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세터(trendsetter)’의 사전적 의미는 ‘유행의 선도자’. 유행보다 전통을 기반으로 사랑 받아 온 트로트씬에서 ‘트렌드세터’라는 수식어는 이질적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트로트씬에서는 화려한 ‘트렌드세터’의 등장이 새바람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비주얼로 사랑받고 있는 “지원이”가 그 주인공이다. 데뷔 4년 만에 행사의 여왕 자리를 꿰차고 인기 음악 프로그램의 MC로 굳게 자리하고 있는 지원이. 트로트의 틀을 깨고 완성형 퍼포머로 자리매김한 지원이의 성공 비결과 감성까지 훔쳐간 ‘이제서야’의 특별한 스토리까지 이야기 나눴다.
박태석 (이하 ‘박’) : ‘이제서야’의 인기가 대단해요. 이전 히트곡들과 다른 스타일인데, 어떻게 이 곡으로 활동하게 된 건가요?
지원이 (이하 ‘지’) : ‘이제서야’라는 노래가 나올 때 쯤에 “탑10 가요쇼” PD님이 이 노래를 들어보시고 무대에서 특집으로 불러보자고 제안을 하셨어요. 그래서 방송에서 한 번 무대를 갖게 됐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계속 여러분들에게 들려주게 됐죠.
박 : 어느 정도의 반응이었길래요?
지 : 이 곡을 듣고 눈물 흘리고 감동 받았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특히 밝고 화려한 이미지의 지원이가 이런 곡을 부르고, 특별한 감정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분들이 강한 인상을 받으셨더라고요. 이 곡을 기억해주시고 불러달라고 문의를 많이 해주세요. 모든 무대에서 부르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곳에서만 부르는데도 라디오에서 너무 많이 올라와요. 비오는 날은 더 많이 그렇고요.
박 : 어떤 내용이기에 눈물까지...?
지 : 부모님에 대한 노래인데요, 제가 가수가 된 계기가 엄마 때문이거든요. 저의 사연이 노래의 감성에 담겨서 더 깊게 전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 엄마가 많이 아프셨어요. 병원에서 포기하고 집에서 임종을 준비하라고 할 정도로 많이 아팠는데 그 때 기억이 저도 노래하면서 감정을 많이 흔들어요.
박 : 지금은 건강이 괜찮으세요?
지 : 그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많은 노력을 했더니 임상실험 제의가 들어왔어요. 검증된 방법으로는 살릴 수가 없으니 실험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거였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싸인을 하고 임상실험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실험 과정에서 엄마가 고통을 더 받고 돌아가실 수도 있었으니까요. 엄마가 임상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고통스러워했어요. 너무나 힘든 시간을 8개월을 보냈는데 스스로 죽고 싶다고 말씀하시곤 했으니까요. 그 때 엄마 얘기가 당신 꿈이 가수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엄마가 살아나면 내가 엄마의 못 이룬 꿈을 이뤄드리리라 생각했는데, 기적적으로 병을 이겨내셨죠. 루프스라고 자가면역결핍증이라는 희귀병이었는데 지금 우리나라에 일곱 분만 살아 계신다고 해요.
박 : 결국 가수 지원이는 엄마가 만든 거네요?
지 : 그렇죠. 엄마에게 찾아오는 기적을 보면서 ‘아, 가수가 내 운명이구나.’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제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10년 넘게 가수로 우뚝 서기 위해서 한 우물만 판 거예요.
박 : ‘이제서야’의 가사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겠네요?
지 : 부모님에 대한 노래가 늘 갖고 싶었는데 그 노래가 나타나서 이번 앨범에 싣게 되었죠. 방송 무대에서 이 노래를 하다가 울어서 NG도 나고 그랬어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스태프들도 제 사연을 알게 됐고, 작가들도 제 사연을 듣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지금은 편한 듯 얘기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는 저도 모르게 울먹이게 돼서 노래하기가 쉽지 않아요.
박 : 추가열씨가 곡을 만드셨더라고요?
지 : 추가열씨가 좋은 곡이 있다고 노래를 들려주는데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밖에 안 나더라고요. 저한테도 불러보라 하셔서 노래를 했는데 추가열씨가 제 노래에 감동 받았다면서 노래를 선물로 주셨어요.
박 : 곡비 안 받고요?
