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50대 중반의 나이를 앞둔 로커들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었다. 찌르는 듯한 보컬은 대형 스피커도 벅찰 정도였고, 기타 드럼 연주는 관록이 묻어났다. 세계적인 록밴드 메탈리카는 1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세월을 넘어 1980년대에 박제된 헤비메탈을 다시 흔들어 깨웠다.
이날 관객들은 공연 시간인 오후 8시 30분보다 훨씬 이른 시각인 오후 5시 이전부터 스탠딩석 대기줄에 차츰 모여들었다. 영하로 뚝 떨어진 강추위에도 장발에 가죽재킷을 입은 관객이 틈틈이 보였다. 대기줄 만큼이나 메탈리카 머천다이즈를 사기 위한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메탈리카 내한공연은 1996년, 2006년, 2013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지난 세 차례 내한공연 누적 관객 수만 10만 명에 달한다. 이제는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밴드이지만, 공연을 기다리는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넘쳤다.
메탈리카에 앞서 베이비메탈이 오프닝 무대에 올랐다. 베이비메탈은 수메탈(나카모토 스즈카), 유이메탈(미즈노 유이), 모아메탈(기쿠치 모아) 3명의 10대 소녀로 구성된 메탈 아이돌 그룹이다. 이들은 주름장식이 된 검은 드레스를 입고 헤비메탈 반주에 안무를 섞으며 고척스카이돔을 들썩이게 했다.
메탈리카는 공연 예정 시간보다 30분 늦은 오후 9시부터 '하드와이어드(Hardwired)' '아틀라스 라이즈!(Atlas, Rise!)'를 긴박한 드럼 비트에 맞춰 선보였다. 제임스 헷필드(보컬·기타)는 "다시 봐서 반갑다"며 객석을 향해 인사했고, 흥이 오른 팬들은 큰 함성으로 화답했다.
이어 '새드 벗 트루(Sad But True)' '언포기븐(Unforgiven)' '나우 댓 위어 대드(Now That We're Dead)' 등이 연달아 관객들의 귀를 사정없이 때려댔다. 메탈리카 멤버들은 어느덧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졌지만, 맹렬한 기세는 그대로였다. 젊은 밴드가 가진 패기는 주름 밑으로 숨어들었으나 악기를 매만지며 연주하는 자세는 빈틈없었다.
이번 공연은 메탈리카 11번째 스튜디오 앨범 '하드와이어드…투 셀프-디스트럭트(HARDWIRED…TO SELF-DESTRUCT)'를 기념하는 아시아 투어다. 메탈리카는 한국 공연을 가장 먼저 확정했고, 고척스카이돔에서 공연하는 첫 번째 해외 뮤지션이 됐다.
커크 해밋(기타), 로버트 트루히요(베이스)는 공연 중간에 솔로 연주로 막을 내리고 올리는 역할을 했다. 기타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해밋과 바닥을 기어가는 듯하면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한 트루히요의 연주는 보는 이의 넋을 빼놨다.
메탈리카는 '마스터 오브 퍼페츠(Master of Puppets)'에서 공연의 정점을 찍었다. 첫 곡을 시작했을 때와 달라지지 않으면서도 밴드의 대표곡으로 교감했다. 1만 8천여 명의 관객들은 '마스터 오브 퍼페츠'를 있는 힘껏 따라 부르며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메탈리카의 전성기를 다시 소환했다.
1983년 결성된 메탈리카는 그동안 1억 10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올렸다. 총 9차례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했고, 2009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헤비메탈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메탈리카 내한공연은 헤비메탈과 록 장르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관객에게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식 앤드 디스트로(Seek and Destory)'로 마지막을 장식한 메탈리카는 앙코르 요청에 '배터리'(Battery)' '엔터 샌드맨(Enter Sandman)' 등을 들려줬다. 120분 동안 쉼 없이 달린 메탈리카에게 세월의 흔적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in999@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