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폭탄이야, 같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폭발할거야.”
생긴 대로 심플하게 살고 싶은 딸, 아야(34)는 남자 친구인 이토(54)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잠시만 아버지를 부탁한다는 오빠의 간곡한 부탁도 단 번에 거절했건만 이미 아버지는 그녀의 집으로 이사를 마쳤다. 고집불통 아버지, 이토 씨와의 불편한 동거, 폭탄은 진정 터질까?
‘노다메 칸타빌레’로 국내에도 친숙한 일본 스타 우에노 주리가 코믹 가족 영화 ‘아버지와 이토씨’를 통해 오랜 만에 한국 관객들을 만난다. 친근하면서도 싱그럽고 건강한 매력은 여전하지만 감성은 한 층 깊어졌다. 가벼운 듯 가볍지 않는 작품에 딱 어울리는 캐스팅이다.
그 날 이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만 나면 폭풍 잔소리를 늘어놓는 못 말리는 아버지. 변변한 직업도 없고 나이까지 많은 딸의 애인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아버지는 경직된 표정과 무뚝뚝한 말들로 시종일관 집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지만 이토 씨는 아버지를 위한 의자를 사고 그의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며 마냥 즐거워한다.
영화는 각종 현실적인 이유들로 점차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현실을 담담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담아낸다. 심각한 취업난에 30대 중반이 되도록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여주인공, 가장‧장남의 책임감과 빡빡한 현실 속에서 쫓기는 듯 살아가는 그녀의 오빠, 40년 넘게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아내를 먼저 보내고 나니 자식들은 그저 자신을 짐으로 여기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식들을 위해 다시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외로운 아버지, 따뜻한 심성에도 불구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새로운 사랑을 조심스럽게 시작 중인 돌싱남까지.
모든 캐릭터들은 저마다 현대인의 어떤 상징적인 갖고 있지만 과장되거나 억지스러운 부분이란 없다. 분명하게 정의내려진 답도 없다. 코믹 극을 표방하지만 그 웃음은 박종대소가 아닌 따뜻한 미소를 짓게 만드는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긴다. 캐릭터의 희화화가 아닌 상황이 주는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고 무엇보다 모든 대사, 메시지, 배경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어 진정성이 느껴진다.
이들 가운데 가장 영화적인 인물은 이토 씨다. 과거를 알 수 없는 54세 아저씨이자 초등학교 급식 도우미인 그는 따뜻하고 온화한 성격에 매사에 침착하다. 유연한 친화력에 예의도 바르고 이해심도 넘다.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들 가족의 중심에는 바로 그가 있고, 그는 이들이 보다 솔직하게 소통하고 진심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이음새가 되어준다.
이 같은 캐릭터는 일본의 대표 연기파 배우인 릴리 프랭키를 만나 보다 탁월하게 완성된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 영화 속에서 신스틸러로 활동해온 그는 유수 영화제에서 연기력을 인정 받은 만큼 자연스러우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로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덕분에 ‘이토 씨’는 감독의 의도대로 시간이나 나이 등에 상관없이 좀 더 막연한 행복,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현대인의 이상형과도 같은 여유롭고 자유로운 캐릭터로 완성된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이들의 관계를 보다 보면 새삼 잊고 지냈던 가족에 대한 사랑, 꽁꽁 닫힌 마음이 어느새 활짝 열린다. 오는 2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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