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박정선 기자] 영화 ‘극비수사’는 부산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1978년 당시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극비로 수사를 진행했던 형사와 도사의 이야기다. ‘극비수사’는 실제사건을 영화 속으로 가져오면서 결론이 노출되어 있다는 핸디캡을 극복한 영화다. 결론을 추측해 나가는 묘미는 없어도, 결론을 쫓아하는 스피드한 전개와 영상·사운드의 조화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관객들을 극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김창주 편집감독이다. ‘명량’ ‘표적’ ‘끝까지 간다’ ‘관상’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최종병기 활’ ‘퍼펙트 게임’ ‘포화속으로’ 등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한 김창주 편집감독은 ‘극비수사’에서 감독과 관객들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한다.
↑ 사진=MBN스타 DB |
Q. 곽경택 감독이 제작진을 꾸리는 데 있어서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을 위주로 했다고 하더라. 그렇다 보니 베테랑 제작진들이 대거 참여했다.
A. “호흡은 뭐 말할 것도 없었죠. 저는 사실 그 사건을 알진 못했어요. 그냥 감독님에게 지인이 추천을 해줬더라고요. 감독님과는 이번 작품이 첫 호흡이라 걱정도 했는데, 형님동생처럼 정말 잘 맞았어요. 감독님이 말하고 싶은 걸 같이 만들어 갔는데 정말 궁합이 잘 맞았어요. 과정도 좋았고 결과도 만족스러워요. 감독님과 둘이 여행도 갔는데, 큰 형님을 얻은 느낌이랄까요? 하하.”
Q. 그렇다면 이 사건을 시나리오를 통해 접한 건데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어땠나.
A. “마흔 후반쯤 되는 부산사람들에게는 아주 유명한 사건이고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저는 ‘도사가 같이 한다는 게 말이나 돼?’라고 생각하면서도 굉장히 흥미가 생겼어요.
Q.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길 원했나.
A.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굉장히 쫄깃하고 구수하고 긴장감이 있다는 말을 해주셨는데 정말 감사해요. 사건을 쫓는 공길용 형사, 그리고 김중산 도사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관객들 개개인이 그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게 만들고자 했어요. ‘끝까지 간다’에서도 관객들이 이선균의 마음이 되어버린 거잖아요. 그런 화학적인 작용을 통해 뜨거워지는 거죠. 그 후에 푸근한 느낌을 주면서 여운을 극대화시키는 거예요.”
Q. 가장 흥미가 갔던 건 사운드였다. 자동차 경적 소리, 성냥불 지피는 소리, 가방 떨어지는 소리 등을 현실적이지 못할 정도로 크게 만들어냈더라.
A. “맞아요. 현실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그 모든 소리들은 마음으로 듣는 소리처럼 만들려고 했던 의도죠. 극중 KBS신이 있잖아요. 모든 노이즈가 떨어지고 음악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울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즉, 공길용은 관객들의 눈이 되는 거죠. 다른 영화에서도 이렇게 극중 인물이 관객들의 눈을 대변해주는 작업을 하는 걸 좋아했어요. ‘명량’의 전투신도 마찬가지고요. 그 고리에 걸려들면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딸려 오는 거죠. 그 소리는 인간의 본능을 건드리거든요. 소리는 진실해요.”
Q. 편집감독의 역할,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관여하는지 궁금하다.
A. “기본적으로 제가 생각하는 편집은 ‘된장국’이라는 장르의 영화가 있다면 그 것을 얼마나 맛있게 요리하는지, 즉 그 요리를 만드는 역할이라고 봐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동시에 해야 하죠. 그래서 편집할 때 사운드와 영상의 융합 작용을 만드는 걸 좋아해요. 어쨌든 편집은 시를 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어요. 압축하면서 운율을 만들어내는 거죠. 실제로 작업을 할 때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다는 생각이에요. 지휘봉을 들고 작업을 시작할 정도라니까요? 하하.
Q.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A. “‘설국열차’를 작업했을 때 많이 하던 얘기가 있어요. 편집이라는 포지션이 있지만 그 ‘편집’이라는 단어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고요. 그저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뿐이죠. 멋진 영화를 추구할 뿐이죠.”
