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14년 전 영화 ‘친구’로 거센 흥행의 맛을 봤던 곽경택 감독. 그는 ‘친구’ 이후에 거칠고 어두운 세계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꺼내오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친구2’ 역시 약 3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그 ‘어두운 세계’가 자신의 색깔처럼 굳어졌다.
지난 18일 개봉한 영화 ‘극비수사’도 수사물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추적하는 대상이 ‘범인’이 아닌 유괴당한 ‘아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는 1978년 부산에서 벌어진 초등학생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곽 감독은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것에 집중한 채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 사진=이현지 기자 |
앞서 어두운 세계의 ‘남자 영화’를 다루는 감독이라는 편견을 뒤집어줄 수 있는 영화가 바로 ‘극비수사’인 셈이다. 물론, 곽 감독의 흥행작들을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밋밋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 영화 역시 곽 감독에게 있는 수많은 감성들 중 하나다. 이런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의외로 ‘친구2’ 기획단계에서 시작됐다.
“‘친구2’ 기획단계에서 조직폭력배를 취재하려고 부산에 가서 공길용 선생님을 만났어요. 그런데 의외의 이야기를 하신 거죠. 그게 바로 1978년 부산에서 벌어진 유괴사건이었는데, 듣자마자 느낌이 왔어요. 엉뚱하게 얻어걸린 거죠. 하하. 공길용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재미있기도 하고, 신선했어요. 영화의 소재 면에서도 굉장히 좋았고요. 그 당시를 회상하시면서 두 눈이 촉촉해지는 공길용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이 영화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공길용 형사를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들은 곽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고 김중산 도사를 찾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곽 감독이 당시 사건을 영화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누가 결론도 다 아는 이 영화를 누가 보겠냐’며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하지만 곽 감독은 ‘확신’이 있었다.
“공길용 선생님도 그랬지만 김중산 도사의 모습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밝고 맑으세요. 술과 담배에 찌든 제 눈빛보다 50배는 맑은 것 같아요. 하하. 물론 두 분은 걱정을 하셨죠. 그런데 전 확신이 있었어요. 시나리오를 읽어 본 사람들이 ‘단순한데 잘 읽힌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또 영화는 글자가 아니고 시각과 청각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이잖아요. 결론이 이미 알려진 만큼 시청각을 풀가동했죠.”
실제로 곽경택 감독의 전작에서 여러 차례 호흡을 맞췄던 전인한 미술감독이 ‘극비수사’를 통해 당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70년대 거리부터 일반 가정집 실내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쓴 냄새가 물씬 풍긴다. 또한 김창주 편집감독이 가세해 극중 범인을 검거하는 형사와 도사의 수사 과정을 더욱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또 세팅을 하지 않아도 70년대의 시대적 모습이 최대한 남아 있는 곳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당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도록 세트를 만들고, 장소를 헌팅 했죠. 보여지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바로 ‘리얼리티’죠. 또 관객들이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사운드 디자인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를 들면 범인이 KBS 앞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올 때 자동차 시동을 켜고 출발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시동 거는 소리가 필요이상으로 크거든요. 멀리서 들리는 시동 거는 소리가 주인공의 귓속, 그리고 마음속에 들리는 소리로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시각적인 면을 서포트하는데 소리가 6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요소에요.”
곽 감독은 세심한 연출력으로 이야기를 구성을 탄탄하게 붙잡고, 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배우들의 몫이었다. 사실 김윤석과 유해진의 조합이라니, 걱정할 리 없다. 연기력이야 이미 충분히 증명됐고 두 사람이 평소 친분을 유지해왔던지라 호흡도 두 말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곽 감독 역시 두 배우에 대한 신뢰를 강하게 내비쳤다.
“김윤석 씨가 그런 건 있다. 내 작품이잖아요. 본인 작품에 대한 애착도 있지만 감독에 대한 리스펙트는 분명히 있어요. 유해진 씨에 대한 고민은 사실 많이 했어요. 대중들이 그에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유해진 씨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었어요. 단단한 연기의 소유자잖아요. 그는 이미 김중산으로서의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특정 장면에서는 아마 웃음이 터질 거예요. 굉장히 없어보이게 하고 싶었거든요. 하하. 두 사람 모두 베테랑이라는 게 실감났죠.”
↑ 사진=이현지 기자 |
두 배우의 호흡도 그렇지만, 곽 감독까지 합세해 세 명의 케미는 그야 말로 안성맞춤이었다. 같은 세대를 살아온 이들이기도 하고, 소주 한잔 하면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꿉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때문에 촬영장 분위기도 훈훈했을 거라고 예상들 하겠지만. 이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두 사람이 같은 동네에서 살아요. 작품을 같이 하지 않아도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먹으면서 관계를 다졌죠. 저는 서로 왕래는 없던 사이인데, 이 영화를 계기로 이들과 관계를 맺게 된 거고요. 촬영장은 재미있었지만 정말 치열했어요. ‘조금 더 해보자’ ‘이건 어떠냐, 저건 어떠냐’. 각자 고민을 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서로 뒤섞이는 그런 자리였죠.”
이야기와 호흡 면에서 탄탄한 ‘극비수사’를 내놓은 곽 감독은 “일단 봐 달라”는 말을 했다. 일단 보면 실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영화에 대한 평은 지극히 관객들에게 돌리며, 그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달게 받는 모습이 과연 베테랑 감독다웠다.
“내용적인 면에 있어서 내면을 보든, 그 자체를 놓고 보든 그것은 관객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소리는 기분 좋게 듣고 쓴 소리도 기분 좋게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박정선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