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은 세밀하게 신경 쓴 영상미가 돋보인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배경에서 무협액션을 연출한 게 흥미롭다. 한국적 정서가 반영된 서사와 반전, 멜로 코드도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을 만하다.
정통무협 액션을 떠올린 이들에겐 화끈한 대결 장면이 없어 실망할 수 있다. 이유 없이 유백(이병헌)의 편이 된 것 같은 율(준호)의 이야기를 비롯해 중간중간 널 뛰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4시간이라는 원본을 어쩔 수없이 줄여야 했기에 편집 지점을 찾기 어려웠던 듯하다.
배우들의 연기도 안타깝다. '믿고 보는 배우' 전도연의 감정선은 괜찮았으나, 맹인검객이 된 그의 연기에 동화돼 호평을 보내긴 무리다. 액션에 신경 쓰느라 연기 내공을 100% 발휘하지 못한 느낌이다. 어려운 액션을 90~95% 직접해 낸 김고은의 고생은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러나 작품마다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기에 지친다.
이병헌의 연기가 그나마 제일 괜찮았는데 '50억 협박녀 사건'을 떠올릴 수 있어 관객이 온전히 그의 연기에 몰입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 영화는 김고은이 연기한 홍이의 복수가 중심축이긴 하나 덕기(이병헌)도 중요한 인물이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월소(전도연)와 친형제와 다름 없던 사형 풍천(배수빈)을 배신하고 유백으로 이름 바꿔 살게 된 덕기는 지키지 못한 사랑에 아파해야 하는 캐릭터다.
덕기는 '협녀'의 또 다른 축을 이뤄 스토리에 힘을 싣기 때문에 그 손실은 더 커보인다. 박흥식 감독이 멜로에 공을 들였다고 강조한 지점이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무협 장르에 이렇다 할 업적을 세우지 못한 한국 영화계에서 새로운 시도로 도전한 데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또 오랜 시간 개봉을 기다리며 모든 이가 고통을 감내한 부분도 인정해야 한다.
고려 말,
jeigu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