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주상욱은 눈에 띄지 않게 '소처럼 일해온' 케이스다. 2000년대 중후반 들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그가 본격적으로 시청자들에 각인된 작품은 MBC '선덕여왕'(2009)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출연한 SBS '자이언트'(2010)를 통해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주상욱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마다하지 않고 꾸준히 소화하며 차근차근 그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덕분에 한동안 따라다니던 '실장님' 꼬리표도 그 스스로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한때 무서우리만큼 숨막히는 카리스마가 그를 대변한 시절도, 절절한 로맨스 끝판왕으로 거듭난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코믹 DNA가 제대로 발현되면서부터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친근한 이미지로 거듭났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판타스틱'에서 선보인 우주대스타 류해성 캐릭터도 이러한 주상욱의 '실체'에 꽤나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확실한 건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면 안 된다는 것. 의외로 주상욱이 밝힌 류해성과 자신의 싱크로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류해성은 일단... 우주대스타죠 하하. 저랑은 좀 동떨어져있죠. 그리고 해성이의 포인트는 허세인데, 마냥 애 같은, 그래서 좀 순진하고 순박한 구석이 있는데 그런 부분과는 닮은 점이 없고요(웃음). 성격 면에서 유쾌, 명랑, 쾌활한 부분은 닮은 것 같아요. 그 외에, 저는 스스로 허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제가 판단하는 건 아니니까? 하하."
'판타스틱'은 주상욱이 '화려한 유혹'(2015)을 마치고 택한 첫 작품이었다. '판타스틱'은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50부 여정을 마친 주상욱이 전작에서완 180도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지만, 시한부 설정을 신파적으로 그리지 않고 '웰-다잉'에 대한 환기를 가져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물론 단순 로맨틱코미디는 아니었지만 드라마가 너무 신파로 가면 안되니까, 어느 정도 해성이 분위기메이커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전체적인 드라마 톤 자체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무거웠죠. 방송 전엔 고민도 했어요. 나 혼자 발연기 하고 웃기고 하다 드라마에서 따로 노는 건 아닐까, 고민했죠. 다행히 회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게 우리 드라마의 장점이 된 것 같아요. 굉장히 독특하고 신선했던 드라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초반부터 화제를 모았던 류해성의 '발연기' 역시 주상욱에게는 미션이었다. "발연기, 아~ 어렵더라고요.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주상욱의 발연기는 이제 식상하기도 할테고요. 그렇지만 '발연기를 잘한다'는 평은, 결국 칭찬이니까(웃음) 듣기 좋았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한창 발연기를 하던 해성이 갑자기 연기를 잘 하게 되는 시점이 있는데, 잘 해야 되는데 뭔가 불안하더라. 막상 연기 잘 하는 설정을 연기하는데 사람들이 '쟤 뭐야' 하면 어떻게 하나 부담이 있었다"는 아이러니한 감정도 덧붙였다.
주상욱은 '판타스틱'이라는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쌓았지만 작품을 통해 그 이상의 보람을 얻었다 했다. '웰-다잉'에 대한 메시지를 통한 배움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드라마나 영화가 재미있으면 그걸로 좋은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판타스틱'을 통해, 드라마가 교훈까진 아니어도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웰 다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작품이라는 평이라던가, '판타스틱'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는 댓글을 볼 때마다 뿌듯했고, 보람된 작업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단 한 순간이라도 맡은 역할에는 늘 최선을 다한다"는, 말로는 쉬워도 실천은 힘든 지론을 "당연한 일"이라는 그는 일에서도 역시 프로다. "단 한순간이라도 대충 하면 그게 남는 거잖아요. 그러면 안 되죠. 모든 배우가 그럴 것"이라며 자신을 낮출 줄도 안다.
그의 우직한 열정에 대중 역시 화답하고 있다. 특히 드라마 외 간간이 출연한 예능을 통해 인간적인 면모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뒤부턴 호감지수가 급상승했다. 단순 호감을 넘어서, 여느 배우들과 달리 거리감 없이, 친근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지배적인 점은 주목할 만 하다.
"저는 허세나 가식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제 생각을 얘기하는데, 그런 진솔한 면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저를 좋아해주시는 듯 해요. 그게 장점이라면 인간적으로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쟨 너무 연예인 안 같아'라는 시선도 있을텐데, 동네 편의점 가면 있을 것 같은 연예인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 주상욱은 "사실 은근히가 아니라, 다들 그렇게 편하게 보신다. 심지어 (담뱃)불 좀 빌려달라고도 하신다"며 "그냥 동네사람이죠 동네사람"이라 허탈하게 웃어 보였다.
"1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신비주의도 한 번 해보는 건데...그런데 또 모르지 신비주의 했으면 망했을 수도 있어. 하하핫" 이러나저러나 주상욱은 천생 주상욱이다.
psyon@mk.co.kr/사진 유용석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