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이던 모습은 오간 데 없다. 송일국과 이종혁이 배우라는 본연의 직업으로 온전히 돌아왔다. 그것도 소름 끼치는 악역이다.
송일국은 영화 '타투'(감독 이서)에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로, 이종혁은 '파일: 4022일의 사육'(감독 박용집)에서 소시오패스 범죄자로 관객을 살 떨리게 한다. 이들의 악랄한 모습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팬들이 많을 것 같다.
'타투', 삼둥이 아빠 송일국
영화 '타투'는 난폭하게 질주한다. 시종 어두운 길을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는 인상이다. 질끈 눈 감게 하는 장면도 꽤 된다.
그 중심에 세쌍둥이 아빠 송일국이 있다. 인자하고 점잖았던 그의 변신이 너무도 섬뜩하다. 연쇄살인범 역할로 관객의 숨을 멎게 할 정도다. 피가 낭자한 스크린에 아찔하고 어지럽다. 정사신은 더 그렇다. 정사신 후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죽어 나간다.
타투이스트 수나(윤주희)가 과거 자신을 처절하게 짓밟은 남자를 향해 시꺼먼 독기를 품고 계획을 시작하는 상황 자체는 독특하다. '타투 잉크에 뱀의 독을 넣어 살인한다'는 계획. 뱀의 독이 마약 성분 같은 효과를 발휘, 뇌 신경을 자극해 살인본능을 자극한다는 상상력이 온전히 녹아났다. 판타지이긴 하지만 섬뜩함 그 자체다.
어린 시절 지순(송일국)으로부터 몹쓸 짓을 당한 수나는 의사가 아닌 타투이스트가 됐다. 매일 밤 클럽에서 과거 자신을 범했던, 똑같은 흉터의 남자를 찾아 이 살인 계획으로 복수하려 하지만 그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수나에게 꿰매기 문신을 요구하는 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다. 남자의 거처에서 수나는 그가 자신이 찾던 남자임을 알고 오랫동안 계획한 복수를 시도한다. 하지만 남자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살인 본색을 드러내고 "경찰에게 신고하고 싶으면 하라"고 오히려 도발한다.
스릴러 장르인 '타투'는 쫀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긴박감 넘치게 관객을 몰아붙일 수 있는 대결 구도가 없다. 살인 장면에만 오히려 더 공을 들인 인상이 강하다. 자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악의 순환관계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말과는 달리 윤주희가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인물인데 그리 부각되지 않는 것도 아쉽다. 대결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고, 그렇다고 수나의 복수심이 철저히 표현되지도 않았다.
주인공들의 과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려 노력했으나 그마저도 완벽하게 구현되진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는다. 92분. 청소년 관람불가. 10일 개봉.
'파일: 4022일의 사육', 준수 아빠 이종혁
영화 '파일: 4022일의 사육'의 이종혁은 '타투'의 송일국처럼 잔혹하게 보이진 않는다. 피비린내 나는 장면들이 영화에서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사육하는 내용이니, 어떤 면에서 그는 더 섬뜩하고 잔인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무시 받길 싫어하는 자존감 가득한 서울대 출신의 유전공학박사 한동민(이종혁). 그는 '환경 개진을 통한 후천적 성질 변환'이라는 실험을 인간에게 시도한다. 11년 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소녀 미수(하연주)가 두 얼굴의 동민에게 고통받고 있었다. 하지만 고통은 어느새 무뎌지고, 미수는 동민에게 동화됐다. 오랜 기간 사육당한 미수의 텅 빈 눈동자가 애처롭다.
사회부 기자가 된 수경(강별)이 어린 시절 절친이었으나 갑자기 사라졌던 미수를 우연히 만나고, 미수에게는 희망이 싹 트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험의 강도는 높아지고, 미수는 동민을 이제 전적으로 믿고 따르게 된다.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지워진 듯하다. 동민은 미수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수경을 속인다. 수경은 예전과 달라진 미수를 이상하게 바라보면서도 '촉'을 세우진 않는다.
신선하고 소름 끼치는 소재의 이야기는 끝까지 몰입감을 높이긴 한다. 실종돼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데 '혹시?'라는 생각을 들게 해 소름 끼친다. 하지만 극 전개가 오밀조밀하진 않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음새도 어색하고, 미수가 납치되는 과정과 수경의 선배인 지방지 기자(김형범)의 '촉'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등 작위적인 상황
촬영 기간과 준비 기간이 짧은 건 더 아쉽다. 배우들의 연기도 어색해 보인다. 갈고 닦았으면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준수 아빠' 이미지를 벗고 싶다는 이종혁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듯하다. 이종혁의 야비한 표정과 눈빛부터 마음에 안 든다. 92분. 청소년 관람불가.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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