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을 이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는 새라 워터스의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했다. 소설처럼 영화도 3부작으로 나눴지만, 2부 중반부터 소설과는 전혀 다른 길을 택한다. 소설의 중반 이후 이야기에 중요한 설정인 '출생의 비밀' 등 다른 이야기가 많은데 박 감독은 과감히 뺐다. 나름대로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니 조금은 고민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1초도 고민하지 않았다. 박 감독은 "소설로는 자연스러운데 영화로 옮길 때는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다. 전혀 고민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영국에서 찍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가 BBC에서 드라마로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샜다고 생각했다. 제작사 대표가 일제 강점기 아이디어를 내 시대 변경을 고민했고, 코우즈키와 백작 설정을 고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하긴 '출생의 비밀'은 한국 드라마로 만들어야 더 좋아할 것 같다고 하니, 박 감독도 웃는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와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 그리고 백작에게 거래를 제안받은 하녀와 아가씨의 후견인까지, 돈과 마음을 뺏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 '아가씨'는 흥행을 달리고 있다. 5일 기준 누적관객 130만명, 박스오피스 1위다. 박 감독은 "흥행에 목마르다"며 "일단 '아가씨'는 돈이 많이 든 영화다. 또 상업영화에서 흥행을 신경 써야 하는 건 직업윤리와 맞닿아 있다"고 했다.
그의 상상력 세계도 궁금하다. "누구나 상상력의 세계는 다 있지 않나? 평생 기억하는 한 나는 누구에게 한 번도 화를 내 본 적이 없다. 싸워본 적도 없다. 화나도 참는다. 쌓아놓지만 영화적으로 푸는 게 많다. 물론 부부싸움은 예외다(웃음)."
'아가씨는 1500대 1의 신인배우 오디션을 봤다. 박 감독은 김태리라는 배우의 손을 들어줬다. "김민희, 하정우 같은 대선배와 붙어서 주눅 들지 않아야 하는데 김태리가 딱 그랬다"는 이유다. 당돌하기도 하고 담도 컸다. "아무리 예쁘고 연기 잘해도 다 소용없잖나. 그런 기본 바탕에 나름대로 연기를 하는 게 좋았다. 다른 배우들과 다른 접근으로 연기하는 게 좋았다."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애 정사 장면도 야릇했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은 따로 있다. 어찌 보면 더 야하다. 하녀가 아가씨의 뾰족 튀어나온 이를 골무로 갈아주는 장면이다. 소설에서는 영화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부분이다.
"성적 행동이 없는데도 흥분되고, 부끄럽고 설레는 장면을 만들고 싶었다. 소리도 중요했다. 감각적인 자극이 관객을 살짝 건드리는 이유도 있다. 골무가 사각거리는 소리, 물은 찰랑찰랑, 멀리서 컹컹 개 짖는 소리, 또 냄새를 맡을 순 없지만 여러 가지 향료에서, 뿌려놓은 꽃잎에서 풍기는 향기가 느껴지게끔 자극이 되도록 목표했다. 이 장면은 영화로 봤을 때 더 좋을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은 정사신의 촬영 비결도 공개했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부분이다.
"일단 현장에서 빨리 찍는 것이다. '이렇게도 해볼까, 저렇게도 해볼까?'라는 짓 하면 안 되고 정말 꼭 편집해서 쓸 것이면 된다. 배우들은 정신적으로도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금방 지친다. 최소한의 스태프로, 환경도 편안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마이크는 들어가야 하니 붐맨도 여자로 고용했다. 사실 그런 장면이 나오면 남자 스태프들은 좋아한다. 밖에 나가 축구한다(웃음). 콘티를 철저하게 해 리허설은 한다."
하지만 그는 "이야기 전개에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수위가 높다거나 다소 낮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를 뿐이다. 나는 이야기가 어떤 줄거리이고 소재냐에 따라서 간다. 이 영화는 뭐니뭐니해도 사랑이 중요했다. 하녀와 아가씨의 정사신은 나름대로 여성끼리의 사랑을 배려하고, 서로의 즐거움에 노력하도록 표현을 했다. 격렬하게 달려가는 것과 반대점에서 대화하듯 친밀감을 표현했다. 마지막 정사 장면은 억압이나 공포에서 벗어났기에 눈치 보는 것 없이 두 사람이 순수한 쾌락을 즐겼으면 했다."
아가씨가 호텔 방에서 와인을 마시며 백작과 벌이는 장면도 박 감독이 무턱대고 정사신을 찍는 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관객들의 기대(?)와 달리 김민희의 노출은 없다.
박 감독은 "에로틱한 장면도 아니고,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아닌
'올드보이' '박쥐'로 칸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얻었지만, 이번 '아가씨'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는 "또 좋은 작품으로 인사할 것"이라며 "할리우드와 한국 작품을 병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jeigun@mk.co.kr/사진 강영국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