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방송인 김구라처럼 호감과 비호감의 경계에 서 있는 연예인이 또 있을까.
거짓말을 뜻하는 은어인 구라가 아닌 입구 구(口)에 비단 라(羅)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김구라는 ‘비단 같은 입’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직설적이고 독설이 섞인 날카로운 입담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어 가는 MC 중 한 명이다. 김구라에게 있어 ‘구라’라는 이름이 비속어이든, 아름다운 입이든 간에 존재감을 알린 것도, 위기를 주었던 것도, 재기의 기회를 주었던 것도 바로 그의 ‘입’이다. 쉽게 말해 입으로 망하고 또 입으로 흥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이 많은 연예계에서도 김구라는 곡절이 많은 연예인 중 한명으로 꼽힌다. 김구라가 처음부터 김구라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본명 김현동으로 개그맨 시험을 치른 김구라는 1993년 SBS 공채 2기 개그맨으로 데뷔하게 된다. 야심찬 꿈을 안고 시작한 개그맨 생활이었지만 입담보다는 꽁트와 유행어가 주를 이뤘던 90년대 코미디에서 김현동은 맞지 않았고, 불러주는 곳이 없어 약 10년 동안 무명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 그가 존재감을 알린 것은 온라인이었다. 2000년대 초 인터넷 방송국이 막 탄생했던 초창기 김구라는 그때부터 김현동이 아닌 예명으로 활동하게 됐고. 딴지일보 웹토이 온라인 방송 ‘김구라, 황봉알의 시사대담’을 필두로 ‘김구라의 진실게임’등을 진행해 나갔다. 속 시원한 욕설, 사람들이 터부시 하는 음담패설, 현실에 대해 돌직구를 던지는 거침없는 입담 등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해 나가며 차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김구라는 2004년 드디어 자신이 바라던 지상파 방송사에 집입 하게 된다.
“2004년에 공중파에 진입하고 해를 거듭하면서 매년 목표를 세웠다. 2004년에는 지상파 방송사에 연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목표였고, 2005년부터는 주류가 되자는 생각을 했다. 2007년을 되돌아보면 초 메이저는 아니더라도 일단 주류로 진입한 것 같다. 앞으로 자리를 잡고 더 나은 단계로 가기위해 노력하겠다”(2008년 ‘PD저널’ 인터뷰 中)
긴 무명의 시간동안 예능판도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콩트보다는 솔직한 입담과 진행을 요구하는 예능판도와 김구라는 잘 맞아떨어졌고, 한번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한 김구라는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했다. ‘막말’로 인기를 얻었던 김구라지만 마냥 거친 이미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귀여운 아들 김동현과 함께 활발하게 방송출연을 한 김구라는 ‘자식을 끔찍이 아까는 아버지’라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거침 속에 부드러움을 보여준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아들은 보물이다. 사람들이 자기 자식이 소중하고 귀하게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도 그렇게 느낀다. 특별히 남과 다르지는 않다”고 말할 정도로 아들을 향한 김구라의 마음은 지극했다.
