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배우 권율. 영화 ‘명량’ 속 이순신 아들이었던 이 배우가 갑자기 TV에 나와서 욕을 한다, 그것도 맛있게. ‘먹방’하는 프로그램에서 음식은 안 먹고 욕을 이토록 ‘맛있게’ 하다니, 신선한 충격. ‘권율이 원래 이랬나?’ 싶다. 그야말로 권율의 ‘재발견’이다.
권율은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2’(이하 ‘식샤2’)에서 엄친아 공무원 이상우를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가 연기한 이상우는 낮에는 ‘고스펙’에 빛나는 반듯한 세종시 5급공무원이지만 밤에는 ‘쌍욕(!)’을 서슴지 않는 반전의 캐릭터다. 처음에는 백수지(서현진 분)에 호기심으로 다가갔지만 결국에는 절절한 고백을 하는, 순정남이기도 하다. 참 다채로운 변화를 겪은 캐릭터를 연기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권율은 “정말 재밌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식샤2’를 끝낸 소감을 묻자 대뜸 “‘식샤2’의 박준화 감독님 덕분에 정말 일찍 촬영을 끝나서 잘 쉬고 있다”고 박준화 PD의 자랑부터 했다.
↑ 사진제공=tvN |
“이번 촬영은 정말 빨리 끝났다. 감독님께서 스케줄을 착착 진행하게 해주셔서 밀림 없이 촬영이 진행됐다. 드라마가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대기한 적이 별로 없었고, 각 배우의 성향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환경을 잘 만들어주셨다. 대본도 빨리 나왔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끝낼 수 있게 스케줄을 잘 정리해주셨다. 무엇보다 제가 박준화 감독님을 보고 참 감명을 받았던 건 본인이 직접 다 움직이시는 걸 보면서다. ‘먹방’ 촬영을 할 때에도 직접 감독님이 그릇을 나르거나 닦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신다. 그렇게 감독님이 그렇게 직접 몸을 움직이기는 쉽지가 않은데 말이다. 딱 한번 제가 오래 기다린 적이 있었다. ‘먹방’을 촬영할 맛집을 섭외하다 보면 가끔 그런 적이 있다. 그런데 그날 박 감독님께서 직접 전화 주셔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셨다. 나뿐 아니라 모든 배우에게. 그런 부분들을 통해 참 합리적이고 배려 넘치는 분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 작품에 대한 열정과 ‘오지랖’이 많으신 분이었다.(웃음)”
권율은 다른 배우들 덕분에 편하게 촬영했다며 화기애애했던 촬영장을 회상했다. 그는 특히 ‘채찍질’ 담당이었단다. 권율은 “항상 ‘좋습니다. 좋은데, 더 가셔야죠’라고 말하곤 했다”고 자신이 ‘채찍질’ 담당인 이유를 설명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조곤조곤 말하는 그의 말투에서 자꾸만 기자간담회 날이 떠올랐다. ‘식샤2’ 기자간담회에서 권율은 특유의 말투로 ‘훅 들어오는’ 개그를 선보여 취재진을 쥐락펴락했다. 그 날의 반응을 전하자 권율은 “제가 그렇게 웃겼나”고 물으며 머쓱한 듯 웃었다.
“제가 촬영장에서 ‘채찍질’을 자처했던 건 잘 되는 분위기에 취하지 말고 더욱 집중하자는 의미였다. ‘우리 최고 시청률 찍었다’고 감독님께서 자랑하시면 제가 옆에서 ‘이게 최고 시청률이라고요? 더 가셔야죠’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물론 정색을 하진 않았다.(웃음) 제가 젊은층의 배우들 중에서는 맏형이어서 그런 것도 있다. 그래서 기자간담회에서도 제가 좀 말을 많이 했다. (윤)두준 군, (서)현진 씨 모두 성격이 점잖으신 분들이다. 현진 씨는 여배우라 더욱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고. 어차피 캐릭터의 반전도 밝혀졌겠다, 저도 참아왔겠다 싶고 와주신 분들을 위해 화기애애한 자리를 만들고 싶어서 제가 좀 나섰던 것 같다. 그런데 기자간담회 이야기를 벌써 한 세 번째 듣는 것 같다. 제가 그렇게 웃겼나 싶다.(웃음) 그 자리에 있던 많은 분들께서 제게 ‘원래 그렇게 재밌는 분이었냐’고 물으시더라. ‘식샤2’의 이상우처럼 ‘반전’이 있는 배우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웃음) 어렸을 때는 진짜 망아지 같은 성격이었는데 ‘풍파’의 세월을 겪으면서 좀 얌전해졌다. 제가 좀 엉뚱한 부분은 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다.”
