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룡이 나르샤 정도전, 실록서도 1388번 언급된 조선의 제갈공명 그의 업적을 살피다
↑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사진=SBS |
지난 25일 방송된 육룡이 나르샤에서 정도전이 천출 출신으로 관직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 드라마가 끝난데 대한 시청자들의 안타까움이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에서 정도전이 천출이냐 아니냐는 아직 확실시 되지 않고 있습니다. 행장과 족보에 따르면 어머니는 천출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실록에는 천출로 기록되어 있어 천출로 알려진 것이 일반적인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도전의 업적은 가히 남다릅니다.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기반을 다지고 태조 3년 '조선경국전'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며 제도적 기틀을 확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정도전이 언급된 횟수는 1388회에 달하며 고종대와 순종대까지 언급됩니다.
정도전이 처음 언급된 시점은 태조실록 1권입니다.
"태조가 지용기, 정몽주, 정도전과 흥국사에 모여 병위를 크게 벌여 두고 논하길 '우와 창은 본디 왕씨가 아니므로 봉사하게 할 수가 없는데, 또 천자의 명령까지 있으니 마땅히 거짓 임금을 폐하고 참임금을 세워야 할 것이다. 정창군 요는 신왕의 7대 손자로서 족속이 가장 가까우니 마땅히 세워야 할 것이다'"란 구절입니다.
이는 지난 주 '육룡이 나르샤'에서 전개 됐던 내용으로 왕요의 공민왕 왕립 과정이 실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리를 주장하는 듯한 정도전은 사실 성리학자였습니다.
젊은 시절 정도전은 '맹자'를 탐독하면서 유교적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성혁명도 가능하다는 명분을 얻었으며 고려왕조를 전복하고 민본 중심의 유교적 이상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국 후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는 문제에 관여하다
비록 정도전의 성리학적 이상정치가 조선조를 완벽하게 다스리지는 못했지만 그가 추구한 성리학적 이념과 제도들은 500년 역사의 산물로 고스란히 남아있어 그 의미를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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