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여배우임에도 들어오는 배역마다 참으로 독특하고, 또 숙제가 많아요. 연기를 위해 기타도 배우고, 피아노도 치고, 샹송도 부르고…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영역에 계속 도전하는데, 저 조차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지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해요.”
배우 예지원이 한복을 입었다. 연극 ‘홍도’에서 기구한 운명의 여인 홍도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TV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 라디오방송에까지, 제 스스로 편치 않은 한복을 자청해서 입은 예지원의 목표는 오직 하나 ‘홍도’의 홍보다.
‘홍도’가 장르설명에 있어 ‘연극’이라는 명칭 대신 ‘화류비련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홍도’는 1930년대 신파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현대적인 시각에서 재해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내용은 오라버니의 뒷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된 홍도가 명문가의 아들 광호와 만나 결혼을 한 뒤 벌어지는 비극적인 과정들을 그린 작품이다.
기생 출신이라는 이유로 시집살이를 살게 된 홍도는 시어머니와 시누이, 그리고 광호의 짝사랑녀인 혜숙의 음모로 인해, 광호가 북경으로 유학을 간 틈을 타 집에서 내쫓기게 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남편을 향한 절개를 잃지 않았던 홍도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오해로 인해 차갑게 변해버린 남편 광호의 시선뿐. 충격을 받은 홍도는 혜숙을 칼로 찔러 죽이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공부를 시킨 오라버니 손에 잡히고 만다.
“저는 ‘홍도’가 참 슬퍼요. 공연에 들어가기 전 감정을 빼기 위해 장난도 많이 치는데, 그럼에도 공연이 끝나고 나면 먹먹함에 눈물이 나요. 같은 여자가 봐도 홍도는 참으로 기막힌 운명의 소유자에요. 어떻게 이렇게 불쌍할 수 있을까. 연극을 하다보면 익숙해지는 것도 있는데, 이상하게이 작품은 할 때마다 슬퍼요.”
예지원은 홍도를 과거 어머니상에 비유를 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갈 곳이 없어서, 의지할 곳이 없어서 늘 참고 견뎠던 그 옛날의 어머니들과 같다고 말이다.
“요즘은 참 세상이 좋아져서, 누군가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여자들이 참 많아졌어요. 하지만 그 옛날 어머니들은 그러지 못했죠. 저희 어머니만 해도 어렸을 때 무용을 하셨는데, 더 공부하고 싶었음에도 집에서 반대해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하셨어요. 저희 어머니 뿐 아니라 그 시대는 그게 당연했고, 모두 다 그렇게 살았죠. 재능도 많고 공부도 하고 싶은데, 당시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시집가야지, 여자가 무슨 공부를 하냐’ 이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시대였는데, 홍도도 어쩔 도리가 있었겠나 싶어요.”
드라마와 영화, 바쁜 스케줄에서도 2014년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홍도’ 무대에 오른 이유는 고선웅 연출과의 인연이 컸다.
“드라마를 하고 있는 중에 고선웅 연출로 부터 ‘연극을 하자’고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단번에 ‘좋다’고 승낙했죠. 승낙하고 나서야 ‘스케줄을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원캐스팅을 하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더블로 가야만 했어요. 그럼에도 제가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고선웅 연출과 함께 작업을 하면서 ‘좋은 연기를 배울 수 있겠구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고선웅 연출과는 연극 ‘부활’로 처음 만났는데, 함께 작업을 하면서 배우로서 한층 성장하고 연기에 대해 자신감이 붙었다는 걸 느꼈거든요.”
‘홍도’는 고선웅 연출의 특징 중 하나인 ‘생략의 미’를 극대화 시킨 작품 중 하나이다. 무대는 극단적으로 심플하다. 1000석이 넘는 대극장 무대는 온통 하얀색이며, 무대 위에는 정사각형으로 된 무대단과 사람인(人) 모양으로 된 지붕형상만이 전부이다. 그 흔한 배우들의 라이브도 없다. 아무것도 없어 휑한 무대는 오로지 배우들의 목소리와 연기, 에너지로 가득 채울 뿐이다.
관객들은 낯선 무대에 팔짱을 끼고 경계를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극에 빠져드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른 바 ‘고선웅식’ 유머와 말장난은 관객들을 웃기고, 단순하지만 ‘홍도’가 전하는 강렬한 감성들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워낙 기대를 안 하셔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보시는 분들마다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제 지인들 중 어떤 분은 단순히 저와의 인연으로 할 수 없이 보러 오신 분들도 계신는데, 나갈 때 보면 다 울면서 나가세요. 대표적인 케이스로 가수 더원을 들 수 있는데, 더원이 제 남동생 친구거든요. 반 억지로 보러 왔다가 감동을 받았는지 공연장에서 엉엉 울더라고요. 워낙 울음소리가 커서 단번에 알겠더라고요. 나중에는 ‘홍도’ 회식 때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신해서 와서 노래를 불러주더라고요. 남동생 반응이요? 남동생 역시 감동을 받았는지 ‘최고’라고 하더라고요. ‘태어나서 누나를 처음으로 존경하게 됐어’라고 하는 거 있죠.(웃음)”
드라마 ‘프로듀사’가 끝나자마자 영화 촬영에 이어 ‘홍도’까지, 요즘 예지원의 스케쥴은 무척이나 바쁘다. 해야 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예지원은 이후에 출연하게 될 작품을 위해 현재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다. 그런 예지원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예지원은 “무용을 계속 해서 그런지 오히려 움직이지 않으면 더 힘들다”고 말했다.
“들어오는 배역마다 독특하고, 또 숙제가 많아요. 단 한 번도 긴장을 놓을 수 없고 그럴 때마다 체력을 요하는 경우가 늘어나죠. 어렸을 때 치다 만 피아노였는데 작품을 위해 쇼팽을 치는가 하면, 연극 ‘미드썸머’를 하면서 기타를 배우기도 했죠. 심지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샹송을 불렀더니 실제로 파리한국영화제서 샹송을 부르게 됐어요. 어쩜 이렇게 배울 것도 많고 배워야 하는 것인지. 어휴,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숙제가 많을까요? 연기하면서 많이 똑똑해지고 지적으로 변한 부분도 많아요. 각각의 영역들에서 배운 것들이 합쳐지면 무엇이 될까 저조차 궁금하다니까요.”
이러다가 배우가 아닌 종합예술인이 되는 거 아니냐 농담을 건넸더니, 예지원은 손사래를 치며 “나는 배우다”고 강조했다.
“예술인은 아니고 그냥 학도죠. 예술을, 그리고 예술가를 제가 좋아해요. 예술가 분들을 원체 좋아해서 많이 쫓아다녔고, 그러다보니 주위에 그런 분들이 많은 것뿐이에요. 배우는 평생 했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매체와 연극 무대에 대한 교류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거예요. 실제로 저를 보기 위해 ‘홍도’ 공연장을 찾아온 TV, 영화 쪽 관계자들이 작품을 보고 고 연출님을 보고 싶어 하시더라고요. 전 이런 교류들이 좋은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무대와 평생 가고 싶어요. 시장이 조금 더 커졌으면 좋겠어요.”
연극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던 예지원은 마지막 가는 길목까지 ‘홍도’에 대한 홍보를 잊지 않았다.
“관객들은 ‘홍도’를 보고 잠시 쉬셨으면 좋겠다. 이런 저런 생각 안 하고 머릿속을 재정비 하는 시간. 제가 연기를 하면서 그러거든요. 정말 좋은 작품이니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