김구라를 메이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프로그램은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라디오스타’(이하 ‘라디오스타’)였다. B급 감성을 내세웠던 ‘라디오스타’와 ‘독설’과 ‘막말’이라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던 김구라는 잘 맞아떨어졌고, 여기에 노련한 진행 실력은 그를 더욱 승승장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 모두 잘된 건 아니었다. 막말로 인기를 얻었던 김구라는 자신의 원죄인 ‘막말’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후 김구라는 과거 자신이 내뱉었던 수많은 욕설과 음담패설로 인해 끊임없이 비난을 받고 또 사과했는데, 그 중에서도 과거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했던 발언들이 발각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자신이 욕했던 스타들과 만나 끊임없이 사과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던 김구라였지만, 위안부 문제가 우리 사회의 아픈 역사이자 민감한 상처인 만큼 이에 따른 비난여론은 거셌다. 아무리 과거 인지도를 얻기 위해 던진 발언이었다고 해도 대중의 분노는 쉬 가라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막말파문에 휘말린 김구라는 2012년 그동안 출연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뒤 자숙의 시간을 보냈다. 자숙의 시간 동안 김구라는 그냥 쉬었던 것이 아니었다. 매주 위안부 할머니의 쉼터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할 뿐 아니라 자신의 저서 ‘독설에서 진심으로’의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열심히 봉사한 결과 2013년 김구라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감사패까지 받기도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자숙의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김구라는 이전보다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김구라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봉사를 통해 보여준 ‘진심’ 덕분이었다. 자숙기간 뿐 아니라 방송 컴백 후에도 꾸준히 나눔의 집을 찾을 뿐 아니라, 작년 6월 한 방송에서 “얼마 전 나눔의 집에 다녀왔는데 메르스 때문에 방문객들의 예약이 취소가 됐다고 하더라”고 관심을 당부하면서 그의 봉사가 보여주기가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할 줄 아는 김구라의 모습은 대중에게 호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좋을 만하니 또 한 번의 문제가 닥쳤다. 아내의 잘못된 보증으로 인해 17억이라는 빚을 지게 됐을 뿐 아니라, 이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공황장애까지 앓게 된 것이다. 감추고 싶은 가정사였지만 연예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의 사생활은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구라는 이에 대한 사연팔이를 하거나 숨기기보다는 그 특유의 어투로 자신의 일들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이혼을 결정한 이후 ‘라디오 스타’에 나와 “외기러기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아내가 남긴 17억이나 되는 빚에 대해 “다작해서 갚아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했다.
“정말 행복하고 잊을 수 없는 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수상에 큰 의미를 두진 않겠다. 이 수상이 내 방송 생활을 규정짓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여전히 적지 않은 분들이 내가 방송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고 여전히 날 불편해하고 계신다. 내가 과거에 했던 잘못들은 평생 반성을 하고 사죄해야하는 부분이다. 내가 어떻게 보면 방송계 문제적 인물인데 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을 수 있는 건 지난해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건 여러분의 덕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진심이다”(2015 MBC 방송연예대상 김구라의 대상 수상소감)
위기를 극복한 후 다방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구라는 2015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정상에 올랐으며, 2016년 제52회 백상예술대상 TV 남자예능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방송연예대상을 탈 당시 김구라의 소감이 인상적이라고 말을 한다. “제가 방송계의 문제적 인물인데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건 여러분들 덕분이다. 내 삶이 힘들다는 이유로 함께 하는 스태프 이름을 모르고 지냈다. 내년에는 방송 스태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는 방송 덕후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던 김구라는 다음날 2015 SBS연예대상에서 TV부문 프로듀서상을 받았는데 수상소감으로 PD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했던 것이다. “개편 때마다 방송국에서 조직도를 보내온다”며 기수별로 PD들 이름을 호명한 김구라는 함께 작업한 PD들부터 퇴사한 PD까지 모두 언급했다. 앞서 김구라는 한 방송사의 개 혹은 충신이 되기보다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같은 소감은 김구라의 바람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김구라는 무엇이든 기억하는 무서운 사람이다. 정말 기억력이 좋다. 여담으로, 그는 예능국 PD들의 가족과 취미까지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다. 복면가수들의 가면이 벗겨진 후엔 ‘몇 년도에 어느 매체와 이런 인터뷰 한 적 있지 않냐’며 기사까지 줄줄 외워 복면가수들을 진땀나게 한다. 그래서 제가 한 번은 그렇게 물었다. ‘형은 그런 걸 도대체 왜 안 까먹어?’라고. 그랬더니 ‘나도 몰라’라며 화를 내더라.(웃음) 머리에 들어가면 안 빠져나간다고 한다.”(2016년 ‘복면가왕’ 민철기 PD와 인터
각종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김구라, 여전히 호감과 비호감 그 사이에 서 있는 김구라는 여전히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 균형을 잃지 않는 이상 김구라에게 위기라는 단어는 찾아오지 않을 듯 싶다.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