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1초가 빠르게 지나가는 요즘, 본방사수를 외치며 방영일 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날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클릭 한 번만으로 지나간 방송을 다운 받고, 언제든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빨리 흘러가는 현재, 지난 작품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이를 몰랐던 세대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MBN스타 유지훈 기자] “3년 동안 자숙하는 기간에, 적당한 분장을 하고 녹화장에 온 적이 있어요. 사실 저 뒤에 보면 까맣잖아요. 서있으면 잘 안보여요. 다행히 제가 활동할 때 계셨던 경비아저씨가 계셔서 들어왔어요. 항상 예능 모니터링도 했고요.”
최근 방송된 SBS 파일럿 예능프로그램 ‘디스코’에서 밝힌 탁재훈의 속마음이다. 시종일관 장난을 멈추지 않던 천방지축 이미지의 속에는 진솔함이 숨어있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시청자 곁으로 돌아왔고 시청자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탁재훈은 ‘칠전팔기’라는 말이 어울리는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입담을 뽐내다가도 지각, 태도논란, 성추행 등 구설수에 오르기 일쑤였다. 탁재훈의 굴곡진 연예인으로서의 삶. 굵직한 활동, 작품, 사건들과 함께 파헤져보자.
↑ 디자인=이주영 |
◇1995년 ‘가수 데뷔’
탁재훈이 연예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1988년, 영화 연출부 막내로 일하면서였다. 당시 ‘월급 5만원’을 받고 생활했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렸고 1990년부터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의 록 가수로 활동했다. 1995년에 1집 ‘내가 선택한 길’을 정식 발매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가수 수준에 그쳤고 2집 1997년 2집 ‘리버스’(Rebirth)를 준비했다.
당시 탁재훈은 2집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홍콩으로 떠났다. 촬영감독, 조명감독 단 세 사람으로만 구성됐던 촬영팀은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촬영을 마쳤다. 열악한 환경이었던 만큼 1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참패’였다.
빚만 지게 된 그는 훗날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1집 수록곡이었던 ‘내가 선택한 길’이 표절 곡이었다. 표절로라도 뜨고 싶었다”는 ‘웃픗’ 상황을 밝히기도 했다. 솔로가수 실패 이후 카드빚에 허덕이는 힘든 시간이 시작됐다. 하지만 단짝 신정환과 함께 전성기를 맞게 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1998년 ‘컨츄리 꼬꼬 결성’
1998년 탁재훈은 이상민, 신정환으로부터 컨츄리꼬꼬 결성 제안을 받았다. 이상민은 “솔로로 잘 나가진 못했지만 유머와 센스를 겸비한 탁재훈, 군을 제대를 한 신정환이 있었기에 신정환의 엉뚱함을 내세워 기발한 그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컨츄리꼬꼬는 결성 초기 8개월 동안은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한 아침방송에 출연하면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당시 신정환-탁재훈은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고. ‘오! 해피’ ‘오! 가니’ ‘김미! 김미!’(Gimme Gimme) 등 그들의 히트곡 대다수에는 느낌표가 붙어있다. 이는 컨츄리꼬꼬라는 그룹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그들의 노래는 모두 흥겹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이한 점은 그들은 대부분의 음악방송에서 라이브를 고수해왔다는 것이다. 당시 많은 댄스가수들이 가창력 논란에 휩싸였지만 컨츄리꼬꼬는 이를 비웃듯 승승장구했다. 그들의 수식어는 ‘노래 잘하는 댄스 가수’였다.
◇2004년 ‘상상플러스’
2004년부터 탁재훈은 ‘개그맨보다 웃긴 가수’가 됐다. 2003년 컨츄리꼬꼬 활동 중단 이후 그는 예능프로그램 섭외 1순위로 꼽힐 만큼 검증된 입담꾼이었다. 그리고 2008년 신정환과 함께 KBS2 ‘상상플러스’의 MC를 맡게 되며 전국민으로부터 예능감을 인정받았다.
‘상상플러스’를 대표하는 코너는 ‘올드앤뉴’다. 10대와 50대가 쓰는 단어를 이용한 MC들의 퀴즈 대결을 통해 세대간의 격차를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탁재훈은 최대한 무표정을 유지하려는 노현정 아나운서를 폭소케 하고 “아우 머리아퍼” “쟤~ 뭐야” “아! 왜~” “안돼겠네~”와 같은 능청스러운 유행어를 뱉으며 인기를 얻었다.
◇2007년 ‘KBS 연예대상’
탁재훈의 활약은 ‘불후의 명곡’에서도 빛을 발했다. 함께 출연했던 신정환이 깐족거림으로 웃음을 담당했다면 탁재훈은 진행자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포맷 개편에 주춤 하고 있던 ‘해피투게더’까지 성공시키며 탁재훈은 KBS2 예능프로그램의 터주대감이 됐다. 그리고 2007년 KBS2 연예대상을 받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앗다.
하지만 연예대상의 저주를 피해갈수는 없었다. KBS2 ‘천하무적 야구단’ MBC ‘퀴즈 프린스’ ‘단비’ ‘오빠밴드’ 등에 출연했지만 프로그램은 줄줄이 폐지됐다. ‘뜨거운 형제들’이 그나마 큰 호응을 얻었지만 ‘아바타 소개팅’ 존폐 논쟁과 함께 쓸쓸히 퇴장했다.
◇2013년 ‘불법도박’ 그리고 ‘이혼’
2013년 SBS ‘8시 뉴스’는 이수근과 탁재훈이 서울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에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도박을 한 사실이 포착돼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수근과 탁재훈은 사설 인터넷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수억 원대의 도박을 한 혐의를 받았다. 이에 붐, 앤디, 양세형 등이 줄줄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으며 이 사건은 점점 커져만 갔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고 자숙 중이던 탁재훈은 아내와의 혼인 관계를 청산해달라는 취지의 이혼청구 소장을 제출해 대중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앞서 신정환도 도박 때문에 구설수에 올랐던 점, 탁재훈의 방송 태도 논란이 조금씩 커져갈 때 즈음 일어난 사건이었기에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2016년 복귀 ‘음악의 신2’
3년의 시간이 지났고 컨츄리꼬꼬를 만들었던 이상민은 다시 한 번 탁재훈과 손을 잡았다. 자신을 대표하는 예능프로그램인 Mnet ‘음악의 신’의 두 번째 시즌에 그와 함께 출연하기로 결심했다. 대중의 반응은 찬성과 반성 양쪽의 의미로 뜨거웠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탁재훈은 탁재훈이었다. 자신의 잘못을 전면에 내세워 입담을 뽐냈고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후반부의 활약은 조금씩 줄어들었지만 이는 그가 다른 예능프로그램에 조금씩 얼굴을 내비치고 있음을 의미했다.
탁재훈은 수많은 논란과 위기에 휘말렸지만 다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지상파 출연제한은 풀리고
[변두리 퀘스천] 탁재훈의 MC 자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지훈 기자 ji-hoon@mkcultu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