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하녀 숙희 役
신방과 출신, 대학로 극단에서 연기 시작
일단 저지르고 보는 당돌한 숙녀, 1500대 1을 뚫다
"이제 오디션 기회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배우 김태리(26)는 1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6월1일 개봉)의 주인공이 됐다. 신인배우는 김민희와 함께 '아가씨'의 중심축을 이뤘다.
시작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었다. "사실 오디션 부담이 전혀 없었어요. 주눅 들지 않고 오디션 볼 수 있었던 것도 (손가락을 펴 보이며) 요만큼도 기대를 안 해서 편하게 할 수 있었어요. 저 말고 다른 배우들이 물망에 올라 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일까? 김태리는 박 감독을 만나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 돌발 발언을 했다. "감독님한테 '감독님 어차피 저랑 하시지 않을 거잖아요'라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감독님이 '아니, 나는 너랑 할 건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시작됐어요.(웃음) 오디션 보러 여기저기 다니고 있는데 박찬욱 감독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할 수 있게 됐죠."
가족은 어떻게 설득했고, 친구들에게는 어떻게 말했을까? "솔직히 제가 좀 못된 것 같아요. 가족들을 설득할 건 없었죠. 참여하게 된 다음에 통보했거든요. 제가 저질러 버리는 캐릭터예요. 친구들은 '잘됐다'고 하기도 하고, '괜찮겠냐?'고 하기도 했죠. 전 할머니가 가장 걱정돼요. 독실한 기독교이신데 단체 관람으로 교회분들과 가시겠대요. 창피한데 따로따로 보시지. 보고 나서는 교회 가서 어떻게 말씀하실지도 궁금해요."
김태리는 "그래도 영화가 동성애에만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 같지 않아 좋았다"며 "한 편의 잘 짜인 이야기로 느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어떤 편견은 없다. 내가 이런 사랑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따질 정도도 아니고, 입장도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태리는 정사신과 감정 연기의 어려움도 토로했으나 "웃는 연기가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너털웃음" 표현이 특히 그랬다. 박 감독으로부터 'OK' 사인을 받기 가장 어려웠다. "나 연기해요"라는 표정이라서 많은 부분 삭제됐다. 후시 녹음을 했어도 건질 게 별로 없었다. "감독님이 '웃음이 그게 뭐냐?'고 하시더라고요. 잘 안 돼서 결국 삭제된 부분이 많아요. 헤헤."
김태리는 2012년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반 즈음에 대학로 극단 이루에 들어가 막내가 됐다. 동아리에서 즐겼던 연극을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전 낙천적으로, 막~ 살아요(웃음). 돈 없으면 곧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아니면 말고요. 내가 너무 하고 싶고, 이만큼 하고 싶은 건 연기가 처음이었어요. 2014년 극단 활동을 하다가 소속사를 만났고, 이렇게 '아가씨'의 일원도 됐죠."
신인에게 박 감독의 작품은 향후 행보에 도움이 될까?
김태리는 "연기적인 면에서 부담감은 있겠지만, 오디션을 볼 기회는 더 많아지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jeigu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