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다시 만나요 제발~”
MBC ‘라디오스타’의 공식 엔딩 멘트는 여전히 간절하고 절박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무려 10년째 500회에 걸쳐 방송되고 있는 무시무시한 지상파 장수 토크쇼다.
‘라디오스타’는 2007년 5월 MBC가 론칭한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을 ‘무릎팍도사’와 함께 채우며 시청자에 첫 선을 보였다. ‘황금어장’ 초창기에는 ‘무릎팍도사’가 강호동-유세윤-올밴 MC 조합으로 1인 게스트 토크쇼계를 주름잡으며 3~4년간 프로그램의 중추 역할을 했다.
반면 당대 예능계에선 다소 낯선 독설, 디스가 난무하는 ‘B급’ 콘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라디오스타’는 ‘무릎팍도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으며 마니아 토크쇼로 자리매김, 사실상 ‘황금어장’ 내에선 ‘무릎팍도사’ 번외 코너 수준에 머물렀다.
‘무릎팍도사’에 비해 편성 시간이 턱없이 짧았던, 때로는 ‘황금어장’ 한 주 방영분이 ‘무릎팍도사’에 온전히 할애되면서 ‘라디오스타’가 통편집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거다. ‘라디오스타’ 공식 엔딩 멘트가 애절 모드로 자리잡게 된 건.
그렇게 가늘고 길게 온 ‘라디오스타’가 놀랍게도 오는 9일 500회를 맞이한다. 이는 다름 아닌, 기존 토크 프로그램들과 완벽하게 차별화된 매력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설, 돌직구, 이른바 게스트를 ‘탈탈 털어’ 어지럽게 만드는 콘셉트는 ‘라디오스타’가 유일무이했다.
서너 명의 MC들과 서너 명의 게스트가 만나 진행되는 떼 토크의 형태를 띤 ‘놀러와’, ‘해피투게더’ 등이 비교적 착한 토크쇼의 전형이었던 반면, ‘라디오스타’는 독한 토크의 전형을 보여줬다.
MC 조합도 특별했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를 향해서든 쏠 수 있는 총알을 장전한, 왕년에 ‘독설계의 대마왕’ 김구라는 전례 없이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MC이자 ‘라디오스타’의 정체성을 일선에서 보여준 캐릭터다.
여기에 ‘깐족계의 대부’ 윤종신, ‘수줍음의 아이콘’ 김국진과 김희철-규현을 잇는 당돌한 막내 라인의 활약은 꽤나 신선한 조합이었다. 비록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며 지금은 프로그램을 떠났으나 한 때 ‘라디오스타’ 독설 토크의 화룡점정으로 활약한 신정환, 유세윤의 존재감 역시 말할 것도 없다.
‘무릎팍도사’가 메인 MC 강호동의 연예계 잠정 은퇴로 흔들리다가 토크쇼 트렌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끝내 폐지 수순을 밟은 것과 달리, ‘라디오스타’는 크고 작은 흔들림 속에서도 우직하게 걸어왔다.
물론 ‘라디오스타’가 걸어온 길 역시 쉽지 않았다. MC들이 물의를 일으키며 하나 둘 프로그램을 떠나기도 했다. 김구라의 경우 과거 발언에 발목 잡혀, 그리고 건강상의 이유로 두 차례나 프로그램에 하차했다 재합류하는 이례적인 사례를 남기기도 했다. 게스트를 향한 무례한 언행으로 사과하는 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말과 탈보다 더 큰 웃음과 재미를 준 ‘라디오스타’였다. 무수한 게스트를 발굴해 그들을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고, 주목받게 했다. 한때 ‘라디오스타’를 두려워했던 게스트들도 이제는 스스로 털리기를 자청한다.
‘라디오스타’의 저력이 무서운 건, 현 토크쇼의 트렌드인 자유분방함을 한 발 앞서 읽고, 트렌드를 선도했으면서도 여전히 독보적인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향후 수년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켜갈 것이 무난하게 예측된다는 점에서 현 시점 그 끝을 짐작할 수 없다
끊임없는 좌충우돌로 못난 천덕꾸러기를 자청하면서도 밉지 않은 캐릭터였던 이 ‘라디오스타’가, 무너진 토크쇼의 시대, 10% 안팎의 시청률을 꾸준히 내주며 언제부턴가 MBC 예능국의 둘도 없는 효자가 됐다. 말썽 많은 자식이 말년에 효도한다는 옛 말이 틀린 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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