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싱글라이더'는 표면적으로는 기러기 가족의 비애를 담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기러기 아빠 재훈(이병헌)이 극 중 그런 것처럼 생각하고 고뇌하며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여기에 영화적 재미라고 말하긴 조심스러운 충격적 반전이 소름을 돋게 한다.
1조3000억원이란 대규모 부실채권을 팔아 난리가 난 투자회사의 지점장 재훈의 침통한 표정. 호주 한 바닷가에서 들리던 오프닝의 화기애애한 목소리들은 어느새 잊히고 재훈의 모습이 화면 가득 채워진다. 생각하고 고뇌하는 그를 바라보기 안쓰럽다. 재훈의 이 고뇌에 찬 표정과 눈빛이 시종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영화 전체를 압도한다.
2년 전 호주로 유학을 보낸 아내 수진(공효진)과 아이는 한국에 있는 남편이자 아빠에게 일어난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롭게 느껴진다. 와중에 수진은 재훈과의 통화에서 시립교향악단 오디션이 있기에 "일주일 늦게 한국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하고, 재훈은 "이미 결정하고 통보하는 것 아니냐"고 말다툼한다. 재훈은 생각과 고민이 또 더욱더 깊어진다.
결국 호주행 비행기 표를 인터넷 발권하는 재훈. 호주로 날아왔으나 마주한 현실은 충격적이다. 아내와 아들은 옆집 남자와 아이와 즐겁게 지내고 있다. 재훈은 두려운지 집 주위를 맴도는 것에 그친다. 불륜을 의심할 상황인데도 다가가 다그치지 않는다. 아내를 따라가 보고 옆집 남자를 따라가 보며 상황을 파악하려는 듯하다. 관객의 답답한 마음이 고조되는 지점의 연속이다.
답답함이 풀리는 순간은 후반부다. 한 방에 해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관객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한다. 촉이 좋은 관객은 이전 상황에서 의심할 부분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그가 영화 제목처럼 달랑 혼자 비행기에 탔는지, 왜 아내에게 다가가지 않는지 이유가 밝혀지면서 섬뜩하게 받아들이는 관객도 꽤 있을 것 같다.
'싱글라이더'는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영화 전체를 이끄는 이병헌의 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눈빛과 표정이 특히 압권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는 이병헌의 연기 하나로 중반까지 힘을 받아 감정을 챙겨나간다. '왜 출연한다고 했을까?' 의심스러운 공효진은 후반부 모든 힘을 쏟아낸 한 장면에서 연기력을 폭발시킨다.
워킹 홀리데이를 위해 호주에 온 진아를 연기한 안소희의 쓰임도 나쁘지 않다. 허탈함과 무력감으로 지칠 대로 지친 재훈이 호주에서 만난 진아는 유일한 대화 상대로서 역할을 다했다. 안소희의 연기력이 나쁘지 않은 점도 영화를 보는 맛을 더한다.
아내를 바라보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던 재훈의 앞에 왔다 갔다 하는 진아를 통해 재훈의 성격도 예측하게 한다. 재훈이 그리 못된 성격의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설정이다. 그가 유약하다는 힌트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시를 인용해 영화를 시작했는데, 재훈이 서 있는 상황으로 끝을 맞물리게 하는 지점은 관객을 생각에 빠지게 한다. 자신의 뒤와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보다 현재를 바라보자는 충고. 기러기 가족뿐 아니라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물론 반전과 결말을 통해 더 허무함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한 가정의 가장을 그리는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인 이주영 감독의 연출은 나쁘지 않으나 영화가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며 우는 재훈을 다독인 것처럼 보이
할리우드 직배사인 워너브러더스가 '밀정'에 이어 한국영화에 두 번째로 참여한 작품이다. 배우 이병헌과 하정우도 제작자로 참여했다. 97분. 15세 관람가. 22일 개봉 예정.
jeigun@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