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고 역할이었어요. 오디션 기회가 온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이렇게 함께 할 수 있다니 뭐라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요즘이에요. 연습 때도 즐거웠는데, 공연 역시 잘 해내고 하는 것 같아서 기뻐요.”
걸그룹 천상지희 때의 린아를 생각하던 이들이라면, 무대 위 뮤지컬 배우로서의 린아를 보고 놀랄 수도 있다. 걸그룹 출신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기 미안할 정도로, 노래와 연기 등의 기본기가 탄탄하며,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가 기대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린아의 2015년은 무척이나 바쁘다. 많은 배우들 사이 꿈의 무대로 불리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2015년의 시작을 알리더니, 뒤이어 ‘맨 오브 라만차’에 합류, 작품이 끝나기도 전에 ‘오케피’의 초연 배우로 이름까지 올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뮤지컬 데뷔 5년차인 린아는 어느덧 뮤지컬 배우로서 활짝 피어나 승승장구 중인 셈이다.
현재 린아는 ‘맨 오브 라만차’에서 꿈도 희망도 없는 천하디 천한 여인에서, 돈키호테로 인해 고귀한 레이디 둘시네아가 돼 살아가는 알돈자 역으로 열연 중이다. 알돈자는 김선영, 윤공주, 조정은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거쳐 갔던 역할 중 하나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부담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그동안 무척 멋진 여배우들께서 하셨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을까싶은 우려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조차도 생소해요. ‘누가 그 역할을 했더라’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제가 잘 하는 거니까요. 그렇기에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맨 오브 라만차’에서 알돈자는 일반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여주인공에서는 보기 힘든 ‘억척’이 있다. “가장 큰 죄가 뭔 줄 알아? 태어난 죄. 그것 때문에 이렇게 벌 받고 사는 거야. 날 짓밟고 가는건 참을 수 있으니 꿈꾸게 하지 좀 마”라는 대사처럼 알돈자의 삶은 거칠고 힘들기만 하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가장 안타깝고 슬픈 넘버 중 하나로 꼽히는 ‘알돈자’에서 알돈자는 “똥통에서 태어나 여기서 죽겠지 따먹기 쉬운 여자 내가 당신 눈에 창녀처럼 안 보인다면 조금만 더 써봐 원하는 대로 다 해줄게”라며 밑바닥과 같은 자신의 인생을 조소한다.
사람들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닫고 자존감 없이 아득바득 살아가던 알돈자였지만 자신을 향해 둘시네아라고 부르며 고귀한 레이디 대접을 대해주는 돈키호테를 만나며 자신도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고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게 된다. 극의 말미 자신은 알돈자가 아닌 둘시네아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가슴 찡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알돈자를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누구든 사랑받을 자격은 있다’는 것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귀한 사람이고, 알돈자가 둘시네아가 된 것처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존귀한 존재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니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 사진=오디컴퍼니 |
알돈자는 여배우에게 있어 무척이나 어려운 역할이다. 수준 높은 가창력도 요하지만, 그에 앞서 마을 남자들에게 겁탈을 당하는 신이 있기 때문이다. 관객들도 보고 놀랄 정도로 수위가 높다. 알돈자를 연기하는 배우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몸에 상처도 나지만, 그에 앞서 정신적인 면에서도 쉽지 않다.
“예전에 엄마와 함께 ‘맨 오브 라만차’를 보러 갔었어요. 공연을 보고 당시 엄마가 ‘저 여배우는 정말 힘들겠다’고 말을 했었죠. 그만큼 힘들어 보였고, 그래서 이 역을 한다고 했을 때 너무 힘들겠다 싶었죠. 실제로도 힘들었어요. 정신적인 것도 그렇지만 맨바닥에 몸을 쓰러지고 육체적인 점에서도 정말 아팠죠. 지금은 익숙했지만 한동안은 계속 멍이었고, 초반에는 팔꿈치 인대가 염증이 생겨 한의원도 다녔어요. 그래도 처음에는 힘으로 하는 부분도 컸는데 지금은 요령을 많이 익혀서, 지금은 안무처럼 이해하고 있어요. 이건 사담이기는 한데, 엄마가 ‘맨 오브 라만차’ 보러 오셨거든요. 잘 봤다고 하시면서도 ‘누가 내 딸을 힘들게 하니’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알돈자는 노래 뿐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기력까지 뒷받침이 돼야 한다. 린아는 알돈자를 연기하면서 감정선에 맞는 연기를 가미해야 했다면서 어려웠던 점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알돈자의 노래들은 연기에 가까운 노래들이 많아요. 그동안 음정과 리듬을 맞추고 악보에 있는 대로 연습을 해 왔는데, 알돈자는 거기에다가 감정선에 맞는 연기를 가미해야 했죠. 처음에는 악보대로 연습을 했지만, 뒤로 갈수록 노래가 아닌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해요. 어려워요. 감정을 담아서 하면 힘들어 죽을 것 같아서 감정을 놓고 노래를 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들어요. 노래만 잘 부르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어렵고 그렇기에 더 고민하고 노력하는 부분도 많아요.”
