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김명민이 많이 두렵다. ‘사극 본좌’ 아니냐. 그런 분과 함께 연기하려니 힘이 많이 부족할 것 같다.”
배우 김명민을 향해 남긴 유아인의 말처럼 그는 누가 뭐래도 ‘사극 본좌’다. KBS2 ‘불멸의 이순신’으로 어마어마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이후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까지 흥행시키며 보증수표다운 면모를 뽐냈고, SBS 새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정도전 역까지 꿰찼다.
이뿐만 아니다. MBC ‘하얀거탑’ ‘베토벤 바이러스’ 등에서 열연을 펼치며 현대극에서도 강자임을 입증했다. 1996년 SBS 6기 공채탤런트로 연예계 데뷔 이후 오랜 무명을 견디고 ‘연기 본좌’로 굳건히 자리매김할 수 있었을까.
↑ 디자인=이주영 |
◇ '카이스트'
김명민이 배우로서 처음 이름을 알린 건 SBS ‘카이스트’에서였다. 이전까진 여러 작품에서 조·단역으로 등장했지만 이렇다 할 존재감을 남기지 못하다 ‘키이스트-현무의 로켓’에 나오며 시청자 눈도장을 받아냈다.
그는 극 중 1970년대 정부 지원 아래 로켓개발연구에 몰두하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버림받은 한 과학자의 아들 현무 역으로 출연해 그동안 쌓았던 연기력을 유감없이 분출했다. 대배우의 첫 발견이었다.
◇ '뜨거운 것이 좋아'
김명민은 ‘카이스트’ 이후 1년 만에 MBC ‘뜨거운 것이 좋아’ 주인공 역을 꿰찼다. 유호성, 명세빈 등과 호흡을 맞췄던 그는 성공과 야망에 집착하는 최진상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러나 시청률은 좋지 못했다. MBC 최대 히트작 ‘허준’ 후속을 편성된 탓인지 전작의 아우라에 가려져 제 빛을 내지 못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KBS2 주말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 동시 캐스팅됐으나 이 드라마 때문에 포기해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 '꽃보다 아름다워'
그로부터 4년 뒤, 김명민은 노희경 작가의 부름을 받았다. KBS2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개인투자자 장인철로 분해 한고은과 커플 호흡을 맞춘 것.
극 중 장인철은 미수(한고은 분)의 오빠를 우발적으로 살인해 멍에처럼 가슴에 지고 사는 인물이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한고은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 사진=SBS, MBC, KBS |
◇ '불멸의 이순신'
김명민 이름 석자를 제대로 쓴 건 누가 뭐래도 KBS1 ‘불멸의 이순신’이었다. 200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방송된 이 작품에서 그는 주인공 이순신 역을 맡아 시청률 30% 대를 돌파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와 ‘불멸의 이순신’의 만남은 극적이었다. 배우로서 삶에 대해 고민하다가 모든 걸 접고 외국으로 떠나려던 찰나 이순신 역으로 전성기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생애 최초 연기대상을 거머쥐게 됐다. ‘2005 KBS 연기대상’에서 영광의 트로피를 쥔 그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게 된 건 내 인생의 가장 큰영광이었다. 정신적 고통을 주더니 이렇게 큰 상을 준 이순신 장군은 역시 위대하다”며 “‘내가 최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겠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 '불량가족'
화려한 한해를 보낸 김명민의 차기작은 SBS ‘불량가족’이었다. 그는 카리스마로 다져진 이미지를 버리고 ‘불량건달’ 오달건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한창 주가를 달리던 터라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김명민은 마치 불량끼가 타고난 듯 오달건을 제대로 소화해내며 맛깔스러운 코믹 연기를 펼쳤다. 남상미와 달콤한 ‘케미(케미스트리 준말)’도 완성하며 로맨스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 '하얀 거탑'
2007년 1월은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겼다. MBC ‘하얀거탑’ 장준혁이란 마성의 인물에 ‘빙의’돼 천재 외과의사의 내적 성장기를 감동적으로 안방극장에 전달했다.
시청률도 폭발했다. 시청률 20.8%를 기록하며 ‘하얀거탑’ 매니아들을 양산해냈다. 이 작품으로 김명민은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최우수남자연기상,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최우수 남자연기자상 등을 수상했다. MBC 연기대상에서도 남자 최우수상에 호명됐지만, 대상 수상엔 실패해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 '베토벤 바이러스'
2008년 MBC ‘베토벤 바이러스’는 그의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 영광을 안긴다. 예민한 천재 지휘자 강마에 역을 맡아 전국을 ‘베토벤’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말끝마다 나온 “똥덩어리”라는 대사는 유행어가 될 정도였다.
장근석, 이지아 등 청춘스타와의 호흡도 화제였다. 그는 개성 강한 스타들 사이에서도 날카롭게 자른 눈썹, 독특한 헤어스타일, 남다른 말투 등으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명품’ 배우의 이름값을 해냈다.
◇ '드라마의 제왕'
그의 필모그래피 흥행 성적엔 고저가 있는 것일까. 다음 행보는 아쉽게도 흥행이 불발됐다. SBS ‘드라마의 제왕’에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흥행불패 마이더스 손 드라마 외주제작사계의 천재 경영자 앤서니 김으로 열연을 펼쳤지만 정작 실제 시청률 싸움에선 MBC ‘마의’와 KBS2 ‘학교2013’이라는 강력한 라이벌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다.
드라마 시청률 지상주의를 맹렬히 꼬집으며 드라마 제작 현실 전반을 생생하게 담아냈지만 김명민과 제작진의 노력은 안방극장에 통하지 않았다. 결국 지상파3사 같은 시간대 드라마 중 꼴찌로 찜찜한 안녕을 고해야 했다.
◇ '개과천선'
카이스트 재학생, 천재 외과의사, 천재지휘자 등 주로 ‘천재’ 전문직 캐릭터를 맡은 그가 MBC ‘개과천선’에선 천재 변호사로 분했다. 거대 로펌 에이스 변호사 김석주로 또 한 번의 장르물에 도전한 것이다.
극 중 속물변호사 김석주는 우연한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 법과 정의를 우선하는 따뜻한 인물로 변화하면서 안방극장에 재미와 감동을 전달했다. 비록 성적은 저조했지만 사회고발 메시지와 휴머니티를 담은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받았다.
◇ ‘육룡이 나르샤’
끊임없이 변신하는 김명민의 다음 선택은 위화도 회군의 주인공 정도전이다. 조선 건국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 역사적 인물을 얼마나 생생하고 묵직하게 그려낼지가 이번 변신의 관전포인트다.
물론 김명민이 뛰어넘어야 할 산도 있다. 전작 ‘불멸의 이순신’에서 보여준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어떻게 뛰어넘을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그는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이순신 아우라를 뛰어넘을 자신이 없다. 다만 대본 속 입체적 인물을 제대로 연기하면 (시청자가)그런 생각조차 못하게 되지 않을까”라고 자신감을 보인 바 있다. 근거있는 자신감이 안방극장에 통할지 관심이 쏠린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