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물론 시간이 걸리겠지만 십년이란 시간동안 다양한 역할을 맡은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요.”
배우 태인호에게는 내공이 느껴진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주연 작도 꽤 있지만, 단역으로 출연한 작품도 적지 않다. 데뷔 이래 단역이며, 조연, 주연 등 자신의 배역이나 작품 속 비중을 가리지 않고 다수의 작품에 얼굴을 내민 태인호는 tvN 드라마 ‘미생’에서 대중들의 시선을 받았다. 극 중 변요한을 힘들게 하는 성 대리 역으로 시청자들의 혈압지수를 높였지만, 그 만큼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느 회사에나 꼭 한 명 있을 법한 얄미운 상사 역을 실감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 디자인=이주영 |
영화 ‘하류인생’을 태인호의 데뷔작으로 꼽지만, ‘고수’(1997),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1999)에도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박지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 작품은 필모그래피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많은 작품에서 조용히 내공을 쌓았는지 느낄 수 있다.
그런 태인호가 살인마의 아들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도’는 부산 부근의 영도라는 섬을 배경으로, 연쇄살인마의 아들인 영도가, 사람들의 편견과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점점 변모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극 중 태인호는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요“라고 분통을 터트리는가 하면 조금씩 변모하는 모습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인다.
“힘들었던 것은 사투리에요. 사투리를 쓰지 않는 서울 토박이도 각각 자신 만의 말투가 있잖아요. 영도는 대사가 많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했지만 표현하기 쉽지 않았어요. 거친 욕도 있고(웃음). 영도는 눈빛이 중요한 인물이라 거기에 더 집중을 했어요.”
태인호는 극 중 강한 눈빛에서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표정으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영도라는 인물을 자연스럽게 나타냈다. 살기가 느껴지는 표정에서조차 애잔함이 묻어나니, 태인호가 아니라 진짜 살인마의 아들을 보는 듯하다.
극 중 미란(이상희 분)은 갑자기 영도를 찾아와 심장을 내 놓으라고 한다. 이 장면에 대해 태인호는 “사실 상대 배우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궁금했다. 심각하지만 현실적이지 않은 상황 아닌가. 감정이 확 와야 했다. ‘또 이러네’라는 표정으로 대꾸해야 됐지만 너무 가볍게 표현하면 웃길 것 같았다. 근데 정말 잘 해줘서 수월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나 말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 감정을 표현해 내기 위해 태인호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한테 ‘이제는 나한테 얘기해 주세요. 내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대사가 와 닿더라고요. 영도라는 인물이 의문을 가져 온 것을 끄집어내는 장면인데, 원래 대사가 길었어요. 감독에게 마음속 깊이 영도가 할 말을 만들어 보겠다고 해서 생각한 대사에요. 영도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 마디 내뱉을 때 영도로서 풀어지는 느낌이었어요.”
‘영도라면 어땠을까’라는 고민은 태인호의 눈빛에서도 느껴졌다. 눈을 깜박이지 않고 원망하듯
혹은 감정이 없는 듯 바라보는 시선이 특히 그랬다.
“눈을 안 깜박이는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눈을 깜박일 수 있는데 연기함에 있어서 영도라는 인물은 그렇게 눈을 깜박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을 것 같더라고요. 눈을 감는다는 것을 진다고 생각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연기적으로도 노력했어요.”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영도의 모습이지만, 친구나 아이를 만났을 때는 조금 달라진다. 예민할 수밖에 없는 감정에, 세상에 유일하게 퇴색하지 않은 영도 본색이 드러나는 듯 했다.
“친구 앞에서는 더 밝게 하려고 했어요. 영도는 어떨까 생각을 했는데, 출소를 하게 된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을 것 같더라고요. ‘이 친구한테는 피해를 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테고, 그런 친구를 만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요.”
태인호의 말을 듣자니 이미 영도, 그 자체 였다. 태인호는 “영도가 아이를 만날 때는 그가 겪어보지 못했던 본능을 느꼈을 것 같아요. 표현할 수 없고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감정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살인마의 아버지로 인해 안타까움을 자아낸 영도를 대체 불가능한 영도로 표현한 태인호. 그는 “실제 아버지는 무뚝뚝하세요. 어머니는 소녀 같으시고요”라고 말하고 웃었다.
“조카가 TV를 보다가 ‘미생’을 보고 저와 똑같은 사람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얼마나 웃기던지. TV나 스크린에서 나오는 저를 보면 아직도 재밌고 웃겨요. 제가 저를 정확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내가 저렇게 하고 있구나’ 하니까요.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 더 친숙하게 갈 수 있는 예능프로그램도 좋지만 아직은 더 연기하고 싶어요. 2년 정도 후에는 다시 연극도 하고 싶고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많은 인물을 만나보고 싶어요.”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