Q. 수사 과정을 박진감 넘치게 만들기 위해 편집 과정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다면?
A. “초반부가 좀 많이 생략됐죠. 과감하게 관통을 시키면서 빨리 범인을 만나게 되도록 한 거예요. 김중산도 초반에 많이 나왔는데 다 잘라버렸어요. 양치를 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을 하잖아요. 사실 그 전에 가족들과 힘들게 살고 있는 모습들이 많이 있었는데, 과감히 쳐냈죠. 첫 등장이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관객들이 그 부분에서 많이 웃으셨다고 하더라고요. 통했어요.(웃음)”
Q. 이번 작품에 참여하면서 힘들었던 점이나, 아쉬운 부분은?
A. “전혀요. 저는 긴장하고 작품에 임하면 결과물이 잘 나온다고 확신해요. 가끔 감독님이 한 번씩 도전이 되는 말들을 해주시면 더 바짝 긴장해서 작업했죠. 제가 이 작품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좋아하게 돼서 시작한 거니까요. 어려운 지점이 있을수록 도전정신이 불탄다고 할까요? 하하. 내가 본 그 꽃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피울 수 있다면 그 때의 쾌감과 희열은 말로 할 수 없죠. 잔머리를 굴리면 절대 좋은 영화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에요. 장르불문 매력적인 지점이 한 군데라도 있으면 그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그래서 전 편집감독을 ‘관상쟁이’라고도 표현하는데, 관객들의 마음을 미리 점치고 영화를 통해 그 지점을 건드리는 역할을 하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Q. 영화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진다. 영화 편집감독을 하게 된 이유는 뭔가.
A. “뭐…. 사실 연출하려고 시작했죠. 하하.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많이 묻더라고요. ‘졸업하고 연출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질문이요. 사실 편집을 하는 게 연출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도 편집 출신 감독들이 많기도 하고요. 편집을 맡겼는데 좋아하시고, 좋으니까 찾아오고…. 그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감독의 길로 들어서더라고요. 저도 항상 꿈꾸고 있어요. 여행가기 전에 설레는 감정? 지금이 딱 그 느낌이에요.”
Q. 연출의 길에 가까워진 것 같다고 생각하나?
A. “제가 인지도가 없을 때부터 골방에서 일만 했어요. 그 골방에 조그마한 창문이 하나 있거든요. 창문을 열면 계절이 바뀌어있을 정도로 5년 동안 일만 했어요. 작은 영화라도 어느 한 지점이 제 마음을 건드리면 가리지 않아서 많은 작품들이 맞물려 있었거든요.”
Q.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가능한가?
A. “일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어요. 쉬면 긴장이 떨어져요. 그 기운을 유지하려고 긴장을 놓지 않는 거죠. 만드는 사람이 그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지 않으면 관객들이 우습게 봐요. 영화가 단단하려면 만드는 사람이 단단해야 한다는 거죠.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있어요. 요리책에 보면 ‘소금 몇 스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것보다 ‘소금 적당량’이 더 와 닿더라고요. 영화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도 그렇고 정형화될 수 없잖아요. 적당히 자신의 조리법을 만들어나가는 거죠.”
Q. 편집 감독으로서 소신이 있다면?
A. “석굴암 본존불을 세운 김대성이라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본존불을 깎을 때의 감동을 알 것 같아요. 부처님에 대한 깨달음과 세월을 관통하는 감동이 있는 것 같아요. 아, 참고로 전 불교는 아니에요. 하하. 결론은 창조해내고 만들어내는 사람으로서의 감동을 잃고 싶지가 않다는 거예요. 어떤 작품을 했을 대 감동이 오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주 작은 감동이라도 그걸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 같은 맑은 마음이 필요하겠죠. 나이가 들면서 그걸 유지하기가 쉽지가 않을 수 있지만 유명세에 따른 거만함은 창작자의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해요.”
최준용 기자, 박정선 기자, 김진선 기자, 김성현 기자, 최윤나 기자 composer_js@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