지 : 저도 그래서 너무 감동했죠. 그런 고마운 노래라 잘 불러야 하는데 감정 콘트롤이 너무 힘들어서 노래하는 게 쉽지 않아요. 어머니 사연도 그렇지만 2절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거든요. 2절도 뭉클하죠. 아버지랑 정이 없이 지냈던 시간들이 많은데 세월이 흘러보니까 묵묵히 저를 지켜줬던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되고, 후회도 되고요. 그래서 제목이 ‘이제서야’...
박 : 발매가 언제 된 겁니까?
지 : 5월 중순에 발매되었으니까 두 달이 넘었죠.
박 : ‘쿵짜라’로도 계속 활동하고 있는 거죠?
지 : 야외무대에서는 ‘쿵짜라’를 부르고 녹화무대에서는 ‘이제서야’를 부르는 편이에요. 얼마 전에는 해수욕장 개장식에서 이 노래를 부르길 원하더라고요. 방송 무대였는데 느낌이 너무 좋게 나왔어요. 추가열씨랑 통기타를 치면서 같이 불렀는데 생각지 않게 우리 둘을 세트로 불러주니까 가열이 오빠도 덕분에 많이 좋다고... (하하하)
박 : “탑10 가요쇼” MC 본 지는 얼마나 된 건가요?
지 : 4년차죠. 데뷔하면서 바로 했으니까.
박 : 데뷔한 지가 4년 밖에 안 됐나요?
지 : 운 좋게도 빨리 올라왔어요. 처음에 레깅스 입고 무대에 섰을 때 손가락질도 많이 받고 선배님들한테 안 좋은 소리도 듣고 했는데 이제는 선배님들한테 칭찬도 듣고 실력도 인정해주시곤 합니다.
박 : 데뷔 당시 콘셉트는 누구 아이디어인가요?
지 : 회사 이사님이요.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응원해 주셨고, 실력이 있으면 보이는 모습이 어떻든 높이 평가해 줄 거라고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씀을 해 주셨어요. 그런 조언을 듣고 더 노력을 하게 된 거죠.
박 :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 많았잖아요. 요즘에는 트로트계의 ‘트렌드세터’라고 불려요?
지 : 물론 노래가 가장 중요한 실력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하지만 그런 말씀 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해요. 처음에 ‘군통령’이라는 별명도 있었고, 트로트하는 비욘세라는 뜻에서 ‘트욘세’라는 별명도 붙여 주셨고, ‘행사의 여신’이라는 별명도 생겼는데, 프로야구 시구로 화제가 된 이후에는 ‘독보적인 트렌드세터’라고 불러 주시더라고요. 영광스럽죠. 트로트를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가수가 되었다는 점에서 자부심도 느끼고요. 이 길까지 많은 여정이 있었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재밌어요 그 과정이. 기존의 틀을 깨고 가지 않았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죠.
박 : 행사 섭외 0순위잖아요. 행사 페이도 높죠?
지 : 인지도와 히트곡 수에 비해서 행사 섭외 순위와 페이가 높은 편이죠. 그래서 독보적이라는 얘기를 듣는 것도 있고요. 선배님들도 요즘에는 전무후무하고 참 특이하다고 말씀들 해주세요.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애라는 걸 나중에들 아시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박 :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수로 알려져 있어요?
지 : 산에 다니면서 꾸준히 훈련해요. 춤을 추면서 노래하다 보니까 훈련이 꼭 필요하거든요. 북한산 정상까지 올라가서 숨이 찰 때 노래를 하면 무대에서의 호흡이 흔들릴 때랑 상태가 비슷해요. 그 때 노래하면서 녹음을 하죠. 그 상태에서도 노래가 안 흔들리면 된 거예요. 산꼭대기에서 소리도 지르고, 춤 연습도 하고, 발음 연습, MC 연습도 주변 신경 안 쓰고 열심히 해요. 그런 부분이 선배님들 눈에 들어오나봐요. 이제는 인정을 해주시니까 너무 기분 좋죠. 그런 후배가 되고 싶었거든요. 선배님들이 먼저 인정해주고, 그리고 나서 대중이 인정해 주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박 :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싶어요?
지 : 저는 콘서트를 가장 하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부터 구상하고 준비하고 있어요. TV 중심의 가수가 되는 것보다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
박 :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요?
지 : 팬클럽 회원님들이 주황색 옷을 입고 주황색 풍선을 들고 오시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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