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녀` 정병길 감독. 제공|NEW |
“평소 (김옥빈에 대해)얼굴이 예쁜 여배우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더 큰 걸 가지고 있었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분위기가 오묘하다고나 할까요? 흔한 여배우 같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고 신비스러웠어요. 뭔가 이중적인 느낌이 들어서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악녀’를 완성했을 때 제가 표현하고 싶은 ‘숙희’의 이미지와 딱 들어맞았죠.”
“왜 ‘김옥빈’이어야만 했나”라는 질문에 정병길(38) 감독은 이 같이 답하며 엄치를 치켜세웠다. 정 감독은 “처음 여자 액션 원톱 영화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기대보다는 우려의 반응이 월등히 컸다”면서 “‘한국에서 그런 게 되겠냐’부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나’ ‘그런 배우가 있을까’ 등 우려들이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 홍콩 영화나 할리우드의 경우 여자 액션 영화가 많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영화가 없어 갈증을 느껴왔고, 좋은 여배우가 많은데도 불구 그런 모습을 충분하게 담을 기회가 없다는 데에서 오는 아쉬움이 컸다. 여배우가 원톱인 영화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애착을 가지고 임했다”며 웃었다.
‘악녀’는 살인병기로 길러진 최정예 킬러 숙희(김옥빈 분)가 자신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를 깨닫고 복수에 나서는 강렬한 여전사 액션물이다. ‘나는 살인범이다’로 성공적인 상업영화 데뷔를 한 정병길 감독의 신작으로 한국 액션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풍부한 상상력, 강렬하고 숨이 멎게 만드는 액션 스퀀스는 관객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주인공인 숙희는 자신의 몸 자체를 무기로 쓰며 거구의 남성들을 단번에 제압하는 에이스 킬러로 김옥빈은 이번 작품을 통해 ‘박쥐’ 이후 또 한편의 인생작을 만났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캐스팅 하고 싶은 배우를 특별히 염두에 두거나 떠올리진 않았어요. 그저 정신없이 이야기를 써내려 가느라 바빴죠. 빠른 호흡으로 집중력을 폭발시켜 집필한 경우인데 완성시키고 나니 김옥빈씨가 떠오르더라고요. 숙희의 복잡하면서도 극과극 이미지, 성향을 옥빈씨가 너무나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고 액션 부분도 탁월했어요. 로맨스 부분 역시 굉장히 풋풋한 감성을 잘 살려서 표현해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죠. 일각에서 모성애 표현에 대한 지적이 있기도 했는데, 그것은 오롯이 감독인 저의 부족함 탓이었죠.”
영화는 할리우드 여전사 액션물의 큰 틀 안에서 한국적 정서, 감독만의 신선한 액션 시퀀스를 입혔다.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딸의 복수와 이를 둘러싼 음모와 배신, 속을 알 수 없는 의문의 남자와 절정의 끝에 마주하는 충격적인 진실. 살인 병기에서 처절한 악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감독은 액션이 주가 되는 작품 안에서 최대한 드라마적 성과를 높이고, 악녀의 탄생 과정을 개연성 있게 그려내기 위해 이중 반전과 두 개의 거대 조직을 등장시킨다. 화려한 출연진과 볼거리에 눈은 즐겁지만 다소 과도하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꼬일대로 꼬인 스토리에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정 감독은 “사실 김옥빈과 신하균의 이야기가 더 많이 있었는데 편집된 부분이 많다. 내부적으로 ‘과거의 숙희 보단 현재의 숙희를 더 많이 담는 게 낫지 않냐’라는 반응이 있었고, 성준과의 케미에 생각보다 뜨거운 호응이 있어서 피 튀기는 혈투 가운데 일종의 오아시스, 힐링의 개념으로 멜로 라인을 조금 많이 넣었다. 이로 인해 다른 부분들은 과감히 편집된 것도 많다”고 설명했다.
“신하균씨가 맡은 캐릭터의 경우에는 가만히 있어도 어떤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아주 미스터리하면서도 매혹적인 인물로 표현되길 바랐어요. 시련을 겪은 뒤 평범한 삶을 꿈꾸는 숙희의 현재 사랑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감성의 풋풋함이 주요 포인트였죠. 이런 부분들의 핵심을 각각의 배우들이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제가 별다른 주문을 하지 않아도 적절하게 잘 표현이 됐던 것 같아요.”
↑ `악녀` 정병길 감독. 제공|NEW |
이어 “‘악녀’의 탄생에 가장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숨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하균 캐릭터를 중점적으로 다뤄보고 싶다. 그 복잡하고 미스터리한, 처절하고도 복합적인 신하균과 김옥빈의 이야기를 살려 그러내면 흥미롭지 않을까 싶다”며 바람을 전했다.
이와 함께 “해 보고 싶었던 이야기, 장르, 기법들
역대급 액션퀸의 탄생이자 한국 액션물의 신세계를 연 ‘악녀’는 극장 상영 중이다. 청소년관람불가. 러닝타임 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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