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둔 심경이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웃음) 떨리고 무섭고, 또 설레고 반갑고…여러 가지 생각들이 쉴 새 없이 스쳐 지나가요. 빨리 개봉해 관객들과 만났으면 좋겠어요. 혹평이든 호평이든, 칭찬이든 비판이든 많이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래도 이왕이면 좋은 얘기들이 많았으면 좋겠네요. 하하!”
지난 27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영화 ‘덕혜옹주’가 공개되자, 배우 손예진(34)의 인생작이 나왔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그녀는 이날 작품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고, 관계자들은 아낌 없이 박수를 보냈다. 역대급 연기력이다.
관계자들의 극찬 속에서 영화 개봉을 기다리는 그녀의 마음은 어떨까. 하루가 지난 28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상기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마냥 들떠 있을줄만 알았더니, 여전히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공을 많이 들여 연기한 것 같다. 인생작을 만났다는 평이 쏟아지고 있더라”라고 인사를 건네니, “정말 그렇게 될까요? 관객 분들도 그렇게 느끼시면 정말 좋을 텐데”라며 수줍게 웃었다.
“내 작품을 보고 스스로 울었다는 게 어떻게 보면 웃긴데…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요. (미소) 연기를 어떻게 했고, 누가 더 잘 했고, 뭐가 아쉽고를 다 떠나서 그냥 너무 아팠어요. 작품이 슬펐고 몰입해서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눈물이 났어요. 제 연기를 떠나 작품의 완성도에 만족해요. 역시 좋은 동료, 제작진 덕분인 것 같아요.”
영화 ‘덕혜옹주’는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종황제의 외동딸로 태어나 대한 제국의 사랑을 받은 덕혜옹주, 일제는 만 13세의 어린 덕혜옹주를 강제 일본 유학길에 오르게 한다. 작품은 매일같이 고국 땅을 그리워하던 덕혜옹주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손예진은 “사실 슬픈 역사, 그리고 실존 인물을 다룬 다는 점에서 무섭고 걱정이 많이 됐다. 작품 자체에 대한 믿음이 있어 흔쾌히 선택했지만, 내 역할에 대한 자신감은 크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원작 소설을 읽고, 다큐멘터리 등 관련된 자료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덕혜옹주’에 대한 자료가 사실 많지 않아서 권비영 작가님의 인터뷰도 찾아보고, 세세한 것까지 얻을 수 있는 건 모두 모아 참고했어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덕혜옹주’에 몰입하게 됐고 애정을 많이 갖게 됐죠. 모든 배우들과 제작진이 공을 많이 들이긴 했지만, 사실 자금이나 일정, 내외적으로 우여곡절이 많았기에…완성된 작품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에요.”
손예진은 이번 작품에서 일제의 희생양이 된 조선 왕실의 마지막 황녀, 덕혜 옹주를 맡았다. 비극의 역사 속에서 희망의 상징이었으나, 누구보다 비련의 삶을 살았던 덕혜 옹주를 연기하기 위해 치열한 감정 연기는 물론 노인 분장 등 몸을 사리지 않는 과정을 이겨내야 했다. 제작비 난항에 부딪혔을 땐 기꺼이 자비로 10억을 투자하는 등 여느 때보다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일제에 의해 짓밟힌 덕혜 옹주는 결국 고국을 그리워하다 절망 속에서 미쳐가는 비련의 여인”이라며 “극한의 노인 분장까지 감행해 주변에서 ‘괜찮겠냐’고 물었지만, 어떤 얼굴로 나오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역할에만 충실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덕혜 옹주’의 일생 중에서도 후반부로 갈수록 그 감정선이 더 깊어졌어요. 특히 노인 분장을 할 땐 어떻게든 그녀의 기구한 삶, 힘들었던 세월을 표현하는 게 관건이었기 때문에 안 예쁘게 나온다는 것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었죠. 카메라 앞에서 제 얼굴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 역할이 얼마나 잘 표현되나, 연기가 얼마나 몰입이 잘 되냐가 중요하죠. 오히려 더 늙고, 못생기게 나올수록 고통의 세월이 잘 표현된 것 같아 좋았어요.”
이어 화제가 된 ‘10억 투자’에 대해서도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많은 배우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이런 결단을 내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작품의 제작비가 결코 적은 비용은 아니었지만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스태프들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효율적인 환경을 위해서는 분명 필요한 결정이었어요. 소속사와 제작사, 관계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적정 수준의 가격이 책정됐고 당연히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매 작품마다 배우가 결과에만 연연하면서 임할 순 없겠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좋은 스코어에 대한 바람과 욕심은 물론 있죠. 무언의 책임감 같은. 특히 올 여름에는 워낙 성격이 다른 쟁쟁한 대작들이 많으니 관객들이 다양하게 영화를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소중하고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이번 작품은 유난히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엄청난 교훈을 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함께 아픔을 나눌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으니까요.”
끝으로 그는 “나 역시 현 시대를 살아가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를 어떻다고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각박해지고 무서워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우리 영화를 통해 아픈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을 키우고 고민하는데 조금이나마 함께 했으면 좋겠다. 각자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엄청나게 화려한 영화는 아니지만 분명히 진정성 있는 묵직한 메시지, 울림이 있는 작품이에요. ‘덕혜 옹주’가 역사 속에서 엄청난 업적을 남기진 않았지만, 아픈 역사의 하나의 상징이자 한 여자의 인생을 담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과도 맞닿는 지점이 분명 있어요. 우리 모두가
영화 ‘덕혜옹주’는 오는 8월 3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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