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박주연 기자]
“외모지상주의? 못 생겨야만 평등한 건가요?”
드라마 속 못생긴 여자들이 결국 예뻐져 사랑을 이루는 게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한다고요? 그런 시선을 늘 유지하기도 불편하겠어요. ‘그녀는 예뻤다’나 ‘오 마이 비너스’ 여주인공들이 못생기고 뚱뚱할 땐 만족해하다가 조금이라도 예뻐질 기미가 보이니 ‘그때가 더 아름답다’고요? 편협한 시선을 가진 건 당신 아닌가요?
여주인공에 늘 현실을 반영하라고 하죠? tvN ‘막돼먹은 영애씨’ 속 영애(김현숙 분)처럼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여주인공들이 더 리얼리티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곤 하잖아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에요. 여느 여배우처럼 늘씬하고 예쁜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얼마나 존재하겠어요? ‘영애’처럼 평범하게 생기고 드라마틱한 러브라인 없이 잔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겠죠.
그러나 우린 여기에서 내러티브를 주목해야할 필요성이 있어요. ‘그녀는 예뻤다’ 혜진(황정음 분)이 못생긴 외모와 열등감으로 출발해 중반 이후 감쪽같이 예뻐진다고 해서 남자주인공인 성준(박서준 분)이 사랑에 빠진 건 아니거든요. 또 다른 ‘혜진앓이’ 신혁(최시원 분) 역시 못생겼지만 발랄하고 긍정적인 매력의 혜진에게 애초부터 마음을 빼앗겼고요.
‘오 마이 비너스’ 속 주은(신민아 분)도 앞으로 다이어트로 환골탈태를 예고했죠. 벌써부터 ‘결국 예뻐야만 하는구나’라고 탄식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은의 다이어트를 도와주면서 영호(소지섭 분)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주목해야죠. 미인이 된 이후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다이어트를 하는 과정에서 티격태격하다 마음을 주고 받을 거라는 건 불보 듯 뻔하잖아요? 이들 드라마는 외모지상주의를 부추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면을 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겁니다.
오히려 여주인공들이 예뻐지는 건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선물이에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미인이 되고 싶은 본능’을 이들이 예뻐지는 과정에서 대리만족하는 거죠. 즉 이런 설정은 부가적인 서비스라 굳이 드라마에서 뺀다고 해도 두 남녀의 사랑이 이뤄지는 것엔 큰 영향이 없다는 거죠. 실례로 ‘그녀는 예뻤다’ 엔딩은 다시 못생긴 혜진으로 돌아와 성준과 결혼하는 해피엔딩을 맞았잖아요?
외모지상주의, 물론 지양해야할 사회적 편견이죠. 그러나 너무 편협하게 이런 시선으로만 모든 걸 바라보는 것도 옳지 않아요. 자신이 오히려 편견으로 예쁜 여자들을 역차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뒤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 사진=MBC, KBS |
◇ 결국은 예뻐야 장땡 아니야?
못생긴 여자주인공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지는 이전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이는 화려하게 예쁘지 않아도 드라마 속에서처럼 멋진 사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동경에 대한 지지기도 했죠. 문제는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이 못생긴 여주인공이 결국엔 예뻐지는 것과 동시에 사랑을 쟁취한다는 것입니다.
못생긴 여주인공들은 첫 등장부터 작정하고 망가집니다. 쓸데없이 용감하고 때로는 눈치도 없습니다. 주변 상황은 훨씬 더 절망적입니다.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거나(‘그녀는 예뻤다’) 오랜 연인에게 차이거나(‘오 마이 비너스’) 배우자가 외도(‘미녀의 탄생’)까지 합니다. 화려한 변신을 위한 극적인 대비를 위한 구조적인 장치라고 한들, 이 모든 것이 결국 못생긴 여주인공에게 국한된 설정이라는 건 씁쓸함을 남기죠.
최근 방영 중인 ‘오 마이 비너스’에서는 이와 같은 설정이 더욱 두드러져 있습니다. 퀸카였지만 살이 찐 주은(신민아 분)과 뚱뚱했지만 날씬해진 수진(유인영 분)의 전세역전이 교차되는 장면에서 드라마는 묘하게 패자와 승자의 구도를 강조합니다. 여기에 이별을 통보하며 “넌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주은아”라는 연인 우식(정겨운 분)의 대사는 뿌리 깊은 외모지상주의의 정점을 찍습니다. 엘리트 변호사 주은이, 정작 잃은 거라곤 외모 하나뿐인데 말이죠.
그래서 결국 이들은 사랑을 위해 예뻐지기로 결심합니다. 초반에는 못생긴 여주인공의 짠한 고군분투가 그려졌다면, 외모 변신을 한 이후에는 본격적인 로맨스가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은 상당히 예민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연애도 결국은 예뻐져야만 가능한가, 하는 외모지상주의의 본질적인 의문과 함께 시청자들에게 미묘한 불쾌함이나 박탈감을 안길 수 있기 때문이죠.
여주인공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으로 내적 아름다움을 강조해 호평 받은 ‘그녀는 예뻤다’ 또한 결국 고백이나 애정신 등 로맨스의 결정적인 장면들이 여주인공이 예뻐진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딜레마를 남겼습니다. 극 초반, 보는 이들이 안쓰러울 정도로 유쾌했던 짹슨의 모습도, 극의 중후반부터는 완전히 사라지고 결국 예쁜 여주인공만 남았죠.
결론은 예쁘거나 혹은 예뻐진 여주인공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는 겁니다. 중요한 건 내면이기에 예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드라마의 무수한 메시지는 결국 외모지상주의의 역차별 발언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다 필요 없고 예뻐야 장땡, 이라는 허탈한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하죠. 진정한 뷰티인사드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박주연 기자 blindz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