↑ 사진제공=사람엔터테인먼트 |
그렇게 엉뚱한 면으로 취재진을 놀라게 했던 권율은 정말이지 극중 이상우와 닮은 면이 많았다. 드라마가 끝난 후 근황을 물으며 어디 놀러 가지 않았냐는 질문에 “사람이 많은 곳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가면 낯설기도 하고 분노 게이지도 상승한다”고 말하는 권율은 딱 이상우 그 자체였다. 권율 스스로도 “정말 저와 닮은 구석이 많은 캐릭터”라고 이를 인정했다.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의 배우들이 전부 자신의 캐릭터와 비슷한 구석이 많다고 설명했다.
“윤두준 씨와는 축구로 많이 친해졌다. 따로 만나 축구를 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극중 구대영, 이상우 캐릭터가 친해진 이유가 축구인 것처럼. ‘식샤2’의 캐릭터들에 각 배우들의 실질적인 모습들이 어느 정도 잘 담긴 것 같다. 저도 물론 그렇고. 제 모습을 직접 다 보여주면 그건 다큐가 되니까 제 평소의 모습을 농축해서 엑기스를 이상우 캐릭터 안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어디까지 이 선을 보여줘야 할지 결정하는 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이상우라는 캐릭터가 실제의 저와 성향이 비슷해서 캐릭터와의 공감도가 높았다는 거였다. 소속사 대표님께서 대본을 보고 ‘이거 너와 정말 비슷한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씀해주실 정도였다.”
이상우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말하는 권율에 ‘그렇다면 이상우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냐’고 물었다. 실제로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 이상우의 갑작스러운 사랑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처음 백수지를 그저 호기심으로 바라봤던 이상우가 후에는 눈물을 보일 정도로 백수지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그렇게 이상우는 백수지에 빠져든 걸까. 그런 사랑이 가능한 걸까. 권율은 “이상우가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성을 만나면 그렇게 된단다.
“저는 마음을 열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연 후 짧은 시간에 백수지에게 푹 빠져버린 이상우의 사랑법에 공감이 갔다. 제 자신이 이성을 만날 때 많이 신중한 편이다. ‘쟤는 너무나 예의를 지켜서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본의 아니게 오해를 종종 받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에 신중한 편이다. 즐겁게 지내지만 진짜 제 모습을 보이는 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이상우도 그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이상우가 백수지를 호기심으로 좋아하기 시작했지만, 그 호기심도 호감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한없이 주는 캐릭터일 뿐이다. 이상우에게 백수지와 만난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 저는 상우를 통해 마음을 열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 이후에는 백수지에 정말 최선을 다한, ‘달달한’ 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권율의 의도대로 이상우는 ‘참 달달한’ 남자가 됐다. 드라마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상우 파’와 ‘구대영 파’가 나뉘어져 백수지의 사랑을 응원하는 세력들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식샤1’의 애청자들은 이런 ‘사랑싸움’ 자체도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니 뭐니 해도 ‘식샤’의 백미는 ‘먹방’이라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서 러브라인에 지나치게 치중한 것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시즌2의 배우로서 권율은 “‘식샤1’에서 보여준 ‘먹방 콘텐츠’라는 토양 위에 시즌2라는 ‘러브라인’의 색깔을 띤 나무를 심은 것”이라는 멋들어진 해석을 내놨다.
