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톱스타다. ‘서울대 출신’ CF 모델로 혜성처럼 등장한 지도 어언 15년.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톱의 자리를 놓친 적 없는, 스타 중 스타다.
연기자 김태희의 필모그래피를 짚어보면, 드라마 ‘천국의 계단’(2003)을 시작으로 안방극장에서 주연급으로 활약한 지도 어느덧 12년이니 이제 연기에 한창 물이 올랐을 시기다.
김태희는 이미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2004)에서 상당히 안정된 연기를 보여줬다. 비록 스크린 주연 데뷔작 ‘중천’(2006)에서는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데 실패했지만, 이후 영화 ‘싸움’(2007)과 ‘그랑프리’(2010)에서는 몸 사리지 않는 호연으로 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또 드라마 ‘아이리스’(2009)와 ‘마이 프린세스’(2011)로는 기존 김태희에 대한 인식을 뛰어넘은 열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아이리스’에서는 요원으로서의 냉철함과 치명적인 사랑에 빠진 여인의 지고지순함을 동시에 연기하며 한층 깊어진 눈빛을 보여줬다.
안방극장에서 시도한 첫 사극인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 역시 초반 논란을 그 스스로 극복하고 한층 성장한 모습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런데 이상하다. ‘배우’ 김태희에 대해 대중은 조금의 빈틈도 허락지 않는, 이상할 정도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낸다. 유독 그녀에게만 엄격한 연기 잣대를 들이댄다. 왜 그럴까.
돌이켜보면, 애석하게도 김태희는 캐릭터 운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시쳇말로 ‘메소드 연기’를 보여줄 만한 역할은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가 어쩌면 첫번째 기회였지만, 작품 속 장옥정은 우리가 흔히 만나 온 장희빈과 다른 시각으로 그려졌기에, 장희빈으로서의 파괴력은 생각보다 덜했다.
그랬기 때문일까. ‘장옥정, 사랑에 살다’ 이후에도 ‘악플’은 여지없이 그녀의 뒤를 밟았다.
그런 그녀가 절치부심,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돌아온다. 내달 5일 첫 방송되는 SBS 새 수목드라마 ‘용팔이’를 통해서다.
“솔직히 데뷔할 때 많은 준비 없이 주인공을 맡게 되고, 바쁘게 작품에 들어가다 보니 많은 허점을 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자리잡게 됐는데, 내가 변화된 모습으로 그걸 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평이라지만 정확한 분석이다. 실제 김태희에 대한 대중의 평가에는 선입견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이 선입견이란 게 그리 쉽게 변하진 않는 탓에 오랫동안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스스로도 대중의 비호의적인 반응에 어느 정도 단련된 듯 하다.
김태희는 “물론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작품에서 어떤 평가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쁜 평가도) 관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애정 어린 지적이나 그런 것들을 다 받아들이고 발전의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중요한 시점, 컴백작으로 선택한 ‘용팔이’는 고액의 돈만 준다면 조폭도 마다하지 않는 실력 최고의 돌팔이 외과의사 ‘용팔이’가 병원에 잠들어 있는 재벌 상속녀 ‘잠자는 숲속의 마녀’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김태희는 경영권과 유산을 가로채려는 오빠에 의해 깊은 잠에 빠졌지만 용팔이를 통해 극적으로 의식을 찾고 자신을 깊은 잠에 빠뜨린 이들을 상대로 무서운 응징에 나서는 한여진 역을 맡았다.
그동안 김태희가 보여준 적 없는, 임팩트 강한 캐릭터임이 분명하다. 김태희는 “극단적이고 센 상황에서 연기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된다”며 “여진은 매 씬에서 어떤 캐릭터인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모든 씬에서 어느 정도 계산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김태희는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동안 욕심만 앞섰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서 오히려 내가 그동안 익숙해졌던 패턴이나 습관을 다 버리고 좀 더 새로운 나름의 방법론적인 면에서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팔이’ 4회까지 김태희는 일부 회상씬을 제외하고는 식물인간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는 장면으로만 등장하게 된다. 제작발표회에서 소개된 ‘용팔이’ 하이라이트 영상에서도 김태희의 활약을 확인할만한 이렇다 할 장면이 공개되지 않았기에 김태희의 변신을 예단하긴 이르다.
하지만 “이번엔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기대 아닌 기대의 시선은 배우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마음의 짐이 연기에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연기자의 능력이겠으나, 기왕이면 김태희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용팔이’를 바라본다면 어쩌면 기대 이상의 수작(秀作)과 호연을 만나게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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