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내가 무사히 잘 끝낼 수 있을까?' 걱정을 했죠. (중략) 현장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절실하게 다시 느꼈어요. 체중은 줄었지만 이 영화가 있었기에 잘 넘겼답니다."
배우 김영애는 지난해 영화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제작보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암 투병 중이었기에 여타 다른 스케줄은 다 취소했어도 이 영화만큼은 참여하며 "행복함을 느꼈다"고 했다.
"현장에 나가면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내 미래가 얼마나 불안한지 고려 안 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어요."
이 영화에서 김영애는 예쁘고 착한, 혹은 우리네 어머니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세간을 뒤흔든 재벌가 며느리 살인사건의 주범인 재벌가 실세 마나님이었다. 표독스럽고 신경질적인 인물로 관객을 찾았으나 그는 "악역이라고 생각 안 하고 인물에 충실하려고만 노력했다"며 관객의 몰입에 도움을 줬다.
이후 김영애는 큰 사랑을 받았던 주말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로 시청자를 찾았다. 핼쑥해진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들게 했으나, 그의 인터뷰를 보니 현장에서 얼마나 즐거웠을지 생각해보게 됐다.
투병 중에도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50회까지 촬영에 투혼을 다했던 그는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이 드라마 안 했으면 난 벌써 나를 놓았다. 연기하려고 억지로 먹고 버텼다. 다만 내 상태가 나빠진 게 이미 촬영 시작하고 벌어진 일이라 너무 미안하다. 폐 안 끼치고 드라마를 무사히 마치기만을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너무 감사하고, 폐를 끼친 것에 그저 용서를 바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받았다. 고맙고 감사한 일뿐인데, 이 감사함을 갚지 못하고 가는 게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투병 중에도 연기를 할 때 진통제를 맞지 않았다고 한다. 명료한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고통이 배가 됐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지난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촬영 중 췌장암 판정을 받았던 그는 "연기를 안 하면 오히려 더 아프다"며 현장을 찾고 투혼을 발휘했다. 이후 암과 싸우며 드라마 '메디컬 탑팀' '미녀의 탄생' '킬미 힐미', 영화 '변호인' '우리는 형제입니다' '현기증' '카트' '판도라' 등에 참여했다. 그의 투혼은 그렇게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까지 이어졌다. 4회 연장된 이 작품의 마지막까지 참여할 수 없었으나 그는 최선
"쓰러질 때까지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게 연기자의 자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김영애. 지난 9일 별세하자 연기를 사랑한 그를 향한 추모가 온오프라인을 뒤덮고 있다.
그와 함께한 연기자 동료와 그의 연기에 감명받은 이들의 애도가 끊이지 않는다. 11일 발인, 고인은 분당 메모리얼 파크에서 영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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