵은 남자다움이 있어요. 그런 친구들 옆에 있으면 여배우가 일단 편해요. 나이 든 아줌마가 어떤 짓을 해도 징그러워 보이지 않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죠.(웃음).”
김희선은 열성 엄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연아 이야기가 중간중간 튀어 나왔으며, 심지어 연아를 위해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도 보여주며 즐거워했다. 아무리 스케줄이 바빠도 김희선은 연아가 다니는 유치원 학부모 모임의 반장 역할을 놓치지 않는다. 잠깐 잠든 사이 유치원 엄마들끼리 만들어 놓은 단체 카톡창에 300~400개가 넘는 메시지가 쌓여있을 지라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다 읽는 것은 기본이다.
“요즘 유치원에 가면 연아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연아 엄마다’라고 알아보더라고요. 그럼 우리 딸은 거기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뿐만이 아니라 유치원 엄마들 모두 열정적이세요. 어느 날은 잠깐 잠이든 사이 단체 카톡방에 메시지가 400~500개나 와 있을 때도 있어요. 물론 모두 다 읽죠. 요즘 일을 병행하면서 연아와 자주 놀아주지 않지만 한 번 놀아줄 때는 확실하게 어설프지 않게 놀아줘요. 학부모 특별 강의 때는 SBS ‘화신’ 제작진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애니메이션도 만들어 보여주고, 인형극을 해주기도 했어요.”
김희선과 예정됐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시점, 여전히 곱디고운 미모를 자랑하는 김희선에게 동안관리 비법에 대해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따로 피부 관리는 안 해요. 오히려 관리를 받으면 얼굴에 뭐가 나더라고요”라며 웃는다. 그래도 무슨 방법이 있지 않느냐고 채근했더니니 돌아오는 답변은 “피부에 좋은 술을 즐겨요. 소주 같은 화학주보다는 막걸리 같은 발효주가 피부에 좋더라고요”였다.
마지막 가는 길 까지도 김희선은 호탕하고 엉뚱하며, 또 솔직했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극성 엄마가 됐어도 김희선이 아름다운 이유는 꾸미지 않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