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은 분명 남자인데 자신을 여자로 믿고 있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 그 감정을 따라가기조차 낯설다. 감히 상상할 수 없으리라.
핫한 할리우드 스타 에디 레드메인의 여장한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진 않으나 묘한 매력에 빠져들 만하다. 화면 안 그를 바라보는 남성 관객들의 시선도 사뭇 다르지 않을 듯하다.
여성이라 믿는 에디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짓는다. 똑같은 미소가 전혀 다르게 와 닿는다. 소름 돋는 이도 있겠지만,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이도 많을 것 같다. 에디 레드메인의 연기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덴마크의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가 릴리 엘베로의 삶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대니쉬 걸'이다. 세계 최초 성전환 수술을 한 남자로 알려진 아이나르 베게너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어여쁜 화가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와 6년 전 결혼해 행복한 삶을 보내고 화가로서도 인정받는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 어느 날, 게르다의 아름다운 발레리나 모델 울라(엠버 허드)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에이나르는 대역을 부탁하는 아내를 위해 스타킹과 구두를 싣는다. 이상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에이나르는 거울 속 자신에게서 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이후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세상과 맞닥뜨린다.
울라로부터 무도회 초대를 받은 게르다는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권하고, 이곳에서 만난 헨릭(벤 위쇼)은 릴리로 변한 에이나르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한다. 두 사람은 키스까지 나눈다. 이 장면을 목격한 게르다는 당황스러워한다. 본성을 깨친 남편 탓 아내는 아프고 슬프다. 남편 역시 가슴 아프긴 하지만 이상한 도취감이 온몸을 감싼다. 걷잡을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을 부추긴 죄책감과 동시에,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으나 여장을 한 남편의 초상화가 좋은 반응을 얻자 혼란스럽기만 하다.
'대니쉬 걸'은 에디 레드메인과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 연기가 특히 돋보인다. 시종 불안에 떨다 여자가 됐을 때 편안해지는 에디 레드메인의 눈빛과 미소가 압권이다. 세심한 말투와 손 동작 하나하나까지 릴리로 완벽하게 동화된 연기를 선사한다. 전신 거울 앞에서 옷을 벗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몸을 살펴보는 신은 충격을 안길 정도다.
스웨덴 출신의 신인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존재감도 엄청나다. 화가로서의 열망과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남편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감정 표현을 오롯이 소화했다.
톰 후퍼 감독은 두 사람의 삶을 적정한 선을 지키며 스크린에 담아냈다. 대담하고 놀라운 러브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성(性)을 탐하지 않은 연출도 좋다. 동성애적 욕망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몸은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본성을 찾으려는 치열한 삶의 과정으로 표현됐다. 에이나르 아니,
지난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따낸 에디 레드메인은 올해도 수상 후보다.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에서 엄청난 연기를 선보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안심하진 못할 듯싶다. 119분. 청소년관람불가.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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