↑ 사진제공=tvN |
“시즌1은 ‘먹방’이라는 콘텐츠라는 본질을 소개하는 과정이었다. 시즌2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식샤’를 알게 해주는 대중화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더욱 다양한 ‘나무’(시즌)들이 자랄 수 있는 ‘식샤’라는 땅을 넓히는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식샤1’의 마니아 분들의 섭섭한 마음은 이해가 간다. 마치 나만 아는 맛집이 유명 맛집이 된 기분이랄까.(웃음) 왜 그런 게 있지 않나. 나만 아는 맛집이 2호점, 3호점을 내면 맛이 어딘가 변질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예전의 줄을 서서 먹었던 그 때가 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 맛집을 응원해준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맛집의 음식을 알게 되고 이를 사랑해주게 되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식샤’도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아, 지금 방금 이 비유의 제목을 ‘식샤2 권율, 맛집 2호점 낸 기분’ 혹은 ‘맛집의 대중화’라고 달아주시면 감사하겠다. 비유 잘 한 것 같다.(웃음)”
하지만 누가 뭐래도 ‘식샤2’를 통해서 권율은 ‘재발견’이라는 단어를 들을 만큼 줄 잇는 호평을 받았다. 그럴 만 했다. 변화가 많은 이상우 캐릭터를 들뜨지 않게, 무게 중심을 잘 잡으면서 연기를 했다. 드라마 안에서 ‘식샤님’ 구대영의 자리를 위협할 만큼 큰 존재감을 보인 인물이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대단했다. 권율에 이런 분위기를 전하자 그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부끄러워했다.
“정말 감사하다. 이번에는 제 모습을 진짜 친근하게 보여줄 수 있는 콘텐츠와 캐릭터를 찾으면 했다. 그동안에는 영화 ‘명량’의 이순신 아들과 같이 틀에 갇혀있는 삶을 사는 어둡고 무거운 캐릭터들이 많았다. 하지만 ‘식샤2’를 통해 좀 더 편안한 모습으로 연기를 하고 친근하게 시청자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저의 그런 갈증과 캐릭터가 딱 맞았다. 그래서 제게 오는 칭찬들은 ‘정말 잘했다’가 아닌 ‘잘 어울리네’ 정도였던 것 같다. 제 자신은 ‘이제 좀 잘하고 있네’ 정도의 칭찬으로 생각하고 있다. 전에는 제가 도전하고, 깨지고, 많이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와 작품을 선택했고, 자연스럽게 고통스러운 작업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선택 기준은 달랐다. 좀 더 저를 잘 보여드릴 수 있고, 소통하고, 친근하게 보여주는 콘텐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그게 드라마든, 영화든, 예능이든, 라디오든 상관없었다. 그런 타이밍에 ‘식샤2’를 만나게 됐고, 그 기준에 딱 맞아서 출연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이런 모습을 잘 봐주신 것 같다.”
언뜻 권율에게 ‘재발견’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한켠으로는 미안함이 들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2007년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가 기재돼 있다. 참 오래 전부터 연기를 해 온 배우다. 그런 배우에게 ‘재발견’이라니. 너무 늦은 것 아닐까. 그에게는 꽤나 긴 무명 시절이 있었다. 그 ‘재발견’이라는 단어는 그 때의 아픔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권율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손을 내저었다.
↑ 사진제공=tvN |
“처음에는 왜 내가 하는 것에 비해 다른 분들이 잘 몰라주실까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고 속상함도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저에게 많이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양분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상우라는 캐릭터를 만났을 때 그나마 ‘재발견’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끔 저를 잡아주는 ‘중심’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저는 ‘재발견’이라는 단어를 언제나 환영한다. 20년 뒤에도 ‘권율의 재발견’이란 단어를 듣는다면 그 말만큼 행복한 단어도 없을 것 같다. 다른 분들이 저의 새로운 모습,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연기를 통해 저를 재발견의, 재발견의, 재발견을 해주신다면 감사하겠다. 늘 재발견이라는 단어를 듣고 싶은 배우다. 저는 ‘어떻게 봐도 권율이 할 것 같은 캐릭터’라는 말보다는 ‘권율이 이럴 줄 몰랐네’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이런 말을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렇듯 ‘재발견’이라는 단어에 행복해하는 그는 권세인이라는 본명에서 권율이라는 예명으로 새롭게 활동하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 권율이라는 이름은 스스로에게 울림과 같다고 그는 말했다. 권세인으로서는 타협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부분을 권율로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해보게 됐고,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나태해지지 않는 배우가 됐단다. 그렇게 ‘배우 권율’로 살아가는 그에게 ‘인간 권율’은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YES’였다. 배우로 사는 인간 권율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며 그는 미소 지었다.
“인간 권율로서 행복하냐고? 당연하다.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못했던 시기가 꽤 길었고, 제가 하고 싶어도 못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를 마음껏 하고 있고, 심지어 이를 통해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주시고 있다. 이보다 더욱 행복할 수 있을까. 서른 네 살의 인간 권율, 참 행복하는 중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