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나쁜 놈 하정우, 최고상 황금종려상 박찬욱을 기대해
영화 '암살' 홍보차 만났던 배우 하정우는 영화 '아가씨'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백작은 완전 나쁜 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 이상의 언급은 조심스러워했지만, 그간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이미지 변신이 기대됐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한 '아가씨'에서 그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김민희)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을 맡았다. 도둑의 딸로 태어나 장물아비에게 길러진 고아 숙희(김태리)와 장단을 맞춰 아가씨를 속이려 든다.
그간 하정우는 소름 끼치는 눈빛 연기를 선보인 '추격자'를 제외하고 악역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사랑을 갈구하는 찌질남의 간절함('러브픽션')으로, 민의를 대변했던 민머리의 무식함('군도')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음유시인 하와이 피스톨의 분노('암살')로, 아비의 자식을 향한 사랑과 미움('허삼관')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하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내를 찾고자, 또 삶을 향한 간절한 눈빛이 일품인 영화 '황해'도 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도 그렇게 나쁜 놈으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제대로 나쁜 놈이 될 전망이다. 어수룩한 듯 치밀하며 날카롭지만 흐리멍덩한 눈빛의 백작이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하정우는 2일 제작보고회에서 "백작이라는 친구가 영화 안에서 하는 짓들을 보면 놀랍다. 백작의 매력이 팬들에게 긍정적으로 보일지 의문"이라고 우려스러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제 69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올해 한국영화 기대작 중 한편인 영화 '아가씨'는 백작의 제안을 받고 저택에 들어간 하녀 숙희도 중심인물이다. 신인배우 김태리는 김민희와 대부분의 호흡을 맞추며 연기 대결을 펼친다.
아름다움 속에 사연을 감춘 아가씨는 모두의 욕망의 대상이 되어 곧 깨질 듯 위태로워 보이지만, 속내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투박하고 당돌한 성격의 하녀 숙희는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되어 보호받는 아가씨와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날 것의 생생한 매력을 발산한다.
두 사람은 강도 높은 베드신도 소화했다. 박찬욱 감독이 캐스팅할 때 "노출 수위가 최고 수준이며 협의는 없다"고 못을 박기도 했기에 여배우들이 펼치는 동성 베드신에도 관심이 높다. 특히 김태리는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었기에 그의 연기력에 기대가 쏠린다. 김민희는 '화차'와 '연애의 온도'로 이전과는 다른 연기력을 선보이며 물이 오를 대로 올랐다.
조진웅도 외골수적이고 히스테릭한 인물인, 아가씨의 후견인을 표현하기 위해 18kg을 감량하고 노인 분장을 감행했다. 걸음걸이와 앉는 자세, 목소리까지 바꾸며 강렬한 이미지를 탄생시켰다. 드라마 '시그널'의 멋진 재한 선배는 금방 잊힐 정도로 강렬한 변신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도 기대감을 높인다. 15년 동안 감금된 남자('올드보이'), 살인 혐의로 복역 후 복수를 꿈꾸는 여자('친절한 금자씨'), 뱀파이어가 된 신부('박쥐') 등 잊을 수 없는 독보적 캐릭터들을 창조해 온 박 감독이 이번에는 엇갈린 목적과 비밀, 사랑과 욕망이 충돌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캐릭터들도 매혹적인 스토리를 완성해냈다. '올드보이' '박쥐'에 이어 세 번째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하는 점도 놀랍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은 전 세계 영화에서 20편 남짓한 영화가 진출하니 문턱은 무척이나 높다.
박 감독은 제작보고회에서 "칸 같은 영화제는 찜찜하고 모호하며 뭔가 남아있는 걸 좋아하는데 우리 영화는 해피엔딩이고 모호한 구석 없는 후련한 영화"라며 "아기자기한 영화이고 예술영화들이 모이는 영화제에 어울릴까에 대해 의문이 들 정도로 명쾌한 영화다. 경쟁 부문에 초청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가게 됐다.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배우들 모두가 상을 받고도 남을 연기를 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감독이 어떻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설 '핑거스미스'를 영화화했을지 관객들은 너무나 궁금할 것 같다. 개봉이 한 달이나 남은 게 야속하게 느껴질 만하다. 박 감독이 말한 "해피엔딩"의 의미는 보는 관점에 따라, "아기자기하다"는 의미는 다양한 배우를 보는 매력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과거 한 관객과의대화 행사에서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는데 한국 최초로 세계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지 못해 아쉽지
덧붙이자면, '핑거스미스'를 아직 안 읽은 독자라면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읽는 게 평균적으로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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