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설경구(47)도 연기가 안 되는,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날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특히 이렇다 할 대박 흥행이 없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하진 않을까. 간혹 쪽박도 찬 그다. 김일성 연기를 완벽하게 했지만, 영화 '나의 독재자'는 쪽박이었다. 그래도 이 영화를 통해 제22회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영화 부문 영화배우 대상 수상에 이어 제35회 황금촬영상 최우수주연남우상을 받았으니 괜찮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닐까.
"우리는 자신을 소모하는 직업이잖아요. 똑같은 것을 쓰기는 부끄러워요. '강철중'을 계속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게 연기에 대한 고민이죠. 화가들은 똑같은 것만 그려도 작품이 되는데 우린 아닙니다. 나이가 들수록 카드가 없어요."
설경구는 "'나의 독재자'도 목소리를 바꿔봤는데 어색했다"며 "그래도 다행히 잘 봐주셨다고 하더라. 뭘 바꿀 때는 엄청나게 두렵다. 그런 점에서 (여)진구가 제일 부럽다. 그 친구는 아주 많이 소비해도 되니까"라고 내심 부러워했다.
설경구는 영화 '서부전선'(감독 천성일)을 통해 여진구와 호흡을 맞췄다. 설경구의 딸과 여진구가 동갑이니 아버지뻘이다. "세대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고 웃는 설경구. 그는 '서부전선' 출연을 몇 차례 고사하다 합류했다. 단, 여진구가 캐스팅돼야 유효한 약속이었다.
앞서 여진구는 인터뷰에서 대선배 설경구를 보고 긴장했다고 했는데, 설경구에 따르면 그렇게 긴장하진 않은 것 같다.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의 호흡이 잘 맞았다는 게 읽힌다. 말을 주고받고 행동까지 이어지는 게 웃음을 준다. 둘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유치하고 어이없었을 작품이다. 영화에는 여진구의 애드리브까지 있었단다.
"진구가 감독이랑 짜고, 안 때려도 되는 걸 때렸더라고요. 전 몰랐죠. 때리면 맞는 줄 알고 제대로 맞았어요(웃음). 또 진구가 제가 "개~XX"라고 욕하는 게 재미있었는지 연습해 와서 스태프 앞에서 해 보이던데 다들 웃더라고요. 정감있는 욕이라 다행이네요. 하하."
남한군(설경구)와 북한군(여진구)가 전쟁에 중요한 비밀문서를 손에 쥐게 되면서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인 '서부전선'은 한국전쟁의 비극이 소재다. 하지만 영화 대부분은 웃음이 가득하다. 너무 가볍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설경구는 "홍보를 코미디라고 하고는 있지만, 휴먼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절대 가볍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남복과 영광을 절대 군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총과 수류탄도 쏘지 못하는 두 사람이지만 자기들 나름대로 진지했다. 곱씹으면 슬픈 이야기"라고 짚었다.
"솔직히 억지스러운 메시지이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전쟁은 이런 상처를 남긴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절하게 집에 가려고만 생각했던 두 사람이 서로가 걸림돌이 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웃음이라고 생각해요. 두 사람은 당연히 진지할 수밖에 없죠."
"나이 먹으면 편할 것 같지만 연기는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안 했던 걸 찾아다니죠. 똑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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