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아련한 추억 하나쯤은 있던 사춘기 소년 혹은 소녀 시절. 되돌아보면 그때는 사랑과 우정, 시련과 아픔, 행복과 기쁨이 동시에 찾아오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영화 '용순'(감독 신준)은 열여덟 살 소녀 용순(이수경)의 여름 이야기를 담았다. 꼬꼬마 시절 떠나보내야 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돌이켜 보는 것을 시작으로, 아버지(최덕문)가 싫어져 말도 섞지 않게 된 소녀가 체육선생(박근록)을 좋아하는 마음이 커지고 그의 마음에 들려고 이상행동을 보이기까지 하는 상황 등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일련의 이야기가 관객을 추억에 젖게 한다.
용순이처럼 달리기를 하지 않았어도, 체육 선생을 사랑하지 않았어도 그 감정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용순의 행동이 이상학 보이긴 하지만 심각하다고 할 순 없다. 충분히 막무가내로 용감해질 수 있는 나이 아닌가. 영화는 그 사춘기 소녀의 섬세한 감정이 녹아있다.
아버지가 엄마를 다른 남자에게 떠나 보낸 것과 10여년 넘은 시간이 지나 몽골 여성과 결혼을 한 것도 마음에 안 드는 용순. 꼬일 대로 꼬였다. 설상가상 남자친구라고 생각한 체육선생은 점점 멀어지고, 용순이 임신 사실을 공개하자 더 용순을 쳐다도 보지 않으려 한다.
이 이야기들이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니다. 용순의 감정 속에 하나로 녹아든 일련의 사건들은 용순에게 상처를 입히지만 다른 생각도 하게 한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지켜 주려고 하는 용순의 절친들. 삼총사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다. 어린 시절 꼭 우리 옆에 붙어있던 바로 그들 같다. 엄마, 아빠에 대한 오해를 풀고 가정을 지키게 되는 지점도 특별할 건 없지만 마음을 잔잔하게 울린다.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지만, 잔잔한 파고가 일렁거리는 이유다.
용기 있게 다가갔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을 때 또 숙이고 들어가는 것도 바른 청춘의 길이 아닐까. 무턱대고 덤비고 깨진다. 그리고 반성한다. 그렇게 세상을 배워간다.
용
새로운 얼굴 이수경은 관객에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단짝 친구들 김동영, 장햇살도 이따금 웃음을 안긴다. 104분. 15세 이상 관람가. 8일 개봉 예정.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