2002년, 19살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린아는 2015년 현재 뮤지컬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의 막을 활짝 열었다. 가수로서 린아는 여러 가지 부침이 많았다. 뛰어난 가창력은 인정받았지만, 천상지희로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전 불운이 겹치면서 활동을 마무리 해야만 했다. 공백기 동안 우울한 감정에 힘들어 했던 린아에게 다가온 것은 뮤지컬이었다. 그렇게 뮤지컬 배우로서 발을 내딛은 린아에게 무대는 삶의 활력이자 새로운 비전이 돼 주었다.
“옛날에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우울함도 있었고. 그 때는 누가 칭찬을 해도 그게 잘 안 들렸어요. 이 길이 내게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많았고요. 그런 저에게 뮤지컬은 새 길을 열어주었어요.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조금 실력을 인정받고 칭찬을 받으니 자신감도 붙었고, 생각한 것보다 나를 귀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는 인복이 있는 것 같아요.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많죠. 여전히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도 많고 그때마다 잘 될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꾸준히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늘 옆에 있었어요. 매니저 오빠도 그렇고 지금의 남편도 그렇고. 사람들의 응원에 다시 한 번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고, 덕분에 한 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사진=오디컴퍼니 |
린아가 뮤지컬을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회사의 도움이 컸다. 다시 일어나고자 했던 린아에게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처음으로 알려준 곳이 회사였던 것이다. 추천을 받아 ‘젊음의 행진’의 오디션을 보게 된 린아는 무대에 오르면서 그 맛을 보게 됐고, 이후 자신의 실력을 차근차근 쌓으며 뮤지컬에 도전해 나갔다.
“2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던 적이 있어요. 그때는 일을 하기 싫었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만 싶었죠. 그렇게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나니 그제야 다시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지금은 회사를 떠났지만 당시 매니저 오빠가 ‘젊음의 행진’라는 뮤지컬을 추천해 주었고, 오디션을 보고 난 후 무대에 올랐는데 즐겁더라고요. 첫 작품이 좋았던 것 같아요. 넘버들이 가요라서 노래를 하는 것에 부담도 없었기에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청춘의 행진’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린아는 당장 대형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작품을 선택해 나갔다. 매 작품마다 오디션을 거쳤으며, 이를 통해 하나씩 단계를 오르면서 성장해 나갔다. 린아는 “만약 ‘젊은의 행진’을 하고 바로 ‘맨 오브 라만차’를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것”이라며 무대가 좋은 스승이 돼 주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성량도 그렇고 발성이라든지 가창력도 부족했어요. 작품을 하면 할수록 학년이 올라가는 것 같아요.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다 보니 듣는 귀도 좋아지고, 덕분에 제 수준도 같이 올라갔죠. ‘산 넘어 산’이라고 ‘지킬 앤 하이드’ 할 때 정말 어려웠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어려운 알돈자가 왔어요. 그래도 덕분에 실력이 늘었고, 더 어려운 것들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죠. ‘차근차근’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참 뿌듯해요. 돌이켜 보면 힘들었던 시간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귀한 시간이었죠. 가수를 했기에 뮤지컬을 할 수 있었고, 뮤지컬을 하면서 연기를 하는 등 물꼬가 트이듯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됐죠. 모든 과정들을 차근차근 걸어온 제가 가끔 대견하기도 해요.”
뮤지컬 배우보다는 천상지희의 멤버로 잘 알려진 린아는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오디션을 보며 그 문을 두드리고 있다. “작품 선택을 하는 수준은 아니고 기회가 주어지면 잡을 뿐”이라는 린아의 말처럼 때로는 자신이 지원한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린아는 포기하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린아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느꼈던 것은 바로 어려운 시기를 지나온 이들에게서 볼 수 있는 느긋함과 확고한 신념이었다.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아는 이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로움을 장착한 린아는 지금보다 앞으로 걸어나 갈 길이 더욱 기대되고 궁금해지는 배우임에 틀림없었다.
“계속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연기하고 싶어요. 애를 낳거나 나이가 들어서도 뮤지컬 배우로서 활동하고 싶어요. 아직 하고 싶은 작품들이 무척이나 많아요. 욕심을 부린다면 ‘몬테크리스토’도 하고 싶고 ‘시카고’ 무대도 오르고 싶어요. 지금의 목표라고 할까요.(웃음)”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